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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의 의아한 선택

by sooowhat Jan 25. 2025

최소한 데미 무어가 상당히 많은 분량을 연기했을 줄 알았고, '한창 때를 지난 여배우'라는 본인의 실제 자아가 투영된 연기를 펼쳤을 거라 예상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환희와 확신에 차 동기부여적인 수상소감을 말하던 그녀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서브스턴스>를 보러 갔다. 갔는데...세간의 평가와 (그것도 꽤나 수작이라는 평가가 다수) 나의 감상이 이만치나 불일치하다니? 영화를 봐 온 이래 이정도의 불일치도를 보였던 영화 경험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뭐 감상은 개인의 영역이다. 여러 고평가들은 없다(못봤다)손 치고. 나 개인의 순수 감상평만 적어보자면, 극초반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제외하고는 이 영화에서 내가 칭찬해줄 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영화의 서사구조가 아주 심플하고 직관적인데, 당혹스럽게도 그 심플함에서 영화가 멈춰 서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서사(스토리라인), 그리고 구조(스토리를 떠받치는 틀)의 표면 한 층 아래 메시지를 추론하는 데서 영화 소비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서브스턴스>는 극대화 된 외모지상주의를 고어 장르와 결합시킨다는 (특이한) 발상이 곧 영화의 '끝점' 그 자체가 되었다. '외모지상주의를 피 튀기게 찢어 발기겠다' 이 지점에서 더도 덜도 나아감이 없었다는 뜻이다. 극 초반에는 이 창의적 발상 덕택에, 데미무어가 여성이자 한 인간으로서 서브스턴스 중독의 유혹을 어떻게 핸들링 해나갈지, 또 마가렛 퀄리가 화려한 삶 속에서 어떤 모순을 느낄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는 초반에 품었던 기대감을 무참히 깨버리고 일차원적인 서사에 몸을 맡긴채 그저 달려간다. 성찰의 포인트를 시원하게 제거하고 나니 필요 이상으로 평면적인 영화만 남았다. 이게..설마 전략이었다고? 평면적 영화를 만듦으로써 고어한 찢어 발김을 극대화하겠다는 게 감독의 연출의도였다면, 오케이. 그 방향성을 따라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개인의 감상을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모지상주의를 철저히 파괴해주겠다는 감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시원함은 커녕 찝찝함만 남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에 투신하는 자는 결국 성형중독 괴물이 될 뿐이다! (영화의 화법상 느낌표가 반드시 필요하다) 라고 외치는 것은 폐암으로 끔찍하게 썩어버린 폐 이미지 한 장을 보여주는 금연 캠페인과 무엇이 다른가. 외모지상주의를 깨부순다는 영화가 마가렛 퀄리의 끝장나는 몸매를 속속들이 훑어가며 전시하는 모순적인 표현방식을 취한 것도 이미 많이 지적됐으니 차치하면,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다고 난 생각한다. 바로 외모지상주의 비판이라는 당위적인 소재를 갖고 평면적으로 요리해버린 것. 감독은 "이걸 고어로 말했잖아!" 하며 창발성을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재료는 신선했을지 몰라도 잘 요리된 요리는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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