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그루 Aug 30. 2021

비에 젖은 초코파이

<이까짓 거!> 박현주 그림책/이야기꽃/2019

에니어그램 상담을 받고 후기를 쓰면서 생각난 그림책이 있다. 박현주 작가의 <이까짓 거!>.

우산이 없는 아이는 친구와 함께 가방을 머리 위로 들고 빗속을 뛰는 장면에서 어릴 때 우산을 들고 나를 마중 나왔던 엄마가 생각난다.

외갓집에서 2년을 살다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좋았던 것은 당연히 매일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눈칫밥을 먹다가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 것일까?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는 살이 찌기 시작했다. 키가 위로 쑥쑥 크면 좋았을 텐데 자꾸만 옆으로만 불어났다. 엄마는 그런 나를 한심하게 생각했고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을 때마다 감시 아닌 감시를 했다. 한 번은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컵에 아주 조금 부어 마셨는데, 어쩌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왜 그리 물도 많이 마시냐며 화를 내셨고 급기야 밤 9시 이후에는 물 금주령(?)까지 내렸다. -엄마는 내가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이라고 믿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비를 피할 생각도 못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다가 아까 교실에서 짝지가 줬던 초코파이를 생각해냈다. 달콤하고 포근하기까지 한 초코파이를 생각하니 문득 지금이 아니면 먹을 기회가 없을 것 같은 긴박감이 느껴졌다. 집에 가면 분명 엄마는 못 먹게 할 테니까!! 나는 얼른 가방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허겁지겁 껍질을 까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렇게 비에 젖어가는 초코파이를 먹으며 걷는데, 아뿔싸!! 저 골목 끝에 엄마가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지만 얼마 남지 않은 초코파이를 버릴 수 없어 우물쭈물거리고 그 자리에 섰다. 그리고는 입속으로 마저 쏙 털어 넣었다. 엄마는 꾸역꾸역 초코파이를 먹고 있는 나에게 뛰어오다시피 와서는 내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비가 점점 더 세게 내려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와중에도 엄마의 잔뜩 실망한 눈초리가 보였던 것 같다. 엄마를 봤을 때 남은 초코파이는 아까워도 그냥 버리는 건데 우걱우걱 다 먹는 모습을 보인 게 부끄러웠다. 한참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왜 그런지 나에게는 그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초코파이를 먹었던 행동이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아직도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겠지만-이라는 사실도 미안하고, 그날 바로 뛰어가서 엄마를 반가워하지 못했던 내 모습에도 화가 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은 초코파이를 먹을 게 아니라 비 ‘이까짓 거’ 하며 냅다 뛰었어야 했다. 그리고 엄마를 보자마자 우물쭈물하지 않고 달려가 엄마를 꼭 안았어야 했다. 이 그림책 속 아이들을 보며 그들의 마지막 장면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누군가는 집 앞 골목에서 마중 나온 엄마와 부딪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상상 속에서라도 뛰어가서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우리 엄마를 꼭 안아본다.

.


엄마가 내 어깨를 찰싹찰싹 때린 그다음 장면은 기억에 없다. 그래서 그날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쏟아지는 빗속에서 먹었던 초코파이의 축축함과 엄마가 우산을 들고 불쑥 나타난 골목길의 스산함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전 08화 우리가 살면 우리 집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