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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27. 2022

명상이 되는 운동

코로나 유행 초기에는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됐다. 보통 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갔던 장소들의 방문이 상식 없는 사람의 행동처럼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렸다. 

“미쳤나 봐. 이 사람 헬스장을 갔대.”

“이런 시기에 카페를 가고 싶나. 정말 이해가 안 돼.”

“결려도 싸다, 싸.”     



난 프리랜서라 주로 작업할 땐 카페에 가서 한다. 집에서는 자꾸 늘어지고 집안일에 신경이 쓰여 작업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카페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러 가는 장소가 아니라 작업실이다. 그러나 만약 나의 동선이 공개된다면 ‘**동 스벅녀.’로 찍혀 생각 없는 사람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게 뻔하다. 이 와중에 헬스장에라도 갔다면? 수영장에라도 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코로나 시대의 운동은 집에서 혼자 하는 홈트레이닝이나 자전거 타기 또는 달리기가 제격이다. 허리를 다친 이후로 홈트레이닝을 하는 유튜브를 조금 바꿨다. 먼저 스트레칭 영상, 그다음 허리 통증에 좋은 영상을 따라 한다. 그다음엔 부담 없는 걷기나 전신운동으로 마무리. 마지막 스트레칭도 잊지 않는다. 욕심을 버리고 쉬운 동작 위주의 영상으로 구성했다. 무리하면 안 하는 것만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허리가 좀 회복된 이후에는 조금씩 달리기를 했다. 마스크를 쓰고 달려야 한다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턱과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긴 했지만 궂은 날씨만 아니라면 아무래도 답답한 집보다는 밖이 낫다. 적어도 강바람과 냄새를 느낄 수 있으니. 난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침보다는 밤에 달리고 싶은데 아이는 자기 혼자 밤에 있으면 무섭다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 때, 스트레스가 쌓여 터질 것 같을 때, 마음이 복잡할 때. 그런 밤에 얼마나 나가서 뛰고 싶었는지 모른다. 

‘밤에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밤에 달리는 사람들 좋겠다, 난 언제나 밤에 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감사하게도 똑딱똑딱 시간은 성실히 가고 아이는 자랐다. 드디어 나도 밤에 뛸 수 있게 되었다.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는데 막상 저녁에 뛸 수 있게 되니 잘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가 “엄마, 요즘엔 저녁에 안 뛰어?”하고 묻는다. 

 

며칠 전, 저녁을 먹고 몸이 찌뿌둥해져서 뛰려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이는 뛰러 나가는 거냐며 잘 다녀오라고 활짝 웃으며 배웅한다. 내가 없는 동안 TV로 유튜브를 볼 심산이겠지.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이와 똑같이 활짝 웃으며 잘 다녀오겠다 인사했다. 천천히 뛰며 호흡을 정리한다. 흐읍 들이쉬고 훅훅 나눠 내쉰다. 바람에 시원하게 머리가 날려 땀이 나도 끈끈하지 않다.  


    

오랜만에 러닝 앱을 켰다. 예전에도 러닝 앱의 코칭을 들으며 뛴 적이 있는데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잘 사용하지 않았다. “파이팅”, “포기하지 마세요,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뛰는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하는 말이 귓가에서 계속 울리는데 힘이 된다기보다는 시끄러웠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달리면서 여러 생각이 정리되는 것 때문이기도 한데 내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오랜만에 혼자 뛰는 건 힘드니까, 그럴 땐 코칭을 들으면서 뛰는 것도 괜찮다. 특히 자세에 대해 가이드를 해주는 부분은 도움이 많이 된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일이 많지 않아서인지 앱에서 들리는 코치의 목소리가 정겹다. 엉성하게 핫둘핫둘 뛰는데 “허리를 곧게 펴세요!”, “팔은 배꼽 아래의 북을 치듯이 앞뒤로 움직여주세요.”라는 가이드 목소리가 들린다.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다. 아흑, 힘들어 못 뛰겠다, 하고 멈췄는데 “트레이닝할 때 걸으면 안 돼요. 천천히라도 뛰세요.”한다. 어머, 어떻게 알았지? 러닝 메이트가 생긴 기분이다. 30분 러닝 코칭이 끝난 후엔 러닝 앱을 끄고 달렸다.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열심히 파워 워킹을 하시는 어른들이 많다. 엄마가 우리 집 근처에 사셨을 때, 엄마 아빠가 함께 한강을 자주 산책하셨다. 이제 엄마는 우리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사시는데, 뽀글 머리에 아담한 몸매, 팔을 앞뒤로 흔들며 걷는 아줌마를 보면 번번이 엄마인 것 같아 살펴보게 된다. 밤이라 더 비슷해 보인다. 분명 엄마는 여기 있을 리가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살핀다. 

‘어후, 내가 왜 이래.’하며 뛰다가 또 엄마 같은 아줌마를 만난다. 그러다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 생각은 엄마 걱정이 되다가 기도가 된다. 엄마는 힘든 얘기를 좀처럼 하지 않아 잘 지내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항상 괜찮다고 한다. 호흡에 맞춰, 뛰는 리듬에 맞춰 기도한다. 바람을 타고 기도가 하늘로 올라간다.      



몸을 리듬에 맞춰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 호흡을 일정하게 들이쉬고 내뱉는 것은 머리를 맑게 해 준다. 이날처럼 기도가 나오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생각나기도 한다. 가끔은 엉망으로 쓴 글의 퇴고 방향이 퍼뜩 떠오른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라도 기분은 달리기 전보다 나아진다. 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한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해가 됐다. 걷는 게 왜 명상이 되는지 알 것 같다. 고작 일주일에 몇 번, 평평한 한강 코스를 뛰거나 걷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오버려나. 그러나 정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걸.     



뭔가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을 때. 마음이 답답할 때. 머리를 싸매고 드러눕지 말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팔과 다리를 힘차게 움직여보시길. 꼭 뛰지 않더라도 숨을 후후 내쉬고 흡흡 들이쉬며 움직임에 집중한다면 상황은 바뀌지 않아도 적어도 마음은 나아질 거라고 확신한다. 사실은 어떤 일을 하든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이전 12화 앗. 허리가 삐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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