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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Nov 01. 2020

굳이가

굳이의 노래

고등학생 때 수능 기출 예상 문제의 지문으로 많이 등장하는 옛시조 중에 '구지가'라는 작품이 있다. 


거북아 거북아 고개를 내밀어라

그러지 않으면 잡아먹으리


삼국시대,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 강림 설화의 배경으로도 많이 등장하는 이 노래의 주인공인 김수로왕 할아버지는 굳이 혈연을 강조하자면 아주 오랜 우리 집안 조상님이다. 물론 그러기엔 김해 김 씨가 너무 많아서 우리 사이가 딱히 강조할 만한 혈연 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할아버지의 등장 배경에 구지가가 있다면, 내 등장 배경에는 굳이가를 넣고 싶다. 아직 굳이가가 뭔지 아무도 모르실 테니 설명을 드리자면, '굳이 이걸 왜 해?' 할 때의 그 '굳이'에 노래를 붙인 것이라고 보시면 된다. 물론 내가 만들었다. 그것도 지금 막 만들었다.


평소에 내가 아주 쓰잘 데 없는 걸 자주 하는데 그때마다 남자 친구가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굳이? 이 '굳이'의 행간을 풀이하자면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한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을 거야. 근데... 왜? 이걸... 도대체 왜?' 정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난 이 단어가 엄청 좋아졌다. 그래서 되고 싶어 졌다. 굳이의 아이콘, 혹은 굳이의 뮤즈. 




시나리오 작가를 준비하며 글을 쓰고 있을 때, 100번째가 넘는 퇴고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급격한 피로가 몰려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나는 '굳이' 그렇게 했다. 100번이 넘는 퇴고를 당했던 저 시나리오는 1년 가까이 매일 밤 퇴고를 했으므로 아마 300번 정도의 퇴고를 당했을 것이다. 어떤 날은 한두 줄, 어떤 날은 수십 장. 어쨌든 매일, 굳이 그렇게 썼다. 굳이라고 할 정도로 최대한 더 감각적으로, 엣지있게, 매혹적이라서 더 이상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없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아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거의 아무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읽고 또 읽고,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나는 그 차이를 아니까. 마음에 걸리는 한 줄의 대사를,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하는 짓을 매일 수십 번을, '굳이' 했다.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포기한 이후의 내 이야기를 글로 적을 때 든 생각도 '굳이'였다.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굳이 누가 궁금해할까. '굳이'일지 몰라도 쓰고 싶었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이렇게 굳이 쓰고야 말았다. 


나는 더 이상 '굳이'가 싫지 않다. 생각해 보니 원래 안 싫어했다. 그냥 아무 느낌이 없는 굳이, 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가 너무 좋다. 앞으로도 저런 걸 왜 하나 싶을지 모르는 일에, 나라는 인간의 애정을 가득 담아 굳이 할 계획이다. 그 노력의 결과가 좋을 수도 있지만, 아무 성과물도 없이 노력을 한 것만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항상 '굳이' 끝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야 기분이 좋을 것 같은, 이 기특한 마음에 굳이 노래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굳이가'이다. 


굳이야 굳이야 Yes를 내밀어라

그러지 않으면 잡아 족치리


족쳐지기 싫으면 굳이 할 수밖에 없는, 하지만 어차피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마음의 진짜 속마음. 굳이, 어떤 걸 꼭 하고 싶은 미친 마음의 노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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