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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20. 2022

남편 따라 스쿠버다이빙

결혼하고 5년이 지났을 땐가. 남편은 취미를 가지고 싶다며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겠다고 했다. 금방 그만둘 줄 알았는데 자격증을 따더니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이곳저곳을 다녔다. 육아와 상관없이 취미활동을 하는 남편도 남편의 운동 신경도 샘이 났다. 그래서 남편이 스쿠버 하러 간다고 할 때마다 팥쥐 엄마처럼 이불 빨래며 냉장고 청소, 화장실 청소 등을 시키며 이걸 다 해야만 갈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남편은 항상 시킨 일을 다 하고 유유히 스쿠버를 하러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나를 위해 체험 다이빙을 신청해주었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해보고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못 하면 못 하는 거지. 뭐 어떻게 되겠어?’ 며칠 뒤 온 가족이 함께 잠실 올림픽공원 수영장으로 향했다(잠실 올림픽공원 수영장은 수심이 5m인 구간이 있어 스쿠버다이빙이나 프리다이빙 강습을 많이 한다).


      

내가 체험 다이빙 수업을 받는 동안 남편은 옆에서 아이를 봐주었다. 육아를 해야 한다고 모든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부부가 함께 시간을 조절하고 서로 배려하면 할 수 있다. 항상 내가 아이의 놀이 체육, 놀이 미술을 하는 센터에 가서 그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는데 그날은 반대였다. 아이는 내가 수업받는 걸 보고 내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엄마도 하고 싶은 게 있고 배우고 싶은 게 있다는 걸 아이가 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쿠버다이빙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난 운동 신경이 전혀 없고 심지어는 수영도 하지 못한다며 몸치 중에 몸치라고 했다. 선생님은 스쿠버와 수영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시며 정말 친절히 가르쳐 주셨다. 무슨 동작 하나를 할 때마다 쌍 따봉을 하며 엄청 잘한다고 칭찬에 칭찬을 했다. 내가 성인이 된 후 이런 칭찬을 받은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편의 말에 의하면 선생님 칭찬의 정도는 '당신은~ 스쿠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고 했다. 칭찬을 받아서인지 몸에 닿는 물의 느낌이 좋았고 물 안에서 해야 하는 간단한 동작들을 잘 수행했다는 만족감이 컸다. 

“정말 잘하시는데요! 부부가 같이 스쿠버 하시면 좋겠어요.”

강사님의 말에 난 바로 그날 오픈워터 자격증 코스를 신청했다.      



그러나 그날뿐이었다. 그 뒤로는 수강료를 지급해서인지 선생님은 체험 수업을 할 때만큼 칭찬해주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난 스쿠버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운동신경이 없는 난 연습을 자주해야 겨우 평균만큼 할 수 있는데 스쿠버 강습은 횟수가 정해져 있어 내가 따로 연습할 수 없으니 당연히 열등생이었다.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려면 수영장 수업 몇 번을 한 후, 바다에서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바다는 수온이 차가워 필리핀 보홀에 가서 테스트를 받기로 했다.     



보홀에 도착한 후, 처음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로 가는 보트에서 선생님께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자격증 못 딴 사람 있었나요?” 

“아니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럼 제가 최초가 될 수도 있겠네요.” 

선생님은 웬일인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아뇨, 그럴 리가요! 100% 다 딸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바다는 수영장과는 달리 조류가 있다. 보트의 밧줄을 잡고 아래로 내려갈 때 산호에 발이 쓸려 상처가 났다. 살짝 긴장됐지만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려갈 때는 긴장되고 무서웠는데 바다에 내려오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선생님은 오픈워터 과정을 듣는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수영장에서와는 다른 표정이 됐다. 눈이 위로 쫙 올라가서(동화책 속의 팥쥐 엄마 표정) 사람들을 부지런히 살폈다. 칭찬은 기대할 수 없었다.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난 매번 간당간당하게 그것들을 수행했고 번번이 공기조절에 실패해서 다른 사람은 다 바다 밑바닥에서 미션을 수행하는데 내 몸뚱이만 둥실둥실 바다 표면을 향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날 잡으러 왔다. 허리에 차는 웨이트 무게도 더 무겁게 찼고 BCD로 공기를 조절해 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창피했고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바다 밖에서는 두통에 시달렸고 코피도 몇 번이나 났다. 바다에 11번 들어간 후,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흔들며 선생님과 사진도 찍었지만, 그냥 그것뿐이었다. 선생님은 내 자격증을 보며 한마디 했다. “이 자격증도 형수님 운전면허증처럼 장롱면허되겠네요.” (내 남편을 형이라고 부르는 선생님은 날 보고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아니, 뭐라고? 이 사람이!’ 조금 열받았지만 사실은 뜨끔했다. 그날로 스쿠버다이빙을 안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의 그 말이 날 자극했다. 

‘내가 안 하나 봐라!’     



가족여행을 하면서 스쿠버다이빙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엔 항상 긴장되고 무섭지만 우선 들어가기만 하면 괜찮았다. 한참 물 안에 있다 보면 또 둥실둥실 나 혼자 바다 표면을 향해 떠오르지만 대부분 옆에 있던 가이드가 날 케어해 주었다. 그러고는 2년 뒤, 처음 배웠던 강사님과 사이판으로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한 번 더 갔다. 이번엔 나에게 어떤 노하우가 생겼는지 바다에 있는 동안 혼자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익숙해지겠다, 하는 찰나였는데 코로나 19로 스쿠버도 해외여행도 모두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지 않은지 3년이 더 됐다. 이젠 다시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격증이 장롱면허되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발끈해서 더 하려고 한 건데 바다에 들어가려고 보트를 탈 때마다 즐거움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막상 깊은 바다에서는 내 숨소리 외에 들리지 않는 고요함도 좋고 다채로운 바다 풍경을 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왜인지 다시 물 위에 올라와서는 즐거웠다는 생각보다는 미션을 클리어했다는 후련한 느낌이 든다. 익숙해지면 두려움은 적어지고 즐거움이 늘어날 테니 조금만 참자, 했는데 스쿠버는 고비용 스포츠다 보니 익숙해질 만큼 자주 할 수가 없다. ‘포기하지만 말자.’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왜 포기하면 안 되지? 엄청 즐거운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스쿠버다이빙이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하는 가족 레저가 됐으면 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가족끼리 뭔가를 함께 하는 걸 싫어할 수도 있을 테니 그전부터 자연스럽게 1년에 한 번, 스쿠버다이빙을 해서 이걸 가족문화로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럼 아이가 청소년이 돼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함께 즐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안전상의 문제로 스쿠버를 할 수가 없어 남편과 내가 바닷속 세상을 구경하러 갈 때마다 아이는 요트에서 우릴 기다리거나 숙소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도 우리 부부도 아이가 주니어 오픈 워터 자격증을 딸 수 있는 11살만 기다렸다.      



코로나로 수영장도 바다도 가기 어려울 때 아이는 11살이 되었고 스쿠버는커녕 엄마, 아빠와 함께 집 앞 공원도 가기 귀찮아하는 집순이가 되었다. 사춘기가 되기 전에 온 가족이 즐겁게 뭔가를 함께하는 가족문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 글렀다. 코로나 2년 차에 아이는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안 나오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가 스쿠버를 배운다고 하면 그 옆에서 나도 함께 곁눈질하며 배워보려고 했는데, 하기 싫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옷장 서랍 안에 있는 스쿠버 슈트와 마스크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몸치라고 배우자마자 ‘안 돼, 못 해, 그만둬야지.’ 하는 태도도 좋지 않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운동을 하며 참고 계속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이 있을 텐데 말이다. 운동신경이 없는 나는 가끔 하는 고비용 운동은 맞지 않는다. 혼자 매일 연습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돈을 쓴 후에야 그걸 알다니.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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