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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Sep 08. 2024

네 번째 편지, 손목을 쥐고 걷던 날들.

더 이상 편지를 읽을 수 없는 K에게.

K에게.

 

  요즘은 손톱을 아주 짧게 물어뜯고 싶은 충동이 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네일아트 샵에 갔던 날이 생각 나. 서른 살이 다 되어 세 살 버릇이자 내가 지닌 가장 오래된 악습관을 고쳤다는 사실이 흐뭇했어. 늘 손톱을 물어뜯어 손톱 주변엔 굳은 피와 지저분한 거스러미들이 가득했는데.

 

  내 몸에 달려있는 내 손이지만 이렇게나 달라진 것이 신기했던 나는 손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며 계속 관찰했어.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손톱 색깔을 보고 있었지. 그러고 있자니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공개 수업 날이 떠올랐어.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엄마가 온다는 사실에 들뜨고 설레어했어. 엄마에게 꼭 멋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말실수 없이, 마음속으론 떨렸지만 겉으로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당차게. 계획대로 멋지게 발표하는 데에 성공한 그때의 나는 딱 오늘만큼 뿌듯했어. 칭찬을 기다리며 집으로 돌아간 내게 엄마는 말했지.

“넌 왜 자꾸 수업 시간 내내 손톱을 물어뜯냐.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이 보이는 줄 알아?”

 

  다음 해 공개 수업 날, 내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만 가득 차있었어. 절대 손톱을 물어뜯어서는 안 돼. 발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손을 들고 담임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고 발표를 하면서도 내 온 신경은 손톱에 가 있었어. 생각해 보건대 ‘하도 손톱을 물어뜯어서 전 손톱이 없어요.’고 장난스럽게 말하고 다니던 중학생 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 어떤 상황에서 손톱을 뜯게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봐.’하고 다정하게 말해 준 어른이 딱 한 명 있었어. 공부방 선생님이었는지, 아님 친구네 엄마였는지, 누구였는지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제 아침에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 사주를 보고 왔다고 했지. 좋은 이야기는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나쁜 이야기만 기억을 하는 건지 전해준 이야기는 온통 악담 투성이더라.

  첫 번째.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은 맞지 않으니 하루빨리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 두 번째. 최대한 결혼을 늦게 해야 하며, 지금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면 그 사람과는 헤어지는 것이 좋다. 세 번째. 올해 하반기에는 꼭 물을 조심해야 한다. 누구에게 말해도 통용될 만한 특별할 것 없는 조언들. 건성으로 대답하며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엄마는 아주 큰 비밀을 듣고 온 사람 마냥 계속해서 걱정을 늘어댔어. 꼭 내가 불행해지길 바라는 사람처럼. 엄마한테 말하고 싶었어. 엄마, 나는 더 이상 운명을 믿지 않아. K는 분명 오래 사는 사주랬거든.

 

  대체 사람들은 왜 그렇게들 미신을 좋아할까. 무엇이 그렇게 궁금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할까.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개연성 없이 진행되는 게 삶인데. 그 어떤 부자도, 그 어떤 권력을 가진 사람도 당장 불의의 사고로 내일 죽을 수 있는 게 인생인데.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통화하는 내내 손톱만 쳐다보고 있었어. 손톱을 깨물고 싶다, 다 뜯어버리고 싶다, 피가 날 때까지 뜯고 싶다, 부어오른 손가락을 일부러 더 아프게 건드리고 싶다, 생각하면서. 나는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대답했어. 엄마, 나는 그냥 잘 살고 싶어. 앞으로 어디서 살든 뭘 하고 살든 그냥 잘 살고 싶어.

 

  전화를 끊고 왼쪽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쥐어봤어. 꼭 손톱 위로 손가락이 자란 것 같다고 놀리던 네가 떠올랐거든. 늘 부어있던 손가락 때문에 아플까 봐 차마 손을 잡지 못하고, 손 대신 손목을 쥐고 걸었던 날들. 그 기억들이 떠올라서 그냥 주먹을 쥐고 손톱을 숨겨버렸다.

 

  나는 아주 잘 살다가 너를 다시 만나고 싶다. 누구보다 깨끗한 손톱 모양으로, 우리가 아프지 않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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