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손님을 받고 눈썹을 태운 이야기
“사장님 우리 서른다섯 개 주문할 건데 얼마나 걸려요?”
큰일 났다. 단체 손님이다.
“네, 이십 분만 기다려 주세요.”
정말 나는 이십 분 만에 호떡 서른다섯 개를 구워 낼 수 있을까?
평소에는 하나의 버너에만 불을 켰는데 얼른 한 쪽의 버너에도 불을 켠다.
얼른 불이 켜시지 않는다. 나는 얼굴을 버너 쪽에 바짝 대고 점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퍽!
고여 있던 가스에 불이 붙으면서 퍽 소리가 나면서 불꽃이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노린내가 났다. 이런! 눈썹이 그슬렸다. 머리에 두건을 썼길 망정이지 앞머리까지 다 태울 뻔했다. 눈썹이 어떤 화를 당했는지 볼 시간이 없다. 얼른 구워 내야 한다. 처음 호떡을 구울 때보다는 시간이 빨라졌지만 한 번에 이렇게 많이 굽는 것은 처음이다.
호떡 반죽을 떼어 속을 넣고 오물이고 철판에 올린다. 서너 개를 올리고는 호떡을 뒤집는다. 다시 반죽을 떼어 호떡을 만든다. 작은 크기의 철판이 아닌데 열두 개밖에 올라가지 않는다. 얼른 구워 낸 호떡을 건져내고 다시 호떡을 빚어 철판에 올린다. 배가 뜨겁다. 동시에 두 개의 버너에서 불이 올라오니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사장님, 다 돼 가요?”
“네, 앞에 컵을 하나씩 주세요. 예쁘신 분부터 하나씩 받으세요.”
“내가 제일 예쁘니까 내가 먼저 받아야 갰네. 호호호.”
범상치 않은 패션 감각의 어머니가 컵을 내미신다. 뻘간 바지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신 손님은 몸매도 예쁘다.
‘나도 한때는 몸매 좋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바쁜 와중에 왕년 생각이 난다.
“어머, 사장님 호떡 너무 맛있어요.”
“옌 뭘로 색을 낸 거예요?”
“뭘 까요? 맞추시는 분께는 호떡 하나 서비스입니다.”
“복분자요?
“뗑! 복분자는 수지가 안 맞아요.”
“가지요.”
“엥? 가지는 껍질만 보라색이잖아요.”
“호호호, 그러네요.”
“이제 마지막 기호입니다.”
“아, 뭐지 뭐지? 음, 포도요?”
“땡. 비트예요. 혈관에 좋은 비트. 우리 보라 호떡은 건강 호떡이랍니다.”
“아, 그래서 더 맛있구나. 하하하.”
호떡 서른다섯 개를 굽는 동안 손보다 더 바쁜 것은 나의 입이다.
전국에서 나처럼 말 많은 호떡 장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손님은 훨씬 지루함을 덜 느끼게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좋은 판매 전략이 되었다고 할까?
“사장님, 너무 맛있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네 즐거운 여행 되시고 꼭 또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첫 대량 주문이었지만 무사히 잘 해결했다. 살짝 앞치마와 옷을 올리고 배를 살펴본다. 터진 임신 선 위로 벌겋게 살이 익었다. 그래도 수포가 잡히지 않을 걸 보면 괜찮은 것 같다. 거울이 없어 셀카로 얼굴을 찍어서 봤다. 내 눈썹, 다행히 많이 타지 않았다. 워낙 눈썹이 짙어서 잘 표가 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던가. 처음 받은 단체 주문이라 걱정도 되었지만 요령껏 잘 해결했다. 호떡의 맛도 중요하지만 손님과의 소통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호떡을 굽는 손보다 더 바쁜 나의 입은 지칠 줄 모른다. 어쩜 내 몸 중에서 가장 근력이 좋은 곳이 입술과 혀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 눈썹과 배는 수난의 날이었지만 집에 돌아와 어제보다 오랫동안 돈을 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