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Apr 07. 2023

2화 인간의 강점-사랑

불안정 애착이 가져오는 불행의 씨앗 버리기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애착입니다. 인간은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과 맺는 유대관계를 통해 애착을 형성하고, 이 애착은 인생 전반에 걸쳐 우리가 맺어 나가는 모든 친밀한 관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어린 시절 나를 주로 보살펴 주었던 한 사람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따뜻하고 내 요구를 잘 들어주었으며 반응이 만족스러웠다.

그 사람은 차가웠고 내 요구를 거의 수용해 주지 않았다.

그 사람은 일관되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대했다. 어떤 때는 따뜻했지만 나의 요구에 전혀 반응하지 않기도 했다. 나를 사랑하는 것 같긴 했지만 방법이 최선이 아니었고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이처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주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우리의 애착은 각각 안정적, 회피적, 불안한 양상으로 굳어집니다. 안정적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거부에 대한 두려움이 적습니다. 파트너의 실수에 수용적이고, 관계를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반면 회피적 애착은 타인을 믿지 않고 친밀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태를 말합니다. 상대방이 저지른 작은 실수에도 쉽게 관계를 떠나버리거나 사랑이 전혀 없는 상태로 관계를 지속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불안한 애착 형태를 가진 사람은 상대방에게 집착하며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들고 같은 사람과 여러 번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관계에서 늘 불안하기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하고 상대가 진짜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지 항상 걱정합니다.


그럼 어린 시절 한 번 형성된 애착은 절대 바뀌지 않는 걸까요? 아닙니다. 건강한 관계를 통해 '재양육'이 가능하며 그 과정에서 안정형 애착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불안한 애착 형태를 가지고 있던 저는, 남편과 연애할 당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했습니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떠날 결심을 했다가 또 말 한마디에 안도했습니다. 여기저기 일부러 함정을 파두고 남편이 걸려들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한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의심과 질투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커져 감당이 안되면  남편을 들들 볶아 원하는 대답을 듣고서야 멈추기도 했고, 그러다 '나한테 질려 이 사람이 떠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찾아와 또다시 추락했습니다. 그는 헤어지자는 저의 말을 진심이 아닌 '나 불안해'로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조언했습니다.

  "불안할 땐, '헤어지자' 말고 '불안하다'라고 얘기하는 거야. 내가 어떤 실수를 하면, '헤어지자'가 아니라 '네가 지금 실수해서 나 화났어'라고 얘기하는 거야. 그럼 내가 고칠게."

내가 어떤 사람이든 무슨 짓을 하든 나를 사랑해야지, 그게 진정한 사랑이지,라고 말하는 내게,

  "네가 건강한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이상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고, 아무 노력 없이 얻어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사실 사랑도 노력해야 하는 거고 그래야 좋은 관계를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건데."

나를 일깨워 주는 그의 조언들, 그리고 그 의견을 긍정하고 수용한 나의 노력 덕분에 우리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견고해졌고, 지금 저는 태어나 처음으로, 친밀한 관계로부터 오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우리가 가진 애착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정서적으로 가까워진 사람들에게 불안과 욕구를 숨기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불안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깨달았다면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커플이나 부부를 위한 감정코칭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John Gottman은 행복한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들을 제시했습니다. 남편과 싸울 때마다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싸운 후 더 냉랭하게 변하거나 오랫동안 분노를 안고 있었던 저에게, 남편은

 "갈등은 서로의 차이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생기는 거야. 우리는 지금 더 좋은 관계로 가느냐 서로 비난하다 상처만 받고 멀어지느냐 그 기로에 서있어. 난 갈등의 한가운데 서서도 너를 사랑하고 있고, 우리가 이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라는 말로 제가 방어벽을 낮추고 마음의 문을 여는데 도움을 줬습니다. 그의 인내심의 이면에는, 긍정심리학 관련 독서 경험과 실제로 행한 연습들, John Gottman의 책들(What makes love last, The 7 principles of making marriage work, etc.)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상대방의 영향을 받아들이기(let your partner influence you)'였습니다.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면서 방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상대의 다른 의견에 대해 인정하고 그의 관점이 옳을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의 마음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화가 났고, 그가 옳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싸움에서 지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해서 절대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아집을 내려놓고 대화를 시도하자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 마음 안에서요. 조금씩 허물어지는 방어벽 덕분에 부부간의 대화는 점차 생산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화내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화가 나서 그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라지자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서 우리가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거기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좋은 갈등 해결의 모범 답안을 몸소 보여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갈등이 생기거나 트리거들로 인해 내면  깊숙이 자리한 이슈들이 떠오르면 방어 기제가 작동하여, 갈등 자체를 해결하는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내면에서 발화된 불을 진화하기에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트리거가 적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그 반대의 경우보다 얼마나 더 편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자명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도, 그래서, 분명합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좋은 도구들을 많이 준비해 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잘 선택하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위해 건강한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가도록 좋은 예시를 많이 보여주는 것. 그 시작은 애착이고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진 정서적 자원이 빈약하다 할지라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인지한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한 명 떠올려 볼까요?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R. Sternberg의 'The Triangular theory of love(사랑의 삼감형 이론)'을 인용해 우리가 어떤 사랑의 상태에 도달해 있는지 보겠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깊이 좋아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림을 통해 삼각형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관계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그녀)와 나의 노력에 따라 변화하는 역동적이며 상대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이론적 틀 안에서만 이해하려는 게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데 유용하고, 상대가 나에게 느끼는 삼각형의 형태와 나의 것을 비교함으로써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 어떤 부분에 변화를 주고 강화시켜야 할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모형이니 배우자나 연인과 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친밀감과 열정 그리고 헌신하는 모습을 모두 갖춘 완전한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파트너와 비슷한 형태의 삼각형을 갖고 계신가요? 저는 친밀감과 헌신으로 기울어진 삼각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남편은 정삼각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열정이 친밀감과 헌신으로 발전하는 속도가 달라 그런 차이가 생긴 것 같은데요, 삼각형을 그리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각자의 감정 상태와 서로에 대한 기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차이를 인정하며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 기쁘고 뿌듯합니다.


낭만적 사랑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입니다. 열정으로 시작한 사랑일지라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고, 특히나 소중한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방어적 기제가 발동하여 노력하는 게 힘들고 내면의 불안 혹은 다른 이슈들과 직면하느니 차라리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야말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고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크게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



다음 이야기-3화 인간의 강점: 공감



이전 01화 1화 슬픈 엄마와 행복한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