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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07. 2024

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

벤치클리어링 다음날엔 '사과 코스'가 있다 

*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 

야구 등 단체 스포츠에서 우리 팀 선수와 상대 팀 선수가 싸움이 났을 때 벤치에 있던 선수들까지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같이 싸우는 상황을 말한다. 대체로 투수의 의도적인 사구나 상대 선수의 거친 태클, 또는 말로 인한 감정적 충돌로 인해 일어난다. 보통 당사자들만 흥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르르 뛰어나온 선수들은 상대편 선수들과 모여 수다를 떠는 경우가 많다. 벤치클리어링에 참여하지 않는 선수에게는 구단에서 100만 원 정도의 벌금을 부과한다. 유희관 선수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벤치클리어링 뒤에는 ‘사과 코스’가 있다고 했다. 구단에서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벤치클리어링 다음 날 기자들 앞에서 해당 선수 둘이 화해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내가 만약 세상이라는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에 맞서는 타자가 되었을 때,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나를 위해 그라운드로 벼락 같이 달려올 동료는 누구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 고개를 흔든다. 차라리 말을 말자. 그런 이유로, 밉보이지 않고 그래서 빈볼도 없고 다툼도 없는 세상에서 싸우지 않고 둥글둥글 살기로 한다.      

하지만 당신이 세상에 둘러싸여 대거리를 주고받을 때, 내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갈게. 어깨를 걸칠게. 당신은 나와 마찬가지로 정직하게 살아왔고, 우리 모두는 그걸 잘 안다. 나는 당신의 편이다. 당신은 어떤가. 어디든 마음으로, 혹은 정신으로, 끝내는 몸으로, 우리는 같은 편. 광포한 무리들에 맞선 지금, 우리는 벤치클리어링 하러 간다. 당신과 나의 동해 바다 같은 오지랖으로 펼쳐진 위아래 없는 연대 의식. 이를 줄여서 ‘벤치클리어링’이라고 부른다.” (<이게 다 야구 때문이야> 중 p31~32)     



우리 팀 선수를 위해 망설이지 않고 뛰쳐나간다. 설사 뛰쳐나가서 수다를 떨지언정,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벤치클리어링 너무 멋지다. 벤치클리어링은 워낙 흥미로운 주제라 예능 프로그램이나 야구 유튜브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난 벤치클리어링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 당사자들이 그다음 날 사과 코스를 밟는다는 말이 재밌었다. 어쩐지. 꼭 벤치클리어링 다음날이 되면 ‘우리 원래 친해요’, ‘우리 화해했어요.’ 같은 제목을 단 기사 아래, 어색한 표정으로 악수하는 두 선수의 사진이 뜨더라니.      



구단에서 나서서 사과 코스를 밟게 한다는 말을 들으니 어릴 적 친구와 싸우고 나면 선생님의 주도 아래 화해 아닌 화해를 하던 게 생각났다. 싸운 두 친구가 선생님 앞에 선다. 

“자, 너는 미안하다고 사과해.” “...... 미안해.” “이제 너는 괜찮다고 말하고.” “...... 괜찮아.” 한껏 구겨진 얼굴의 친구 둘이 쭈뼛쭈뼛 선생님의 말을 따라 한다. 그다음은 악수할 차례. 악수까지 하고 나면 “자, 이제 사이좋게 지내.”하고 선생님이 두 아이의 등을 툭툭 친다. 그렇게 화해 코스 종료. 그런 형식적인 사과가 무슨 소용인가 싶었는데 그렇게라도 화해를 하고 나면 그다음 다시 노는 게 마냥 어색하진 않았던 것 같다.      



사과를 하지 못한 어릴 적 친구들이 있다. 아주 나중에야 깨달았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과 사과를 했어야 했다는 걸.       



초등학교 2학년 초,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난 이삿짐 트럭 운전석 옆에 아빠랑 탔는데 운전사 아저씨가 날 보고 “진짜 좋은 데로 이사 가는 거야!”라고 이야기하셨다. 이사 갈 집으로 가는 내내 난 ‘어떤 곳으로 가는 걸까. 진짜 좋은 곳이 어디일까.’ 궁금해하며 좋은 집을 상상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이사 간 집은 내 상상과 너무 달랐다. 세 가구가 한 화장실을 써야 하고 집의 외벽과 내벽은 모두 부실한 판자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 집에 살면서 생각했다. ‘그 아저씨는 왜 이곳이 좋은 곳이라고 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좋은 점이 있을까.’ 같은 반 친구들에게는 어디로 이사 갔는지 말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니 친구들은 우리 집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학교에 갈 때는 오빠와 같이 갔지만, 집에 올 때는 오빠와 하교 시간이 달라 혼자 버스를 타고 왔다. 



 그때 우리 반에는 깡마르고 얼굴이 길쭉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판자촌에 산다고 아이들이 같이 놀지 않았다. 난 딱히 그 아이를 따돌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 아이와 같이 논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방과 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그 길쭉한 아이가 나와 같은 버스를 탔다. 내리는 정류장도 같았다. 내가 이사 온 동네는 그 아이가 사는 동네였다. 난 그 아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사실 나도 여기 살아. 너 여기 살았구나.” 하고 비밀을 공유하듯 말했다. 그러고 나서 둘이 함께 무슨 이야기인가를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난 학교에서 그 아이와 놀거나 대화하지 않았다. 내가 길쭉한 아이와 즐겁게 이야기하는 공간은 버스 안과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길. 딱 그 두 곳.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서 길쭉한 아이를 따돌릴 때 난 그런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상관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 그 동네에 큰 홍수가 났다. 곤하게 잠을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가야 한다고 막 깨웠다. 다행히 여름 방학 때였다. 친척 집에서 몇 주 지내다가 학교 근처의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그 동네와는 그것으로 안녕이었다.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갔다. 선생님께서는 집에 홍수가 난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며 공책과 학용품을 주시겠다고 했다. 길쭉한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학용품을 받으러 앞으로 나갔다. 난 그 아이가 나에게 ‘너네 집도 홍수 났잖아.’라고 말할까 봐 겁이 났다. 길쭉한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그 아이가 내 옆을 지나갈 때 고개를 숙였다. 난 길쭉한 아이가 아무 말 없이 학용품을 받아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전학을 갔다. 



새로 이사 간 곳은 대단지 아파트였다. 전학 간 초등학교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산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같이 다니고 있었다. 대부분은 아파트 단지에서 오는 아이들이었고 한 반에 세네 명 정도가 산동네에서 오는 아이들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산동네에 사는 아이들에게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하며 같이 놀지 않았다. 그때도 난 그 아이들을 따돌리지는 않았지만 함께 놀지도 않았다. 



4학년 때, 내 앞에 산동네에 사는 아이가 앉게 됐다. 약간 통통하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여자 아이였는데 남자아이들은 툭하면 그 애에게 뚱뚱하다느니 멍청하다느니 하며 놀려댔다. 그 동그란 아이는 그런 놀림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의외로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다. 바로, 영웅본색. 동그란 아이도 영웅본색이라는 홍콩 영화를 좋아해서 몇 번이나 봤다고 했다. 우리는 장국영이 잘생겼느니 주윤발이 잘생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어느 날 동그란 아이가 나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동그란 아이의 집은 우리 집보다 더 넓고 좋았다. 동그란 아이의 집에서 함께 영웅본색을 봤다. 그 아이의 엄마는 날 보며 “우리 아이와 친하게 지내렴.” 하고 말씀하셨다. 동그란 아이는 집에서 사랑받는 딸이었다.



그날 이후, 동그란 아이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나에게 친근하게 대했다. 기존의 내 친구들은 나에게 “너 쟤랑 친해?” 하고 놀란 듯 물었다. 난 동그란 아이의 행동이 부담스러워 점점 그 애와 거리를 두었고 동그란 아이는 그저 그런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 뒤 그 아이는 운동부에 들어갔고 우리는 단둘이 만날 일이 없어졌다.



차라리 나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들에게 가장 큰 상처는 내가 주지 않았을까.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따돌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과 따돌리지 않고 그들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 또한 하늘과 땅 차이다. 그때도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용기가 없다. 혹시나 지금도 내가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일이 있을까 겁이 난다. 



‘벤치클리어링’이란 단어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사과 코스’를 떠올렸다. 만약 ‘사과 코스’라는 서비스가 있다면, 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나에게 준다면, 나는 누구에게 그 서비스를 쓰고 싶을지 곰곰이 생각하다 어릴 적 기억이 났다. 사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이다. 지금 나는 떳떳한가? 다른 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잘 살고 있나? 



부디 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를. 있지도 않은 '사과 코스'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부터 하지 말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힘을 내어 사과하는 어른이 되기를. 글을 쓰다 보니 자꾸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이 글을 본 누군가가 '너 나한테 사과해!' 하며 멱살을 잡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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