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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20. 2022

어른이 되어 다시 하는 수영

스쿠버를 처음 배웠을 때 스쿠버를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수영 강습을 신청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배우지 않았던 수영이다. 스쿠버 선생님은 수영과 스쿠버는 상관없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수영을 하면 물에 대한 감각이 좀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그즈음에 들었던 친구의 말도 내가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수영을 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져.”

수영하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세상이라고 했다. 그 세상이 무슨 세상일지 나도 알고 싶었다. 당시 두 달 뒤에 세계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유럽과 호주, 아시아 8개국을 도는, 세계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좀 보잘것없는 여행일 수도 있지만 집도 팔고 회사도 정리하고 나름 큰맘 먹고 추진한 여행이었다. 그렇게 가는 여행이니 즐거워야 했다. 여행을 가면 수영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신혼여행 때 발리 풀빌라에서 수영을 못해 발차기만 했던 아쉬운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까짓 거 한번 해보자.’


 

여행하기까지 남은 두 달 동안 1:1 수영 강습을 받기로 했다. 수영은 샤워를 해야 해서 번거로운 운동이란 생각이 컸는데 어차피 아침엔 씻어야 하니 새벽에 수영을 가면 번거로울 것이 없다. 아이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딸은 아침잠이 많다. 내가 운동을 다녀와도 아빠와 함께 쿨쿨 자고 있을 게 뻔하다.      



살짝 어스름한 새벽.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으로 갔다. 자전거를 세우는데 락스 냄새가 났다. 수영장 냄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어릴 적 수영 선생님이 아이들을 번쩍 들어 물에 첨벙 던지던 기억이 떠올랐다. 

‘괜찮아. 다 큰 어른을 들어서 물에 던질 것도 아니고. 첫날이니까 발차기나 하겠지.’

다행히 선생님은 친절했다. 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제가 운동신경이 엄청 없어서 운동을 잘못해요. 마음과 달리 몸이 안 따라줘요.’ 하고 선생님께 내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시고 수영을 어디까지 배웠냐고 물으셨다. 

“물에는 떠요.”

발차기와 음파 음파 호흡하는 걸 다시 배웠다. 발을 찰 때마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팔을 돌릴 때마다 느껴지는 물의 촉감이 좋았다. 한 달이 지나니 조금 어설프지만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됐다. 선생님은 곧바로 배영도 알려주셨는데 나 혼자 물 위에 누워 수영장 천장을 보며 움직이는 그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선생님이 분명 내 머리 아래에 손을 대고 계셨다. 계속 그런 줄로 알고 발차기를 하는데 선생님은 손을 뗐다며 나에게 자신의 손을 보여주셨다. ‘어머, 내가 지금 혼자 배영을 하는 거야?’ 기분이 너무 좋아 ‘으하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수영장에 내 웃음소리가 널리 널리 울려 퍼졌다. 선생님은 얼른 ‘조용히 하세요.’ 라며 조용히 하라는 (쉿!) 포즈를 했다. 웃음소리는 멈췄지만 올라간 입꼬리마저 내리긴 어려웠다. 미소를 지으면서 나만 사용하는 레인(1:1 수업이라 레인 하나를 사용한다)을 유유히 헤엄치던 그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두 달 남짓 수영을 배운 후 여행을 갔다. 자유형도 배영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그래도 남편은 자유형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1:1로 배워서 그런지 자세가 좋은데!’라고 했다. 운동하며 칭찬받는 일은 드문 일이라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배영은 잘 못 해서 그나마 나은 자유형을 했는데 리조트 같은 풍경 좋은 수영장에서 선수인양 물안경을 끼고 수영을 하려니 조금 머쓱했다. 게다가 잘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고개는 내밀고 팔과 다리는 평형처럼 움직이는 수영을 많이 했다. 선글라스를 낀 채로 풍경을 보며 우아하게 움직이는 그 영법! 그걸 배워왔어야 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주변의 풍경과 하나가 된 듯 자연스럽다. 그에 반해 나는 어푸어푸어푸. 첨벙첨벙첨벙. 이 지역의 소음 메이커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저기 고개 내밀고 수영하는 사람 보이지? 나도 저렇게 우아하게 수영하고 싶어.”

“저거? 저거 개헤엄 아냐? 나도 할 수 있는데.”

남편은 고개를 내민 채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나와 점점 멀어졌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여행이 끝나고 급하게 이사한 집을 정리하고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정신없던 3월이 지나고 4월. 집 근처 수영장에 등록했다. 첫 강습 날 조금 늦어 헐레벌떡 수영장에 들어갔다. 눈치로 기초반 레인을 찾아가 줄을 섰다. 

“수영 얼마나 했어요?”

줄을 서 있는 나에게 선생님이 물었다. 

“아, 두 달 정도요. 자유형만 조금 해요.”

선생님은 킥판을 주면서 자유형 팔 돌리기와 발차기를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몇 바퀴 돌았나, 선생님이 나보고 이번엔 배영을 하라고 하셨다. 

‘오, 벌써 배영? 내 자세가 좋아서 빨리 진도를 나가는 건가?’ 

어깨가 으쓱했다. 선생님은 배영은 우선 물에 편하게 누우면 되고 처음이니 팔은 돌리지 말고 발차기만 해보라고 하셨다. 선생님께 말씀은 안 드렸지만 사실 난 배영도 조금 배웠으니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뒤로 기울여 물 위에 누웠다. 발을 앞뒤로 첨벙첨벙. 헛.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왜 안 가지? 이유를 모르겠다. 나로 인해 우리 레인에 정체 현상이 일어났다. 내 뒤의 다른 회원들이 앞으로 가지 못한다. 난 상황을 인지하고 얼른 일어나서 길을 터줬다. 그러고는 다시 배영 발차기를 하다가 다시 일어나서 길을 터주고. 다시 배영 발차기, 다시 일어나 길 터주고. 이것만 반복. 발을 차는데 계속 제자리다. 너무 창피해서 뽕, 사라지고 싶었다. 그렇게 또 누워서 발차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날 툭툭 쳤다.
 “저기요, 수업 끝났어요.”

나만 빼고 회원들이 선생님 주위에 다 모여 있다. 깜짝 놀라 그곳을 향해 가려던 찰나, ‘저기까지 걸어가야 하나 수영을 해서 가야 하나.’ 고민이 됐다. 물의 밀도가 높아 걸어가는 게 더 늦을 거라는 생각에 자유형을 하려는데, “아후, 그냥 오세요, 그냥 와!”하는 선생님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 이어진 와하하하. 웃음소리. 입술을 꽉 깨물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같은 반 회원들끼리 손을 가운데로 모아 어쩌고저쩌고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선생님께 인사한 후 해산했다.      



‘내가 여기 다시 오나 봐라. 내일부턴 절대 안 와. 절대! 니들끼리 천년만년 수영만 하고 살아라! 흥!’ 혼자 씩씩대며 샤워를 했다.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어디서든 겪을 일 없는 수모다. 너무 씩씩거려서 정신이 없었는지 집에 와서 보니 수영모가 없다. 

‘됐어, 됐어. 수영 따윈 하지 않을 거니까.’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아쉬워졌다. ‘그래, 또 모르지.’ 터덜터덜 걸어서 다시 조금 전 그 수영장을 갔다. 운 좋게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만나 수영모를 찾을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퍼뜩 드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누워서 발차기를 하세요.’라고 가이드만 듣고도 배영 발차기를 할 수 있는 건가. 정말 그럴까?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보통 사람들의 운동신경이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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