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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30. 2022

이번엔 테니스

또 도졌다. 이번엔 테니스를 배우고 싶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몸치면서 새로운 운동은 왜 이렇게 배우고 싶은 걸까. 남편이 회사 근처에서 테니스를 배운다길래 “나도, 나도 배울래!”라고 말했다. 이 세상이 내가 테니스 배우길 응원하는 것인지 마침 집에서 5분 거리에 실내 테니스장이 생겼다.      



체험 테니스를 예약하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아직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았는지 강습장 주변이 어수선하다. 한 명뿐인 선생님은 다른 수강생 강습을 하느라 바쁘시다. 앉아있을 곳도 마땅치 않다. 나와 남편은 코트 옆에 서서 다른 수강생 수업을 지켜봤다. 탕! 탕! 공이 라켓에 맞는 소리가 경쾌하다. 잘한다. 과연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 난 배드민턴도 못 치는데. 스멀스멀 두려움이 밀려온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그냥 안 할래.”

“왜?”

“어려울 거 같아.”

“그래도 체험 강습 예약했는데 하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운동을 잘하는 남편은 이런 내 마음을 모른다. 하고 싶다가도 막상 하려고 하면 두려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못해 깜짝 놀라고 난 수치심이 들 게 분명하다. 앞 타임 수업이 끝났다. 하필 남편이 업무 전화를 받으러 간 이때.      



“체험 테니스 예약하셨죠? 안으로 들어오세요.” 

남편이 잠깐 전화받으러 갔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선생님은 먼저 수업을 시작하자고 하신다. 

“제가 정말 운동 신경이 없거든요, 배드민턴도 못 치고 진짜 처음이에요.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할 수 있습니다. 자, 라켓을 이렇게 잡아 보세요.”

난 정말 엄청 못 하는 사람인데 선생님은 수강생들이 으레 하는 말로 들으시는 것 같다. 라켓 잡는 법을 알려주시고 자기를 따라 하란다. 그러고는 스텝을 2번 보여주더니, 이번엔 혼자 해 보라고 한다. 엥? 벌써? 이건 분명 몸치가 아닌 일반인을 가르치는 속돈데?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네? 혼자요? 다시 한번만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옆으로 가다가 왼발을 앞으로 하고 라켓을 뒤로 돌려 휙! 몸이 휘청. 15분 남짓한 체험 강습 시간 동안 “다시 한번 만요.” 혹은 “으악!” 혹은 “죄송합니다.” 혹은 “아!”하는 탄식 소리가 코트를 채웠다. 선생님은 나에게 “오늘은 하나만 기억하세요! 손등이 몸 쪽을 향하도록. 아셨죠?”란 말을 반복했고 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 하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재미있다. 뭔가에 홀린 듯 다음 달 수강료를 결제했다. 도전하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좋다. 전철을 기다리는데 나도 모르게 라켓을 쥐고 공을 치는 흉내를 냈다. 손등이 몸 쪽을 향하도록. 하마터면 뒷사람을 칠 뻔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했다.     



일주일에 두 번, 남편과 함께 2: 1 강습을 받으러 간다. 남편과 둘만 어딘가를 가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어색하기까지 하다. 난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게 편하고 남편은 그 반대다. 거의 겹치지 않는 생활 패턴을 조금씩 당기고 밀어 오전 시간을 맞췄다. 처음 선생님께서 운동 목적을 물어보시는데, 남편은 가족끼리 한 가지 운동을 같이 즐기는 게 목표라고 했다. ‘아. 우리의 목표가 그거였어?’ 난 테니스를 배우는데 별다른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라서 내 생각도 남편과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선생님은 알겠다고 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2개월 안에 두 분이 함께 랠리 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목표를 그렇게 잡다 보니 수업은 초보자인 내 위주로 진행됐다.      



매일 포핸드(오른손잡이일 경우, 라켓을 몸의 오른쪽 뒤로 돌려 공을 맞힌 뒤 스윙이 왼쪽에서 끝나게 되는 기술)와 백핸드(라켓을 왼쪽으로 돌려 스윙이 오른쪽에서 끝나는 기술)를 연습한다. 라켓을 쥐는 그립도 정확하지 않고 고정되어야 하는 손목이 자꾸 흔들거려 헛스윙하기 일쑤이다. 

“손목을 딱 고정하세요.” “힘을 빼세요. 힘을 그렇게 주다가는 손목 나가요.”

선생님의 조언을 마음속에 고이 새기지만 내 몸은 언제나 그렇듯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날아오는 공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돌아가고 내가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라켓을 어떻게 쥐고 있는지 생각할 틈이 없다. 핏대를 올려 열심히 설명하시는 선생님이 조금 안쓰럽다. ‘선생님, 사실 저도 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저 몸이 안 따라줄 뿐이지요.’      



남편은 나에게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곧 랠리를 할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배운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남편이 동네 실외 테니스 코트 예약을 했다. 남편과 랠리 할 실력이 안 되지만 한편으로는 도전하고 싶기도 하다.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아직 안 된다고 하겠지. 선생님께는 비밀로 한다.      



예약한 테니스 코트장은 4개의 테니스 코트가 함께 있다. 다른 코트의 진행 상황이 훤히 보인다. 창피한 마음에 주눅이 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코트는 이미 예약했고 난 여기에 왔다. 괜찮아. 갑자기 잘할 수도 있잖아? 실외 코트장 체질일 수도 있지. 그러나 역시. 난 멋대로 서브를 넣고 멋대로 쳐낸다. 공이 네트를 넘어 한 번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들다. 내 공이 옆 코트로 날아가서 “죄송합니다. 공 좀 주워 갈게요.”란 말을 열 번도 더 한 것 같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바른 자세는 잊은 지 오래. 한 시간이 지나니 손목이 시큰거렸다. “라켓 계속 그렇게 잡다간 손목 나가요.”란 테니스 선생님의 예언은 실현되었다.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아 정형외과에 갔다. 다행히 심하진 않았다. 언제까지 테니스를 할 수 없냐는 내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조금이라도 아프면 할 수 없지 않겠냐는 두리뭉실한 대답을 하신다. 이러다 아예 평생 못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어서 나아라. 어서 나아라. 시간 맞춰 열심히 약을 먹고 손목에 무리가 되지 않게 조심한다. 난 그제야 스트레칭이 중요하다는 것, 올바른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손목이 언제 나을까, 조급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테니스 코트에서 본 풍경을 이야기한다. 

“저번에 우리 앞 시간에 테니스 하던 할아버지들 봤지? 우리도 나이 들어서 저렇게 즐겁게 테니스 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길게 봐.”

테니스는 우리 부부의 노후 보험이다. 현재의 즐거움이 노후까지 이어질 수 있게 천천히 서두르지 않아야지.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손목이 나아도 잊지 않도록 조그만 목소리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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