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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25. 2022

어른이 되어 다시 하는 수영 2

수영을 못 하지만 수영은 재미있다. 집 근처 수영장에서 수모를 당했지만 수영까지 그만두기는 아깝다. 수영은 하고 싶지만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건 싫다. 나 때문에 우리 레인에 정체가 나타나는 현상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다. 1:1 강습을 찾아보기로 했다. 집에서 차 타고 10분 거리인 수영장에 1:1 강습이 있다. 그냥 강습보다는 비싸지만 일대일 필라테스나 개인 헬스 PT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주 2회 새벽 일대일 수영을 예약했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 먼저 꼭 해야 할 일. 구구절절 내 상황을 설명한다. 제가 운동 신경이 정말 없어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잘 안 따라 줘요. 한 가지 영법을 익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요. 등등.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왜 수영을 배우려고 하시는 거예요? 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순간 멍해졌다. 난 왜 수영을 배우지?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입 밖으로 말이 툭 나왔다. 

“재미있어서요.”

그 당시 수영은 꼭 해야 하지 않는데 하는 유일한 일이었다. 밥을 차리고 치우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출근해서 주어진 일을 하고, 그런 일 가운데 유일하게 안 해도 되는 일. 재미있는 일. 그게 바로 수영이었다. 내 말에 내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하루 중 나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하는 유일한 일이 바로 수영이구나. 그러므로 이 일은 나에게 참 소중하구나. 그러나 선생님은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아, 아, 취미 수영!”

별거 아니라는 듯.


     

선생님은 자유형 자세가 잘 못 됐다며 교정해 주셨다. 오른팔을 돌려서 수면에 돌아올 때까지 왼팔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왼팔이 돌아간다고 했다. 왼손과 오른손이 만난 후에 왼팔을 돌리라고 했다. 그렇게 하니 너무 숨이 차다. 연습이 부족해서겠거니, 생각하고 강습이 없는 날도 나와서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숨이 차서 쉬지 않고 50m 레인 끝까지 갈 수가 없다. 

“선생님, 자유형 할 때 너무 숨이 차는데요.”

“원래 숨이 차는 거예요. 달리기 할 때도 숨이 차잖아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뭔가 찜찜하다. 그래도 나아지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예전엔 배영을 하는 게 좋아 ‘아하하하’ 소리 내어 웃은 적도 있다. 그런데 왜 배영이 되지 않는 걸까.

“여자들은 90% 이상이 물에 누우면 그냥 뜨는데 신기하네요.”

“아하하하. 네.”

텅 빈 웃음을 지었다. 자꾸 가라앉고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다. 겨우 겨우 감을 잡고 나니 이번엔 고개가 비뚤어졌는지 자꾸 방향이 틀어진다. 선생님은 천장의 무늬 한 라인을 정해서 그 라인대로 쭉 가면 된다고 하는데, 타일이 일렬로 붙어있는 게 아니라서 다닥다닥 붙은 타일 중 어떤 게 내가 보던 타일 라인인지 헷갈렸다. 왼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다가. 남들은 쉽다고만 하는 배영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난 선생님께 빨리 평영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평영 역시 가관이었다. 평영 발차기를 하는데 발을 뒤로 찰 때 힘을 줘야 하는데 발을 모을 때 힘을 줘서 앞으로 가는 게 아니라 뒤로 간다. 선생님도 나도 황당해서 하하하. 웃었다.      



그래도 신기한 건 그 와중에 수영이 재미있다는 거다. 이렇게 못 하는데 재미있다는 게 신기하다. 처음에 수영할 땐 하루에 쓸 에너지를 새벽에 다 써버린 것 같이 기진맥진했는데 조금 익숙해지니 수영을 해야 기운이 났다. 감기에 걸리거나 생리를 할 때면 수영장에 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수영 이야기를 했다. 이 동작은 잘되지 않는데 왜 그러는지, 수영을 잘하는 비법이 있는지, 끊기지 않고 대화가 이어졌다.      



내가 운동신경이 둔해 수영을 천천히 배우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평영을 배울 때쯤,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회원님은 좋겠어요.”

“네?”

“아직 배울 게 많잖아요. 다 배우고 나면 지금처럼 수영이 재밌지 않거든요.”

그렇게 나름 즐겁게 어찌어찌 접영까지 배우게 되었지만 접영은 내가 넘기엔 정말 너무도 큰 산이었다. 몸이 뻣뻣해 웨이브도 전혀 되지 않고 상체에 힘이 없어서 물 밖으로 팔이 나오는 동작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하다가 선생님은 나에게 오리발을 사라고 하셨다. 오리발을 끼니 오리발 빨로 접영이 됐다. 정말 마법처럼. 그러나 오리발을 끼고도 접영은 쉽지 않았다. 그에 비해 오리발을 끼고 하는 자유형은 어찌나 편한지. 속도가 배는 빨라졌다. 내가 물고기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배영도 분명 이리저리 부딪히며 힘들었는데 오리발을 끼니 배영을 하는 시간은 그냥 쉬는 시간이 됐다. 오리발을 낀 다리를 휘적휘적 만 하면 금방 50m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모두 오리발이라는 마법이 있을 때뿐이었다.      



그렇게 오리발을 끼고 한두 달 했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계속 배우실 거예요?”

선생님은 자기가 사정이 생겨 날 더 가르칠 수 없다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선생님, 저 여기서 그만두면 기초반 다시 가야 돼요.”

“왜요? 그다음반 가면 되잖아요.”

“저 오리발 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접영도 전혀 안 되고요. 자유형도 숨차고, 배영도 가라앉고.”

“에이, 설마. 오리발 빼고 접영 해보세요.”

선생님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텐데. 난 오리발을 빼고 접영을 했다. 이건 접영이 아니다. 물에 빠졌을 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고 도움을 청하는 동작이다. 레인의 중간까지도 가지 못하고 멈춰 서서 뒤를 돌아 선생님을 봤다. 

“진짜 안되네!”

“네. 진짜 안 된다고요.”

그런 애매한 상태로 수영을 그만두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속으로는 ‘내가 다른 수영장 가서 배워서 다시 돌아온다!’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집과 제일 가까운 수영장은 이미 안 가기로 결심했던 수영장이고 이곳도 아니라면, 그다음엔 집 뒤의 수영장이 있긴 한데 그곳은 새벽 강습이 없다.      



그즈음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자신은 요즘 필라테스를 다닌다며 필라테스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세를 바르게 해주는 건 물론, 속근육과 코어 힘을 키워준다고 했다. 모든 운동이 결국엔 코어에서 나오는 힘이 있어야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자기는 자세가 바르게 되면서 키도 컸다고 했다. ‘그래, 이렇게 근력이 없는 상태에선 어떤 좋은 강사에게 수영을 배워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야. 결국은 근력이 있어야 자유형이고 평영이고 접영이고 할 수 있는 거지.’ 고등학교 동창이 이야기해준 필라테스 학원을 등록했다. 물론 이번에도 1:1 강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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