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봄이다.
춘삼월(春三月)이라고, 얼핏 듣기에 당연한 말 같지만 춘삼월은 음력 3월을 일컫는 말이니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기에는 다소 이르다 싶은 때가 바로 지금이다. 앞으로도 미처 퇴각하지 못하고 잔설로 위장한 채 숲 속 덤불에 몸을 웅크린 패잔병 추위의 기습을 겪어야만 할 것이다. 때 아닌 복병과의 조우가 반갑지는 않겠지만 오래지 않아 세상은 봄기운으로 가득하고 겨우내 잠들었던 만물이 깨어날 것이다.
영국의 시인 셸리의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다"라는 시구를 실감할 때가 온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에 기대어 인생의 어려운 시간도 지나갈 때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어려운 시간을 견딜 수 있다. 그러니 기억하라. 봄이 가까이에 왔다는 사실을.
그런데 '비로소' 봄이라고? 몇 차례 꽃샘추위라는 불청객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봄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한 지금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겨울이 한창인 일월에 마음으로는 이미 봄을 맞이하고 있지 않았는가. 일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이미 마음으로 봄을 꿈꾸고 있었다. 묵은해를 떠나보내면서 새로 맞이하는 해에는 그동안 아쉬웠던 일도 해결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 마음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봄을 기대하는 마음은 시절에 앞서 봄빛으로 이미 벅차, 지금은 마음에 봄이 한창이다. 마음밭에는 벌써 쑥이며 냉이가 자라고 봄꽃들이 만개, 서로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으로 시절을 앞서 느끼는 버릇이 생겼다. 실제 봄빛이 짙어지면 여름 바다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더위에 지쳐갈 때면 햇살 온화한 푸른 하늘에 고추잠자리의 유영이 한가로운 가을이나 산그늘로 남아있는 잔설까지도 애틋한 겨울을 마음에 담게 될 것이다.
뚜렷한 이유랄 것도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턱없이 부족한 사람의 조바심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후회할 것까지는 없어도 아쉬운 순간들이 없을 수는 없다. 반면에 삶의 어느 지점에서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모두 소중하다.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 노년에 다가갈수록 살아가는 매 순간들이 소중할밖에. 그러나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부터 감지되는 생리적 노화와 더불어 조금씨 무너져 내리는 자신감이 안타깝다. 스스로에 대한 애틋함이랄까, 아니면 연민과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조바심과 관련이 있지 싶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마음으로나마 두 계절을 동시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지금은 봄이다. 자연에 속한 만물이 넘치는 생명력을 분출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봄은 젊음의 계절이다. 또한 여자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속된 말로 봄이면 여자가 물이 오른다고 할 만큼 봄이 되면 세상의 모든 여자가 아름다워 보인다. 남자의 입장으로는 그 사실만으로도 봄은 마음이 설레는 계절이었다. 비록 젊음의 시간은 지났지만 봄에 새롭게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자연을 쏘시개 삼아 희망의 불을 마음에 지필 일이다. 다른 계절일랑 마음에 품지 말고 봄기운에 취해 오직 봄을 즐길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봄에, 희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봄을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