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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그루 Sep 09. 2021

우리가 살면 우리 집이다.

<우리 집은> 조원희 그림책, 이야기꽃

우리 집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붉은 갈색 대문을 열면 보이는 넓은 마당이다. 마당 한 구석에 수돗가가 있었고 그 옆으로 길게 빨랫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빨랫줄엔 늘 주인 집네 빨래가 한가득이었다. 낮동안 주인집 아줌마네 가족들의 빨래가 바짝바짝 잘 말라갔다. 주인집 아줌마는 하루 해가 슬며시 저물 때 빨래를 싸악 걷어갔고 그렇게 빨랫줄이 텅텅 비고 나면 우리 엄마는 그 저녁이 되어서야 손빨래 한 양말이나 수건 등을 널기 시작했다. 우리는 붉은 갈색 대문을 똑같이 드나들었지만 낮의 해를 똑같이 사용하지는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해서 붉은 갈색 대문 집에서 나와 방이 두 개에 작은 거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역시 주인이 따로 있는 집이었고, 넓은 마당은 없고 빨랫줄도 없었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엄마가 어둑어둑한 달빛을 빌려 빨랫줄에 손빨래를 너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조원희 작가의 그림책 <우리 집은>을 보다가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진 이유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해질 무렵 우리 엄마의 빨래 너는 뒷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묘미는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그림을 해석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엄마에게 안겨 있는 아이들의 안전하고 편안한 얼굴에서 나는 오히려 어린 시절 나의 불안과 슬픔을 기억해내듯이 말이다.


이사 간 집에서 나와 동생이 사용하게 된 방에는 창문이 크고, 창문을 열면 탁 트인 하늘이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동생이 늘 나보다 일찍 잠들어서 좋았다. 동생이 잠들면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센 비나 바람을 막아주는 건물이  아무리 튼튼하고 크고 넓고 아름답다 하더라도, 엄마 아빠의 품보다 더할까...

내 기억 속의 부모님은 서로가 그다지 알콩달콩하지는 못했기에 어릴 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나와 동생을 위해 당신들만의 방법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우리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려고 부단히 애썼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엄마, 임대가 뭐야?"

"빌려준다는 뜻이야."

"그럼 여기 우리 집 아니야?"

"우리가 살고 있으면 우리 집이지."

"임대에 사는 건 부끄러운 거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거야.'


늘 주인이 따로 있는 집이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으면 그곳이 바로 '우리 집'이라는 그 따뜻한 사실을 문득 깨닫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겉만 보고 온갖 냄새나는 말을 만들어 내는 어떤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그런 말들에 고개를 숙이고 한없이 작아졌던 어린 나를 다정하게 안아 주는 고마운 그림책. <우리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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