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기업 25년 차 부장

김낙수의 삶이란

by HyehwaYim




웹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다. 정말 재밌게 봤던 웹툰이 또 다른 작품이 되었다니 기쁘고 기대가 된다. 밤낮이 모두 빠듯한 인생이라 볼 일이 있을까 싶지만, 드라마 초반부터 등장하는 김낙수 부장의 이야기로 가득 채울지, 아니면 그 팀원들의 다양한 인생도 같이 다룰지 궁금하긴 하다. 어찌 되었든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부장은 대기업을 다니는 25년 차 부장이다. 회사만 보며 살았고, 다른 건 근처에도 두지 않았다. 사모님과 아들이 있지만 사모님은 김 부장만 뒷바라지했고, 아들은 아빠의 등쌀에 밀려 자신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임원이 죽으라면 죽을 시늉도 할 법한 인물로 동기들 중 자기만 정점을 찍을 만한 인물이라 믿는다. 서울의 자가 아파트와 적당한 고가의 명품을 두른 그는 이 정도면 위대하고 완벽하지만 티는 내고 싶지 않고, 하지만 누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복잡한 사람이다.


그의 소원이자 최대의 목표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도, 팀원들의 성장과 발전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지위가 올라가는 일이다. 임원이 되어야만 마음의 평안을 얻고 가족들도 행복해질 거라 믿는 사람이다. 남들이 보면 욕심 많고 이기적이라 하겠지만 그는 한평생 몸 바친 회사에 누구보다 진심이었고, 순수한 마음이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튈진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는 중년의 김 부장이 겪는 성장드라마기도 하다.


남부럽지 않은 회사를 취업한다는 건 현재도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대기업이나 유명한 회사를 들어가려면 스펙이든 경력이든 면접이든 바늘구멍 뚫듯이 잘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회사들을 취업한다고 해서 아파트를 사거나 명품을 두를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서울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하고, 웬만한 고소득층이 아니면 은행 빚에 허덕이며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일찌감치 집을 포기하고 외제차를 사거나 돈을 버는 족족 여행과 명품으로 시름을 잊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을 다닌다고 해서 20년 이상 근속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란 것이다.


세상이 급변한 만큼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평생직장을 꿈꾸거나 회사에 몸 바친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거기서 쏟는 에너지만큼 행복을 얻을 수 있거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색다른 일이나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며 돈도 벌고, 재미도 얻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일에 과감히 뛰어든다.


나는 그렇게 바뀐 세상이 나쁘지만은 않다. 똑같은 성공 방정식을 대입하며 직장과 사람의 가치를 나누고, 일류 회사가 아니면 별 것 아닌 회사로 취급하던 시선들이 꽤 무서웠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도 열등과 무능의 선상에 올려놓고, 평가를 절하하는 시대가 저물기를 바랐던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길러진 사람들이 모인 세상은 특별해지기 위해서라면 내가 훨씬 잘나거나 그게 아니라면 남을 해처야 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그 삶의 형태나 내용이 무엇이든 남에게 손가락질당할 이유가 없다. 김 부장은 대기업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아들을 나무라고, 건물주인 백수로 지내는 친구를 자기보다 아래로 생각한다. 부동산의 귀재인 송 과장을 보며 나만큼 알겠냐며 질투하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대리를 보며 그래봤자 중고차라며 무시하고, 권 사원이 공을 들인 일들을 자신의 성과로 가로챈다.


김 부장은 언제나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타인과 세상을 구겨 넣었다. 그것들을 씹어 삼키며 삐뚤어진 인정 욕구를 채웠다. 그걸로 배를 채우고 몸집을 키운 김 부장은 모두로부터 소외되고, 어울리지 못하는 길을 자신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함으로 착각했다. 김 부장의 생존 방식은 자신의 가족과 주변 사람을 해치며 일군 모래성 같았다.


김 부장 같은 사람은 어디든 있다. 그리고 김 부장 같은 인물은 목표가 뚜렷하고 자신감도 넘치며, 성공할 수 있는 방법만 고집하기 때문에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다. 한때는 그런 사람들이 승진하는 조직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그런가 보다 한다. 회사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혀서 운영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뭐라 하거나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둘 회사도 몇 없다.


하지만, 주변을 갉아먹고 파괴하여 얻는 성공을 인정하는 문화는 세상을 나쁘게 물들인다. 성실하고, 능력 있고, 열정이 있지만, 직장 논리에 굴복 당해 일찌감치 잘해 보려는 마음들이 사라지고, 시기와 질투로 변질된 삶들이 가득한 환경을 만든다. 김 부장도 그러한 환경을 따르며 길러진 또 하나의 복제인간일 수도 있다.


나는 김 부장만큼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하지 못하다. 무한한 헌신의 마음으로 조직을 대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가족을 일구고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경제적인 벌이의 수단으로만 회사를 품지도 않았다. 그저 일을 하는 행위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와 그것으로부터 느끼는 행복에 나의 시간을 쏟는 이 좋았다. 또, 성장 욕구와 인정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곳도 직장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점점 더 알게 된다. 재미와 행복은 직장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말이다. 치열하게 목표 달성을 쫒고, 성과를 인정받아 지위와 보상의 도약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숭고한 현장에서 눈치 없이 아무 때나 자기 색으로 낙서를 하고, 종이 접기나 하고 있는 나는 별달리 쓸모가 없는 사람 같다. 그렇게 보면 김 부장의 태도가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 적어도 그는 뚜렷한 목표를 향해 비바람을 뚫어가며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