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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그루 Aug 27. 2021

나는 누가 빼내 주나요?

김고은, <끼인 날>, 천 개의 바람, 2021.04.01

김고은 작가의 그림책 <끼인 날>의 표지 속 아이는 벽에 끼여서 옴짝달싹 못한 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 그런데 얼굴이 끼여서 쏠린 두 볼 때문에 쭈욱 나온 입술은 왜 쪼옥하고 뽀뽀를 하는 것 같을까? 그러고 보니 아이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는 선명한 하트가 그려져 있다.

아이는 우연히 하늘의 구름 사이에 끼어 버린 하얀 개를 구해준 날 이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끼어 있는 존재들을 빼내 주게 된다. 졸고 있는 할머니 주름살 사이에 끼어 있는 모기, 맨홀 구멍에 부리가 끼어 버린 펭귄, 쓰레기통에 끼어 있는 곰, 게다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방귀 사이에 끼어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처럼 아이는 눈에 보이는 상황을 넘어 보이지 않는 상황에까지 끼어 있는 많은 일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결한다. 쫄바지 위에 팬티를 입은 것이 슈퍼맨의 상징이라면, 그림책 <끼인 날> 주인공 아이는 셔츠에 박힌 하트무늬가 아이를 잘 표현해주는 중요한 상징일 것 같다. 짠하면서도 고맙다.


그렇게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지쳐서 돌아온 집에는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이에는 싸움 요정들이 끼어 있었다. 싸움 요정들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건지, 엄마 아빠가 싸워서 싸움 요정들이 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과연 싸움 요정들을 빼내고 가정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

싸움 요정을 빼내기 위해 혼자서 온갖 노력을 다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이건만, 싸우는 엄마 아빠 중간에 끼어 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누가 빼내 주나... 하며 미어캣처럼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살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현재 우리 부부가 싸울 때 딸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불현듯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몰려온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대할 때 작고 힘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끼인 날>의 아이가 하루하루 만나는 사건들을 해결해 가듯, 어른들은 무시하고 모르는 척 넘어가는 일도, 아이들은 자기 앞의 문제들을 모른 척하지 않고 자세히 보고 마음을 들이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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