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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07. 2024

타석과 마운드

수치를 감수할 내 자리 

*타석: 

야구에서 타자가 공을 치도록 정해 놓은 구역

*마운드(mound):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서는 약간 높은 곳.      



우리 팀이 지고 있을 때, 난 야구를 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야구를 보고 있지 않다. TV 앞에 앉아 있지만 눈은 초점을 흐릿하게 하는 매직아이를 한다든지, 고개를 숙이고 빨래를 개며 귀로만 듣는다든지, 아예 청소기를 돌린다든지. 그러니까 청각이나 시각 중 하나를 차단한다. 우리 팀이 다른 팀에게 두들겨 맞는 걸 집중해서 볼 자신이 없다.      



연패를 하다 살짝 나아지는가 싶더니 또 연패를 하고 이젠 좀 나아지나, 올라가나, 싶더니 또 연패다. 어떤 야구 유튜브에서 ‘보통은 3연승부터 연승이라고 하는데, 롯데는 2승부터 2연승이라고 한다’며 웃었다. 흐흑, 롯데 팬들이 왜 그러겠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고요.


      

아직 경기할 날이 많이 남았다. ‘아직 날이 많으니 반등할 수 있어!’라는 생각보다 ‘두들겨 맞을 날이 많이도 남았구나. 어쩌지.’란 생각이 든다. 총 10개 구단 중 10위. 10위가 되기 전에는 ‘꼴찌만은 안 된다, 안 돼.’ 하며 전전긍긍했는데 막상 꼴찌를 하니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게 위안이 된다.      



선수들은 분노가 치밀까? 우울할까? 포기하고 싶을까? 도망가고 싶을까? 선수들의 얼굴에 시름이 깊다.      

나의 방어기제는 회피다. 그래서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너무도 그 자리를 뜨고 싶다. 내가 드라마에서 좋아하는, 아니 부러워하는 장면 중 하나는 ‘몇 년 후’라는 자막 뒤에 머리 스타일만 바꾼 채 행복한 얼굴로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살면서 막막할 때마다 머릿속에 ‘몇 년 후’라는 드라마 속 자막이 떠오른다. 잠깐 어디에 피해있다 나오면 내가 수치를 당할 법한 일들은 모두 정리되어 있고 나는 ‘음, 일이 이렇게 되었군.’ 하며 웃으며 등장한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연히 현실은 다르다. 좀 심하게 지고 있는 경기에선 마음이 힘들어 ‘아이코, 오늘은 안 되겠다.’ 하고 TV를 끈다. 그러면 야구가 없는 세상이 짜잔, 펼쳐진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진다. 평화롭다. 그러나 선수는 당연히 팬과 다르다. 점수 차가 얼마나 나든 그 수치를 감당하며 자기 순서가 되면 타석에 오르고 마운드 위에 선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야구 선수는 회사원과 달리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수도 없다. 퇴로는 없다.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끝이라는 생각, 다른 길은 없다는 생각은 참 무섭지만 그래서 이를 악물게 하겠지.      



나도 수치를 기꺼이 감당하는 자리에 서 있다. 이 자리는 피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바로 엄마라는 자리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느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수치를 감당하는 일이구나.’

마트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안 사주면 가지 않겠다고 엉엉 울 때. 그러다 드러누울 때. 난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고 우는 아이를 두고 자리를 뜬다. 아이는 어느새 뛰어와 내 다리에 매달린다. 상황은 끝나지 않고 아이는 나를 때린다. 결혼하지 않았을 때, 아이가 없었을 때, 멀리서 보고 눈살을 찌푸렸던 상황의 주인공이 된다. 바로 내가.      



아이의 머릿속엔 과연 어떤 생각들이 있을까. 아이가 여섯 살 때, 남편의 사촌 동생 결혼식에 갔다. 잘 모르는 시댁 친척들과 밥을 먹는데 딸이 갑자기 급발진을 한다. 

“전 우리 엄마가 싫어요. 새엄마가 오면 좋겠어요.”

황당해하는 나를 대신해 사촌 아가씨가 상황을 무마하려 한다.

“에이, 그래도 엄마가 좋지. 신데렐라의 새엄마 같은 사람이 오면 어쩌려고 해?” 

“그래도 괜찮아요. 새엄마가 더 좋아요. 우리 엄마 싫어요.”

몇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사람들 앞에서 아이는 입을 다물 줄 모른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황급히 아이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 이후로도 여러 일들이 있었다. 내 실수나 잘못이 아닌 자녀의 행동으로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아이를 키우기 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그러나 꼭 수치만 당하는 건 아니다. 감격스러운 일, 기쁜 일, 어깨가 으쓱한 일도 있다. 어떤 감정이 들던 난 엄마의 자리를 지킨다.      



엄마의 자리처럼, 마운드 위의 투수, 타석 위의 타자처럼, 내가 수치를 감당할 자리는 어디일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본격적으로 공모전에 글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벌써 그 아이가 중학생이다. 얼마 전, 저녁을 차리고 있는데 아이가 옆에서 종알종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엄마, 오늘 진로 시간에 선생님이 혹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 있냐고 물으시는 거야. 그래서 내가 손들었지. 나밖에 없더라고. 선생님이 왜 그런 생각을 했냐고 질문하셔서 엄마가 작가여서 그렇다고 했어.” 

“뭐? 엄마가 작가라고 했다고?”

“응. 엄마가 쓴 동화들도 말했지.”

“뭐?”

“애들이 대단하게 보더라. 하하, 예상했던 일이지. 초등학교 때도 그랬거든.”

“초등학교 때도 그랬다고?”

“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쓴 동화들은 거의 전집에 포함되어 있는 동화, 그러니까 서점에 가서 살 수 없는 동화다. 살 수 있는 게 아예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저는 작가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진 않은데.      



그냥 그렇게 대화는 끝났고 그러고는 저녁을 냠냠 먹고 일기를 쓰는데, 글을 열심히 잘 쓰고 싶어졌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지금은 아이들 책 편집해요, 하고 말하지만, 내 입으로 당당하게 작가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드라마라면, ‘몇 년 뒤’라는 자막을 아래에 깔고, 나는 북 콘서트장의 무대 위에서 내가 쓴 책에 대해 말하고 있겠지. 그런 날이 오고 안 오고는 나에게 달렸다. 타자는 타석 위, 투수는 마운드 위를 지키는 것처럼, 이미 내가 엄마의 자리에서 버티는 것처럼, 달콤한 열매만 따 먹을 수는 없고 그전에 수치도 당하고 애쓰고 눈물 흘리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수치를 당할지언정 진심으로 있고 싶은 나의 자리를 정한다. 나의 자리는 글 쓰는 자리. 팬은 보기 힘든 경기의 채널을 돌릴 수 있지만 선수는 힘든 경기를 피할 수 없다. 글 쓰는 자리를 나의 자리로 정한 이상 내 글을 직면한다. 자, 힘들어도 이 글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 보자.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속 단편 ‘몫’ 중에서, p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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