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고 볼품없던 내면의 아이를 안아주다.
아침에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신다. 컵에 물을 담아 들고 책방으로 간다. 컴퓨터를 켜고 원고를 쓴다. 오늘은 메모장 먼저 열었다. 원고 쓸 때 넣을 내용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문방구 떡볶이>
중학교 정문 앞 문방구
빨간 떡볶이
후추 맛 찐한 매운맛을 잊을 수 없다.
건너편에는
김밥 튀김 순대 호떡까지 파는 진짜 분식집이다.
갓 튀긴 튀김과 따끈한 순대
간은 퍽퍽하니까 떡볶이 국물에 찍먹 필수
호떡 먹다가 입천장도 많이 데었지.
나는 진짜 분식집 떡볶이보다
입도 마음도 HOT했던 문방구 떡볶이가 더 좋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이 그립지 않지만
문방구 떡볶이 먹던
그 순간으로는 돌아가고 싶다.
2021년 7월 18일 오전 3시 24분
글을 쓰면서 문방구 떡볶이를 먹고 있는 나를 만났다. 문방구 떡볶이를 좋아했던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 친구들은 부자였다. 학교 끝나면 참새 방앗간 들리듯 진짜 분식집에 들렀다.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염치없어서 급한 일이 있다는 핑계 대고 집으로 왔다.
친구들은 김, 떡, 순을 먹고 나면 번화가로 놀러 갔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고, 국내외 연예인 사진을 코팅하러 갔다. 나는 친구들과 같이 갈 수 없었다. 아파서 누워있던 아버지의 병시중과 쌓여있는 집안일, 어린 동생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매 타작이다. 집에 가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중학교 다닐 때 공납금을 못 내어 매일 교무실에 불려 갔다. 그러니 용돈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길 다닐 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었다. 종종 동전과 지폐를 주웠다. 앞에 가던 사람이 돈을 떨어뜨려 주워준 적도 몇 번 있다. 5천 원짜리 지폐 주운 날도 있다.
새 공책을 샀다. 새 공책 사고 남은 돈을 다락방 여기저기에 숨겼다. 다락방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가끔 일기장 보러 올라왔지만 그때는 몸이 안 좋아져서 아버지도 다락방에 올라오지 않게 되었다. 들키면 뺏기니까 한 곳에 두지 않았다. 다행스럽고 통쾌하게도 들킨 적 없다.
조금씩 꺼내어 친구들한테 얻어먹은 떡볶이를 갚았다. 친구들이 번화가로 놀러 가는 날에는 혼자 문방구에 갔다. 유리로 된 진열대 위에 떡볶이 접시를 놓고 서서 먹었다. 겨울에도 온몸에 땀이 흘렀다. 눈물 콧물 흘리며 다 먹고 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여름에는 선풍기 바람이 무색했다. 물을 연거푸 마셔가며 그 빨갛고 맵고 후추 맛 진한 문방구 떡볶이를 먹으면 내 마음이 웃었다. 문방구 떡볶이를 먹는 날에는 살맛이 났었다.
하루를 사는 게 유난히 힘겨울 때면 그 문방구 떡볶이가 생각났다. 그걸 먹으면 살 것 같았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숨겨둔 돈을 꺼내 가방 밑바닥에 넣었다. 학교 끝나면 바로 문방구로 달려갔다. 창가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던 떡볶이 한 접시를 받아 들고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
<사춘기/집안일/포장마차/시장 장사>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울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난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집안일을 해야 했다.
나의 기상시간은 동생의 기상시간에 달려있었다.
부모님이 포장마차 장사를 했었다. 새벽에 깬 어린 동생 부모님을 깨우지 않도록 돌봐야 했다.
아버지는 장사 핑계로 손님들과 술을 먹고 취해서 집에 먼저 들어왔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와서 나를 깨워 내보냈다. 새벽까지 새엄마를 도와 밤 장사를 했다.
포장마차를 걷고 새엄마와 내가 번갈아가며 끌고 집으로 왔다.
학교 가기 전 잠시 눈 붙인다. 한두 시간 잤을 까 어린 동생이 깼다. 동생이 부모님을 깨우지 않도록 돌봤다.
미리 사 둔 과자를 꺼내서 먹도록 하고 그 옆에서 침을 삼키며 꾸벅꾸벅 졸다가
동생이 과자를 다 먹고 난 후에 새엄마한테 가서 사부작 거릴까 봐 조바심 내곤 했다.
재래시장 냄새가 싫다.
열세 살에 네 살짜리 동생을 데리고 시장 바닥에 앉아 장사했다.
처음에는 콩을 팔았다. 금방 다 팔렸다.
김도 팔았다. 또 금세 다 팔았다.
아주머니들이 아이들이 고생한다며 도와줬다.
아버지는 고등어 장사했다. 소라도 팔았다.
학교 다녀오면 시장으로 갔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도왔다.
고생했네. 쓰담쓰담
이제는 변화하는 나를 관찰하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을 보낸다.
나이 듦이 아깝지 않도록 지혜롭게 살겠다.
2019년 7월 14일 밤 10시 31분
이때는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기 전이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나의 이야기로 어떻게 책을 쓸까 싶었다. 머릿속에 엉켜있는 내 삶을 풀어내는 게 자신 없었다.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다.
내가 책을 쓰게 된 건 이런 끄적임, 메모 덕분이다. 매일 메모를 하고 짧은 글을 써서 저장한다. 저장한 글 창고에서 조금씩 떼어내고 다듬어 원고를 쓴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만나는 일이다. 글로 나를 만난다는 건 나를 관찰하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외면했던 나를 만난다. 어리고 힘없는 나약한 존재, 고통 속에 숨어있던 내면 아이를 만난다. 그때의 내 느낌을 다시 관찰한다. 문방구 떡볶이 먹는 순간이 살맛 난다는 나를 안아준다. 고생했다고 잘 견디고 잘 살아왔다고 쓰담쓰담한다.
글로 나를 만나는 건 상처를 드러내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다. 상처를 찾아 치유하는 일이다.
더 이상 지난날을 초라하고 볼품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삶이 구질구질하다는 마음도 없다.
그저 메모장에 끄적이는 오늘 하루가 훗날 또 다른 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당신의 삶과 글을 응원합니다.
자기 치유 성장 치유포유
셀프 치유법을 전하는 치유 언니
라이팅 코치, 치유성장 에세이스트 최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