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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Sep 26. 2023

결핍은 사랑의 본질이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랑을 꿈꾼다. 사실 사랑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또한 완전에 근접하기를 꿈꾸며 열심히 산다. 때때로는 내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져 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순간만큼은 남의 시선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이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우리가 가장 순수한 모습에 근접할 때가 바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일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이 어설픈 젊은 날의 첫사랑이라면 자기감정의 표현이 서툴러서 몹시 아파도 오히려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젊은 날의 사랑과 같이 사랑의 감정이 강렬할수록 아픔은 파도와 되어 우리 마음을 침몰시키는지. 그 사랑이 어설프고 서툰 만큼 아픔이 커야 하는지. 그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반증이다. 우리 존재가 결핍된 것이기에 우리의 사랑도, 그리고 인생 자체도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선 우리 인생에 있어 결핍은 죽음으로 나타난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삶이 끝난다는 불안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만큼 지극한 결핍이 더 있을 수 없다. 영생불사는 인간의 공포가 반영된 인류의 오래된 꿈이었다.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는 꿈이기에 내세를 믿게 되어 종교가 탄생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완전한 사랑이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기에 수많은 문학 작품(주로 낭만주의 문학)에서 죽음을 사랑의 결말로 그리고 있다. 이를 낭만주의 문학에 한정된 현상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도 없다. 물론 20세기 이후의 문학 작품에서는 다양한 내용의 사랑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이는 그만큼 사랑의 배경이 다양해진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복잡해진 사회구조 속에서 사랑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보다 옛날로 눈을 돌려 볼 때 중세시대의 귀부인과 기사의 사랑이라는 것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신분의 차이 속에서 정신적으로만 상상하는 사랑 이야기일 따름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 정신의 본질에 접근이 가능해졌다고 할 것이다. 이백 년이 지난 지금도 비극적 결말을 가진 낭만주의 문학이 긴 생명력을 가진 까닭이다. 낭만주의 오페라 또한 마찬가지로 희가극이 아닌 정극에서는 대부분 비극적인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결혼한 후 달콤한 신혼이 지나가면 뜨거웠던 연애 감정은 식어가기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은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랑의 감정은 생활과 부딪히며 간극이 생기게 된다. 이 위기를 넘기며 사랑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의지라고 할 것이다.


 양가 사람들이 함께 부른 내 결혼식 축가는 새 찬송가 604장 찬송인 ‘완전한 사랑’이었다. “완전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찬송가다.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불완전해서 불확실한 시간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이 불완전함을 인간다움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가 있다. 천사 다미엘은 영생불사의 존재이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동경, 천사의 불멸성을 포기한다. 그리고 서커스단의 곡예사인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를 가진 영화다. 기발한 설정이 흥미로운 영화라고 할 것이다. 물론 영화 속의 허구, 그것도 비현실적인 가상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희로애락이 점철된 우리의 일생에, 그 여정이 불완전하고 고단하지만 보람이 없지 않아 기어코 살아간다. 결코 채워지지 않을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끝내 부족한 인생이라도 아쉬워할 것도 없다. 인생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사랑에 결핍된 구석이 있어 오히려 사랑은 풍성해진다. 결핍된 사랑이라서 아쉽고 아프다. 그리고 상처가 아문 훗날에 이르러 지난날의 아픔까지도 아름다움이 된다. 또한 지난 시간의 순간순간이 모두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만일 지나간 사랑에 대하여 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흔히 남녀의 사랑을 자신의 반쪽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곧 부족한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결핍이 곧 사랑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완벽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에게는 완벽한 사랑은 없다.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결핍이 우리 사랑의 본질이라면, 결핍된 모습 그대로가 우리에게는 온전한 사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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