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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26. 2022

이번엔 기구 필라테스

고등학교 동창이 소개해준 필라테스 학원에 전화를 하고 방문했다. 선생님은 날 거울 앞에 세우더니 내 몸 이곳저곳의 문제점을 말해주셨다. 골반이 비뚤어졌다는 것과 라운드 숄더라는 것. 전체적으로 조금 비대칭이지만 이 정도는 운동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했다. 뭔가 전문적이라는 느낌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선생님은 마침 프로모션 중이라며 50분 한 타임에 원랜 7만 원이지만 이번 주까지 6만 5천 원으로 할인해 준다고 했다. 이런 프로모션은 연말이나 연초에 한 번 정도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10회를 기준으로 결제해야 한다고 하니, 한 번에 내야 할 금액이 65만 원이다. 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아주 큰 금액이다. 조금 망설여졌다. 그러나 마음이 이미 기울었는지 바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닐지도 몰라. 운동을 안 해서 병에 걸린다고 쳐 봐. 그럼 엄청나게 큰돈과 시간, 에너지를 쓰게 되잖아. 미리 운동해서 건강하게만 지낼 수 있다면 이게 얼마나 이익이야.’

“신청할게요.”

그 자리에서 바로 카드를 긁었다.


     

결제한 뒤, 회원카드를 작성했다. 회원카드에는 그간 해왔던 운동을 적는 칸이 있었다.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 수영을 배웠던 터라 ‘수영’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을 왔다 갔다 했으니 ‘자전거’라고도 적었다. 그걸 본 선생님은 반가운 얼굴이 되어 묻는다. 

“수영 좋아하세요? 얼마나 하셨어요?”

“1년 조금 안 되게요. 매일 새벽 수영 다녔어요.”

“매일요?”

“네. 자전거도 매일 타고요.”

“우아, 운동 엄청 좋아하시는구나. 저도 운동 엄청 좋아해요. 참, 등산도 좋아하세요? 마라톤은요? 달리는 것도 좋아하세요? 저희 필라테스 학원이 일 년에 몇 번씩 함께 마라톤도 나가거든요. 같이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하면 좋겠어요. 어머, 잘 됐다아.”

선생님은 시간 변경이 필요할 때는 자신의 카톡으로 연락을 주면 된다며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내 핸드폰에 선생님 카톡 프로필이 떴다. 선생님의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히말라야 등반 가서 찍은 사진, 정말 제대로 갖춰 입고 자전거 타는 사진. 선생님은 내가 자신의 수준으로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단단히 오해하셨다. 선생님이 등산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일주일에 한두 번 회사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오르던 근처 뒷산을 생각하고 좋아한다고 대답했는데.    


 

선생님은 내가 밀고 당겨야 하는 필라테스 기구의 스프링을 아주 강한 걸로 세팅했다.

“으아, 못 해요. 안 돼요. 너무 힘들어요!”

닫혀있던 땀구멍이 열렸는지 땀이 줄줄 흘렀고 선생님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 운동을 좋아한다고 해서 허벅지 근육이랑 코어가 잡혀 있을 줄 알았는데요.”

“그냥 다 살짝, 살짝씩만 한 거예요.”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난 울먹이며 필라테스 기구의 스프링을 가장 약한 걸로 바꿔달라고 했다.


      

수업하며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고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못 해요, 못 해.”였다. 수업 50분이 끝나면 온몸이 너덜너덜해지는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기력이 회복되지 않아 안내데스크 앞 의자에 5분 정도 앉아있다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갔다. 매번 어렵고 매번 힘들다. 10회가 다 끝났는데도 눈에 띄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몸이 나아졌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에 선생님은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며 칭찬해주셨다. 그렇게 또 10회를 결제했다.     



처음 기구 필라테스를 배우기로 한 건 매트에서 하는 필라테스나 소도구 필라테스를 할 경우, 내가 선생님의 자세를 잘 따라 하지 못할 테니 효과가 없을 거라고 판단해서다. 기구 필라테스를 하면 기구가 내가 바른 자세를 잡도록 도와주니까 혼자 이상한 동작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예 안 되는 동작이 있을 수는 있어도.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구 필라테스의 큰 단점을 깨달았는데, 그건 집에서 연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난 수업 시간만으로는 나아지기 힘든 운동신경의 소유자라 집에서도 연습해야 평균이 될까 말 까다. 일주일에 두 번, 100분. 뻣뻣한 내 몸이 나아지기엔 턱도 없는 시간이다. 

“선생님, 집에서도 연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요?”

“특별히 안 하셔도 되는데. 굳이 꼭 하고 싶으시다면 걸으실 때 시선을 아파트 2층을 본다고 생각하고 조금 위를 보고 걸으세요. 그럼 자세가 많이 나아질 거예요.”

난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걸을 때마다 시선을 조금 위로 두고 걸었다. 2층, 2층, 되뇌면서. 그런데 별반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재결제, 재결제, 재결제를 반복하다가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 같아 4:1 수업으로 변경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하다 보니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어깨에 과하게 힘이 들어간다는 것도, 등에 컬이 생기는 후굴 자세나 스완 자세는 거의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코어에 힘은 조금 생겼지만 유연성은 아무리 해도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선생님, 전 왜 유연해지지 않는 걸까요?”

“아, 회원님은 타고나길 뻣뻣하게 타고났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만큼 확연히 나아지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지셨는걸요.”

기대가 컸던 탓인지 내 몸이 나아지는 속도는 내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근육도 생기지 않은 것 같은데 살만 찌는지 몸무게가 늘었다. 

“선생님, 몸무게가 자꾸 느는데 이건 살이 아니라 근육이 생겨서겠죠?”

“그럼요, 회원님. 근육이 는 걸 거예요.”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근육은 무슨 근육이야. 근육이 생기면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자기가 가장 먼저 안다고!”     


기구 필라테스를 한 지 일 년이 넘은 어느 날, 선생님께 또 물었다. 

“선생님, 그런데 필라테스는 대체 언제 재미있어져요?”

선생님은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셨다. 

“어머, 회원님, 아직 재미가 없으세요?”


운동의 재미는 달라지는 데 있다. 어제까지 안 됐던 동작이 되고 뭔가 진전이 있다고 느껴질 때, 노력한 만큼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 재미는 다른 어떤 재미와도 바꿀 수 없다. 내 노력과 땀으로 이뤄낸 재미다. 몸이 둔한 나는 어떤 운동을 하게 되면 운동신경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쾌감을 느낀다. 운동 신경이 있는 사람은 그냥 하는 동작도 몸치인 나는 ‘우아, 내가 이런 동작을 할 수 있다니!’하고 감격한다. 아마도 지금껏 계속 운동을 배우고 하려고 하는 이유는, 어릴 때 성공했던 운동- 자전거 타기, 스케이트-의 느낌을 잊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재미가 없어서, 1년 반 남짓한 필라테스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아예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필라테스 선생님 덕분에 마라톤이라는 운동을 접하게 됐으니. 그냥 슬슬 산책하거나 뛰는 게 아니라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점까지 달리는 마라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마라톤은 운동 기술 습득에 최약체인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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