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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 하루는 철판위의 호떡처럼 익어간다.

by 다올

반죽에 공을 들인다. 어제 옆구리가 터진 호떡 때문에 마음이 쓰였던 걸 생각하면 오늘은 허투로 할 수 없다. 분명히 레시피대로 했는데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자꾸만 어제의 실패가 떠오른다. 하지만 실패는 실패일 뿐, 오늘의 반죽은 새롭게 시작된다.


오늘은 더 신중하다. 어제보다 물을 조금 더 넣고, 비트 즙과 갈아 놓은 비트를 섞는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반죽의 감촉이 다르다. 색이 더 진하게 배어나온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반죽을 저으며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밀가루가 몽글몽글 뭉쳐 있다면 아무리 숙성을 시켜도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사람 관계도 그렇다. 살살 달래고 어루만져야 풀리는 일이 있다. 차갑게 대하거나 거칠게 다가가면 오히려 더 단단하게 뭉쳐버린다.


호떡 장사를 시작한 이후로는 푹 자본 기억이 없다. 두 시간마다 눈이 번쩍 떠진다. 혹시 반죽이 넘치진 않을까, 잘 숙성되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잠을 설친다. 조심스레 이불을 들춰본다. 반죽 표면에 뽕뽕 뚫린 구멍들이 반갑다. 잘 숙성되고 있다는 증거다. 안심하고 다시 누워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반죽에 가 있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다.


달력 뒷면에는 색색의 매직으로 손님들을 위한 안내문을 적어 트럭에 붙였다.

계산은 셀프입니다.

치매 예방을 위해 계산은 스스로 해주세요.

저는 호떡만 굽습니다.

삶에는 위트가 필요하다. 빡빡한 하루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면 작은 농담 하나가 큰 힘이 된다. 호떡을 기다리는 손님들은 이 안내문을 읽고 빙그레 웃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한다.

"돈 안내고 가는 사람 있으면 어쩌려고요?"

"혹시 거스름돈을 잘못 가져가는 사람은 없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어차피 저한테는 돈통이 안 보여요. 손님을 믿지 못하면 그렇게 돈통을 내려 놓지도 않았겠죠. 오죽하면 돈을 안내고 가겠어요? 일부러 기부도 하는 세상인데, 그럴 땐 기부한 셈 치면 되죠. 호호호."

그러면 손님들은 감탄하며 말한다.

"와! 사장님 대단하세요."


뜨거운 호떡판 위에서 호떡이 노릇하게 익어간다. 바삭하게 구워지는 호떡처럼 손님들과 나의 사이도 천천히 익어간다. 반죽을 준비하며 느낀 삶의 진리, 사람들과의 따뜻한 교감, 그리고 유쾌한 농담 하나로 오늘도 나의 하루는 철판위의 호떡처럼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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