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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27. 2022

앗. 허리가 삐끗했다.

우리 집과 멀지 않은 헬스클럽에서 단체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새로운 곳에 가서 운동을 시작하기가 애매해 운동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며 홈트레이닝을 했다. 근육이 생겨야 나중에 어떤 운동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주로 근육 강화 운동을 따라 했다.   


  

사실 제대로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운동하는 공간인 거실에는 전신 거울도 없고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봐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비슷하게 하고 있겠거니, 생각만 할 뿐. 운동하고 나서는 단백질 셰이크도 마신다. 근육아, 생겨라. 근육아, 생겨라. 집에서 어린이책 편집을 외주로 받아하고 있는 터라 운동을 한다고 해도 앉아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적어도 하루에 7,000보는 걸어 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걸음을 측정해주는 앱을 설치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자꾸 허리가 욱신거린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왼쪽 다리 안쪽 근육도 찌릿하다. 처음 느끼는 통증이다. 역시 근육이 부족한 탓인가. 더 긴 시간 근육 강화 운동을 따라 한다. 그래, 걷는 게 허리에 좋다지. 더 긴 시간 걷는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도 다리도 찌릿찌릿하다. 괜찮지 않다. 집 근처 한의원을 검색하고 생애 최초로 한의원에 갔다. 5분도 안 걸리는 아파트 앞 상가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한의원에 도착해서 유리문을 미는데 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문을 민다. 끼이이이익. 입에서 거친 숨이 나온다. 대기실 의자에 앉으려고 자세를 낮추니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근육이 찌릿하다. 으윽. 의자에서 일어날 때도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으윽. 침을 맞으려고 침대 위로 올라가는 건 더 큰 일이다. 왼쪽 다리를 침대 위로 올려야 하는데 다리를 들려니 너무 아프다.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꾸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다리를 번쩍 올렸다. 으악. 한의사는 허리와 왼쪽 다리를 눌러보더니 내전근이 다친 것 같다고 했다. 

“집에 가셔서 내전근 운동 유튜브를 찾아보세요. 아마 많이 나올 거예요.” 

‘치. 직접 알려주지.’ 

이제 침을 맞을 차례다. 생애 처음 맞는 침. 아프다. 침을 맞을 때마다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다른 분들도 다 이 정도는 맞으세요.”

순간 머쓱해진다. 의사는 침을 다 놓고 말한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이상한 질문이다. 

“다 불편한데요.” 

의사는 큭 웃더니 가버렸다. 침을 다 맞고 겨우 침대에서 내려와 절뚝거리며 집으로 왔다. 이상하게 더 아프다. 저녁으로 시킨 비빔국수를 반도 먹지 못했다. 식욕이 없다. 책을 볼 수도 글을 쓸 수도 청소를 할 수도 설거지를 할 수도 없다. 예능 프로그램을 조금 보다가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는다.   왜 이렇게 아프지. 원인을 찾는다. 근력 운동을 잘못된 자세로 했을까, 많이 걸은 게 문제였을까, 그보다 앞서서 다리를 꼬고 앉는 습관이 문제였을까. 살짝 잠이 들었다가 통증에 또 깬다. 나에게는 진통제가 필요하다.     

 


다음 날 아침, 신경외과에 갔다. 병원 문 여는 시간보다 살짝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두 시간 대기하셔야 하는데 기다리시겠어요?” 

간호사의 말에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 한 시간쯤 뒤에 엑스레이를 찍고 또 한 시간쯤 뒤에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를 만나볼 수 있었다. 설마 두 시간일까, 했는데 정확히 두 시간이었다. 의사는 내가 걷는 것을 보고 또 의자에 못 앉는 것을 보고 허리디스크가 의심된다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니 MRI를 찍으라고 했다. 이틀 뒤로 MRI예약을 했다. 진통제가 들어간 약 처방전을 받고 심한 진통을 가라앉히는 마약 주사를 맞고 집으로 왔다. 그래도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잉, 짜증 나. 짜증 나.”

거실 소파에 앉아 ‘짜’에 강세를 주며 혼잣말을 계속했다.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며칠 전 신호등 초록 불에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해 손으로 차를 막으며 건너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러다가 퍼뜩 예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일 하나가 갑자기 이해가 됐다. 몇 달 전, 버스 정류장에서 한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저상 버스가 생겨서 좋다며 자신은 계단 있는 버스는 와도 타지 않고 저상 버스만 탄다고 했다. 그때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버스에 계단이 있어봤자 세 개 아니면 네 개인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지금은 그 할머니의 심정을 백 퍼센트 이해한다.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을 정도다. 잊고 있던 이 사건은 내 머릿속 어디에 숨어 있다가 툭 튀어나온 걸까. 없는 듯 있다가 내가 이해할 수 있을 시점에서 ‘이젠 알겠니?’ 하며 깜짝 등장했다. 아직도 머릿속엔 내 공감 능력 부족으로 이해받지 못한 사건들이 곳곳에 숨어 있겠지.      



 생각은 쭉쭉 뻗어 나가 날 또 다른 장면으로 데리고 간다. 책 모임에서 ‘노란 들판의 꿈’을 읽고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장애인 인권 중 이동권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다. 

“우리가 모임을 하는 이곳만 해도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지죠.” 누군가가 말했다. 모임 장소는 계단이 가파른 2층에 있는 서점이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에게는 정말 곳곳이 장애물이겠다.’하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내 시야가 넓어졌고 좀 더 소수자를 배려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장면에서의 나는 베푸는 입장이다. 장애인들과 같은 위치가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본다. 내가 그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버스의 계단과 서점의 계단이 거대한 장애물로 느껴진다. 경험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나의 얕은 공감 능력이 놀랍다. 이 세상 많은 일들을 모두 경험할 수는 없는데. 더 많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그러면 조금 더 깊어질까. 경험하지 않은 일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는 제일 잘 공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다행히 내 허리는 며칠 후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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