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맥가이버

세상의 모든 남자가 아빠 같지 않다는 절망

by j 줴이

아빠는 늘 손수 뚝딱거리며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무언가 해결하는 것이 많았다. 가전제품이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버리는 일 없이 늘 아빠 손에 고쳐졌고 흔하지 않은 납땜을 본 것도 아빠를 통해서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납땜이 특기다. 주변에서 음향에 필요한 케이블을 제작할 경우 납땜 취미를 가장한 알바를 자청하기도 한다. 재빠르고 섬세하게 정확한 손놀림이 필요한 납땜은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한 정신수양이 되기에 충분하다.

물건을 함부로 버리는 일 없이 늘 소생시키는 아빠의 능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언젠가 아날로그 메트로놈이 고장 나 조율사 분께 문의드렸더니 되돌아온 답은 소생 불가능이었다. 생사여부가 전문가로부터 판가름 났음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빠에게 물건을 건넸을 때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원래의 기능을 갖춘 채로 물건을 돌려받았다. 또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작은 스프링의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진 문구용품이 고장 났을 때도 혼자 씨름하다 포기한 채로 혹시나 아빠에게 내밀었는데 금세 복구해 내게 돌려주셨던 분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독립한 이후에 커튼봉 설치나 전등 교체 등의 사소한 집안의 일처리는 응당 누구의 도움 없이도 혼자 가능한 일이고, 누구의 도움을 청하기에는 내겐 너무도 사소한 일들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와 어리둥절했던 부분 중 하나는 나조차도 손쉽게 다룰 줄 아는 드라이버에 익숙지 않은 남자들이었다. 언젠가 오빠의 뼈 있는 한 마디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아빠와 같지 않으니 아빠 같은 남자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오빠가 채워줄 수 없음에 이미 그 기대치를 버리고 살고 있지만 늘 인생의 해결사였던 든든한 방패막이 사라지니 무거운 어깨를 가눌 곳이 없어 혼자 이겨내야 하는 일들이 가끔 버겁기만 하다.


늘 반듯하게 각 잡혀 있는 이부자리에서 포근하게 빠져들던 꿈나라는 세상 밖으로 나오니 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늘 당연하게 여겨오던 상황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꽤 길다.

씩씩한 거 지겨워서 못해먹겠다 싶은 순간에 어쩔 수 없이 씩씩해야만 하는 이 삶 한가운데 서 있는 나는 가끔 맥가이버 아빠가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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