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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Aug 12. 2020

예술혼과 애국 일념
불태웠던 무성서원

힐링 글쓰기 

정읍’ 하면 ‘내장산 단풍’만 떠오른다면 올 가을 여행엔 이곳 무성서원에도 한번 발길을 돌려볼 일이다. 

지난해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후, 한국의 서원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서원이 발원됐다는 안동 지역의 세 곳을(소수, 도산, 병산 서원) 거쳐 전라도로 넘어왔다. 


정읍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25년 전, 서울역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정읍에 내려 고창을 간 적이 있었다. 마중 나온 친구의 차를 타고 고창으로 넘어가는 길은 줄곧 산 등선을 따라가는 도로였다. 이때 깊은 밤인데도 유별나게 환했다. 옆을 보니 환한 달님이 빛을 밝히며 열심히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갑자기 그 달을 보자 학창 시절에 배웠던 백제 가요 정읍사가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달하 노피곰 도드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데를 드디 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디  졈그를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위의 정읍사 고어가 브런치에서 구현이 되지 않아 적당한 현대어로 치환했음을 밝힙니다.) 


얼마나 정읍의 달이 밝던지… 그때 우리 차를 따라 달리던 달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정읍은 내게 이렇게 환한 빛을 밝히는 달의 고장으로 기억됐다. 한데 정읍에 위치한 무성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됐단다. 서원 취재를 핑계로 정읍을 방문하기로 했다. 


무성서원이 위치한 곳은 앞으로는 천이 흐르고 뒤로는 성황산을 등진 칠보면 무성리 원촌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에 무성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안동의 소수서원이나 도산서원, 병산서원이 마을과 뚝 떨어져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비해 이곳 무성서원은 외양상으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무성서원 옆으로 마을 주민이 함께 즐기는 연밭이 있다. 다른 서원들이 안에 연못을 만들어놓았던 것과 다른 유형의 정원이다. 사진에 보이는 산이 성황산이다. Photo by male


마을 한가운데에 언제든 마을 주민들이 방문해서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근하고 격의 없어 보였다. 서원을 알리는 홍살문도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원촌마을이 곧 무성서원이고 무성서원이 곧 마을인 듯싶었다. 


마을 한편에는 큰 연못이 있어 연꽃이 한창이다. 안동 지역의 서원들이 연못을 만들어 서생들의 휴식 공간으로 삼았다면 이곳 무성서원이 위치한 원촌마을은 마을 주민 전체의 휴식 공간으로 연못이 위치해 연꽃을 즐기며 이곳저곳을 산책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마음을 읽었던 걸까? 해설가가 “무성서원의 특징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특수한 일부 사람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신분 차별 없이 수학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 특징”이라며 해설을 이어갔다. 또한 이곳은 항일 의병운동의 첫 시작 지였단다. 

무성서원 강학당에서 서원 해설가가 해설을 하고 있다. 강학당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해설을 듣는 모습이 정겹다. Photo by malee


이곳 원촌마을에는 2원 5사라고 하여 서원 두 곳과 서당 5곳이 있는데 2원 5사(무성서원, 용계서원, 남천사, 송산사, 필양사, 시산사, 도봉사)에서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의 강탈에 맞서 저항한 항일의병운동이 이곳 서원을 중심으로 처음 일어났다고 한다.  


항일 의병의 선봉장으로 알고 있는 면암 최익현 선생이 무성서원에서 1906년 첫 의병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강연회를 실시했다는 해설가의 설명에 새삼 이곳 원촌 마을의 역사적 유산이 위대해 보였다. 무성서원에서 항일 의병을 일으켰던 최익현 선생은 결국 일본군에 의해 체포돼 대마도에 감금된 후, 단식 투쟁 끝에 1907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무성서원의 기숙사 건물인 강수재. Photo by malee


무성서원이 기리고 있는 인물 중 대표적인 이가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해 천재로 이름을 떨치던 신라 시대의 학자다.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6년 만인 18세에 빈공과(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하고 학자와 정치가로 이름을 떨치다가 고향이 그리워 신라로 돌아온다.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태산사가 무성서원 내에 위치해있다. Photo by malee

하지만 통일 신라의 신분제도 벽에 가로막혀, 결국엔 태산(현 정읍), 천령(현 함양), 부성(현 서산) 지역의 태수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자신의 뜻을 현실정치에 펼쳐 보이지 못하고 깊은 좌절만 한 채, 이곳 정읍에서 학문에 심취하고 태수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최치원. 그가 이룩한 학문과 문장의 경지는 높았으나 견고한 신분제 사회를 구축한 신라의 권력층들은 그의 능력을 시샘하며 지방으로 떠돌게 만들었다. 


안동에서 넘어올 때 함양을 거쳐 전라도 지역으로 들어왔다. 함양에는 상림공원이 군내에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상림공원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천령군(현 함양) 태수로 있을 때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우연찮게 함양과 정읍까지 거의 1천1백 년 전, 위대한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왔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웠다. 


비만 오면 마을이 잠기고 논밭이 유실되는 것이 안타까워 함양을 흐르는 강에 둑을 쌓아 상림과 하림을 만들었다는데  현재 하림은 유실됐고 상림만 남아 함양을 대표하는 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함양 군내에 위치한 상림공원 산책길. 호젓한 숲길을 걸으며 신분제에 막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 최치원을 생각해봤다. Photo by malee


이외에도 무성서원은 조선 시가 문학의 대표인 ‘상춘곡’을 지은 정극인도 기리고 있다. 

정극인 역시 최치원 등과 함께 무성서원의 사당인 태산사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무성서원 멀지 않은 곳에 정극인의 묘소와 재실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 여행길엔 빡빡한 일정으로 그곳까지는 가볼 수 없었다. 


우리는 예부터 전라도 지역을 예술의 고장이라 불러왔는데 주로 근현대사의 예술가만을 떠올려왔다. 하지만 이곳을 다녀볼수록 문학과 예술의 고장이라는 말답게 걸출한 문인과 학자들을 배출한 역사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 역시 남다르다. 


한국의 서원을 엘리트 교육의 산실이라고만 할 수 없는 마을 교육의 현장이 바로 무성서원이었다. 

 

무성서원

신라 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사적 166호). 무성서원은 최치원이 태산군(정읍 지역의 옛 지명) 태수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백성이 살아있을 때부터 제를 올렸던 생사당(生祠堂), 태산사가 뿌리다. 이후 조선 중종 때 태인현감으로 부임한 영천 신 잠의 생사당이 태산사와 합해졌고 태산 서원으로 불리다가, 1696년(숙종 22) 사액을 받아 무성서원이 됐다. 


무성서원은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시초인 [상춘곡]의 작가인 정극인, 눌암 송세림, 묵재 정언충, 성재 김약묵 등을 추가로 배향하며 성장했고,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으며 역사적·학문적 가치를 증명했다. 


무성서원의 입구는 현가루(絃歌樓)로 불리는 두리기둥을 쓴 정면 3칸, 측면 2칸 기와집이며 안으로 들어가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으며, 오른쪽에 4칸의 강수재(講修齋), 왼쪽에 3칸의 흥학재(興學齋)가 있어 동·서재(東西齋)를 이룬다. 3칸인 신문(神門)을 지나면 사우(祠宇)인 단층 3칸의 태산사가 있는데, 그 안에 최치원을 북쪽 벽에, 같이 모신 사람들의 위패(位牌)는 좌우에 봉안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헌종 10) 중수한 것이며, 명륜당은 1825년(순조 25)에 불탄 것을 1828년에 중건하였다. 특히 이곳 무성서원에는 중요한 서원 연구자료가 있다. 1968년 12월 19일 사적 제166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 이야기, 한국관광공사-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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