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광화문광장에서 BTS의 공연이 있었다. 참여 인원이 당초 예상보다는 크게 밑돌았다지만 단일 공연으로서는 사건이라고 할 만큼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으로 시선이 집중된 이벤트였다. 특히 우리의 전통을 상징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아리랑이라는 대표적인 우리 민요를 포함한 우리의 전통문화적 요소를 가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한 공연이었다. 새삼 세계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K 문화의 위상에 놀라고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독립지사 김구 선생님의 염원대로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이 된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올바르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처럼 대중 스타에게 열광하는 현상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의 엔터테이너들은 이전 시대의 예인처럼 혼자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본력을 가지고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의 구성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낸다.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오늘에 있어 이미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엔터산업(전통적인 영화산업과 음원으로 대체되고 있는 음반산업 등, 그리고 프로화된 스포츠산업 또한 엔터산업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의 위상과 영향력의 사회적 배경에 관심이 간다.
이를 위해서 후기산업사회에 앞선 산업사회를 살펴보자.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두 계층이라면 자본가와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형성을 위해서는 잉여가치가 중요하고 잉여가치의 창출에 노동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 앞서 노동의 가치에 주목하고 노동의 가치가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하고 교환됨으로써 인간은 소외된다고 보았다. 우선 자신의 소유가 되어야 할 노동이 상품화, 자기의 것이 되지 못하면서 산업사회의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또한 산업사회의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에서 우리는 노동의 결과 전체에 관여하지 못하게 된다. 이 또한 소외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한편 후기산업사회에 들어서는 두 가지 개념으로 사회를 진단하는데 물화(物化) 혹은 사물화와 대상화(對象化)가 그것이다. 이들 개념은 이전부터 사용된 것이기는 하지만 후기산업사회를 진단하기 위해 소화된 개념이다. 물화는 사람의 가치가 사물로 치환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소유한 자동차나 아파트의 평수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상화는 자신의 본성에 기초하여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체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서 자신의 실체를 대입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이를 연기한 배우, 그리고 아이돌에 대한 지나친 경도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화나 대상화 모두 산업사회의 소외의 연장이라 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산업사회의 상품화와 분업화가 사회적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후기산업사회의 특성인 물화와 대상화는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병리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더군다나 후기산업사회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요소를 해소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그 심각성이 크다.
BTS의 공연을 가지고 생각이 지나치게 앞서 나갔다. 우리 문화에 국제적으로 보편성 성격을 장착할 호기를 맞이한 지금에 괜한 심술을 부리고자 하는 심사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럴 이유도 없다. 다만 우리의 시대가 가진 병리적 현상에 비추어 사유할 필요는 있다 싶어 두서없이 해 보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현상이 신화가 사라진 시대에 이를 대치하는 우상의 등장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신화시대로부터 이후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인류는 사회의 통합과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신화라는 콘텐츠를 민족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질이 우선되는 산업사회에 들어 경제로 통합되는 세계의 영향으로 민족성이라는 고립된 성격이 옅어지면서 신화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신화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물질, 즉 자본주의의 가치를 지닌 우상이다. 그것이 대중스타와 같은 인격적 존재일 수도 있지만 포괄적으로 볼 때 물질 그 자체라고 보아야 적절하지 않을까.
다소 우울한 생각이지만 우리는 낭만적인 신화를 버리고 물질이라는 우상을 바라보는 시대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