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관조하고 나온 많은 철학적 문구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경구들이 있지만 실제로 각자의 삶으로 체화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둘 것인가"라는 초보적인 고민에서부터 "그럴 줄 알면서"도 하게 되는 인간의 많은 행동들에 대하여 고민하고 가치와 순위를 평가하다 보면 나름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내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찰자의 입장 즉 객관적 시선으로 돌아다보면 삶의 어느 순간의 특정 사건들을 애써 외면했었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다.
의도적 객관화는 이웃이나 형제들과의 관계에 새로운 접근방식을 찾이내기도 하고 이해의 폭을 합리적이고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또 생각의 정리를 통해 물질에 집착하거나 특정 사건 이나 소재, 사회관계에 편중되었던 인간관계 전체를 사회적 틀에서 지켜 볼 수 있고 좀 더 긍정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한편으론 극복하기 어려운 슬픔의 감정을 진정시키는 것도 한결 수월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천천히 해 나가야 하는 것", "지금 현재 나에게 혹은 내 이웃에게 내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등을 스스로 명확히 구분할 줄 알게 된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뒤돌아 보기 '를 통해 많은 이의 축복 속에 태어났다는 것을 상기해 보고, 이런 경험 등을 바탕으로 죽을 때 역시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별하는 방법을 알아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을 열심히 살다 보면 죽음이 당장 내 앞에 다가 오더라도 내일을 맞이하지 못해서 갖게 되는 감정이나 혹은 옆에 있는 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실제 우리가 보냈던 어제나 보내고 있는 오늘 그리고 미래인 내일은 모두가 그다지 변화가 없는 평균성을 갖는다. 큰일이 벌어지지 않기에 소중함을 덜 느끼는지 모르겠으나 큰 일을 겪어보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내일에 기대하는 것도 중요하고 내일 역시 오늘과 같은 날의 하루 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도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을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내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균형 잡힌 행동과 배려는 물론 남과의 불필요한 비교나 질투가 마음속에 일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많은 일들에 대해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 알고 있는 경우도 꽤 많다.
한편으론 우연한 사건이나 기대하지 않은 사건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아쉬움을 줄여가는 노려과 삶을 관조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 보는 정성이 각자에게 필요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건강한 삶이라도 언젠가는 아프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운동을 하다가도 오히려 더 큰 화를 입기도 한다.
헤어짐을 염두에 두고 만남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다칠 것 때문에 운동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안정을 원한다고 안정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시작이 같았던 모든 이의 삶이 같은 결과로 맺어지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그럴 줄 알면서도 수동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현실적이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도 달성해 나가는 이가 있다.
세상살이가 주는 재미라며는 의외성이지 않을까 싶다.
이를 확률로 풀어내는 이가 있기도 하지만 결국은 각자의 삶을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내는 것이 정답이다. 인간의 내면과 외향이 모두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지구 상의 몇%에 지나지 않기에 말이다.
그런고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찾아 나서는 삶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인생의 최종 단계에서 보면 당연히 좋을 것 같다. 어차피 주어진 삶에 순응해 살아도 안락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떤 이는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내면의 권태감으로 비극적 선택을 하니 말이다.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신을 감싸주고 벌어진 일을 애써 외면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서로 다른 생각에 공감을 표할 줄 아는 삶도 살아보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의 균형 있는 분배도 필요하다.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기쁨만큼 헤어짐에 대하여도 만남이 갖은것과 비례한 열정을 쏟아야 한다. "마음 다독이기"를 성의껏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감정의 밸런스가 균형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