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신선놀음

by 백정순

요가 2주차에 들어가니 몸이 많이 유연해진 느낌이다. 기름칠을 처음 한듯 고통스레 삐걱거리던 몸이 반복되는 동작을 할 때 마다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우붓에 와 잠시 지내는 것도 축복인데 이곳에서 요가를 하고 있다.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요가를 할 땐 그냥 죽도록 힘들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논과 정글에 안겨 산들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요가와 명상을 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수업을 마치고 논길을 내려가니 누군가 요가 매트를 옆구리에 끼고 올라온다. 난 같은 수강생이라 여기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넉살 좋은 한국 아줌마답게 나도 저기 요가를 다닌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본인은 혼자 수행을 하고 옆 동네 요가 커뮤니티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이란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격이다. 발리에 사는 프랑스인 요가 선생이라. 멋지다. 깍쟁이처럼 보이는 보통의 서양 여자들과는 달리 미소와 분위기가 편안하다.

본인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무료 클래스도 많다며 홍보도 열심이다. 요가를 꾸준히 하라고 격려해주는 그녀와 아쉽게 스몰토크를 마무리하고 작별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그녀의 뒷모습을 다시 한번 담았다. 투명하고 상큼한 열대 과일같은 그녀의 향기가 못내 아쉬웠다.


오후엔 가져온 책들을 아껴서 읽고 글쓰기를 한다. 요가로 마음까지 릴렉스가 되었는지 몰라도 글이 술술 쓰여진다. 이렇게 일기도 쓰고, 소설도 쓴다. 감히 용기를 내 도전해 본 소설이 어느덧 장편이 되어 뿌듯했다. 이 나이에 공모전에 도전해 등단을 하기엔 요원한 일이라 생각해 투고를 했다.

에세이와는 달리 소설 전문 출판사는 숫자가 적은 듯했다.

두어 군데 출판사에선 대표님이 직접 전화해 계약하자고 했고(황송하게도) 나머진 거절의 세례들. 오케이, 당근이다.

초보 소설 지망생은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곳 발리에 와서 또 다른 초고 쓰레기를 끄적이고 있다. 평소 게으름과 끝없이 썸만 타던 글쓰기가 정작 이곳에서 루틴화되며 근육처럼 차근차근 쌓여간다.

음, 난 여행하며 글쓰는 체질인가. 하루키가 떠오른다. 하와이 별장에서 글쓰고 해변을 달리는 만인의 로망, 그 남자. 하하하, 그냥 웃지요다.


요가, 산책, 글쓰기. 신선놀음이다. 먹고 마시고 노는데 별 관심이 없는 내가 평생 누리는 호사다. 오늘도 요가 선생님은 강조한다. 요가는 음과 양, 몸과 마음의 균형이라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에 힘이 드는 거란다. 일생 어려운 과제다.

균형이 그리 쉬우면 삶은 늘 천국이고 신선놀음이다.

지금 이 순간의 천국도 신선놀음도 사랑하지만 고통과 슬픔까지도 기꺼이 품는 자가 더 아름답고 빛나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아직도 멀었다. 나이는 먹었지만.


#발리 #우붓 #나홀로여행 #요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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