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무엇 때문에 변화하는가? 역사로 알아보는 리더십!
▶ 지난편 보기[쉽게 알아보는 리더십 이야기 - ① 리더십은 왜 만들어졌을까? 리더십의 본질을 파악해보자!]
리더십은 '인간 욕망의 통제'와 '분배(이익)'의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함께 바뀐다. 인간의 욕망은 크게 수평적 욕망과 수직적 욕망으로 나타낼 수 있다. <매슬로우의 5단계 욕망이론>을 활용해보자면, 수평적 욕망은 각각의 단계에서 '크기'를 키우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남의 것을 빼앗아야하는 상황에서 힘을 가진 B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바나나를 빼앗아 A에게 준다면, B는 A에게 현재 뛰어난 리더십을 지닌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타인으로부터 A가 먹을 것을 B가 지켜준다면, A는 B를 기꺼이 따를 것이다.
수직적 욕망은 수평적 욕망이 만족될 경우, 조금 더 고차원의 욕망을 요구하는 단계적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A는 이제 누군가에게 굳이 빼앗지 않아도 스스로 농장을 가꿔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A의 다음 욕망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불려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A에게 있어 B는 현재 좋은 리더일까? 그렇지 않다. B가 A에게 좋은 리더가 되려면, A에게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령, A가 경작한 곡물이나 과일을 팔 수 있는 시장을 알려준다거나,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서 더 큰 이익을 안겨준다면 A는 B를 여전히 좋은 리더라고 생각할 것이다.
리더십이란 이러한 인간 욕망의 변화는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일어나며, '욕망통제와 분배'의 개념에서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화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① 욕망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 수록, 욕망 통제와 분배, 이익을 위한 욕망 통제와 분배(이익)를 위한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또한, ② 단순했던 욕망이 고차원적으로 올라갈 수록 리더는 고차원적 욕망 해결과 분배, 통제를 위해 필요한 고차원적 요소(합의, 피드백, 명분, 실리 등)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리더십의 변화와 모습들은 우리의 역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풍요로워지고, 고차원으로 갈 수록 리더십의 모습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내용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폭력의 리더십>은 인간 본능에 의해 생겨난 가장 태초적이고 원시적인 리더십이다. 과거 힘은 곧 권력이자 강력한 통제의 수단이었다. 인간은 힘이 센 사람을 중심으로 부족이나 이익집단을 형성했고, 그의 힘에 기대어 타 집단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받았다. 만약 누군가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곧 바로 힘의 논리를 통해 욕망을 통제하고자 했다. 고대 국가인 고조선의 금법 8조(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눈에는 눈, 이 에는 이)에도 <폭력에는 폭력으로>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는 인간이 나보다 강한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기대고, 힘을 의탁하는 본능에서 나오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폭력의 리더십>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동물은 위계가 얕보이는 순간, 순식간에 그 위치가 바뀌게 된다. 호랑이와 고양이를 붙여놓는다면, 죽을 때까지도 고양이는 호랑이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호랑이와 호랑이를 붙여놓는다면?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약하게 보이는 순간, 그 위치는 바뀌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같은 종이 같은 종에게 폭력의 리더십을 가했지만,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거나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순간 통제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리더는 순식간에 바뀌게 되고, 무리에서 리더의 위치를 잃은 자는 죽음 뿐이었다. 인간 집단에서 리더로서 지속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힘'이 아닌 리더를 따르도록 만들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택된 것이 바로 '신앙'이었다.
<공포의 리더십>은 신앙을 바탕으로, 집단의 리더는 사람이 다룰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토테미즘, 애니미즘과 같이 인간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물, 불, 곰, 호랑이 등)을 신격화하여 '집단적 결속'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의 뜻"이라는 말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거나 이익을 분배했다. <공포의 리더십>은 같은 종의 힘으로 인해 통제되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것을 통해 통제되는 것으로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잠재우는데 좋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공포의 리더십> 또한 <폭력의 리더십>처럼 지속성을 갖추지는 못했다. 바로 '불신' 때문이었다.
명확한 근거가 없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많아지게 되었고(이는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공포에 대해 불신하고 이를 극복하게 된다면 <폭력의 리더십>처럼 순식간에 리더의 역할이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대의 조상들은 인간의 존속과 결속을 위해 강력하며, 지속적인 리더십을 원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폭력의 리더십>과 <공포의 리더십>이 결합하는 형태로의 <절대적 리더십>이 등장했으며, 고대~중세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성을 갖고 강력하게 발휘되었다.
<절대적 리더십>은 말 그대로 리더에게 절대적인 통제권을 부여하는 리더십이다. 이 리더십은 역사에서 흔히 말하는 '제정일치' 혹은 '제정분리'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강력한 힘을 가진 왕과 자연적 현상을 통해 공포를 조장하는 제사장이 통합 혹은 분리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러했고, 중국의 은주시대, 고조선 혹은 삼한(신라)이 그러했다. 특히, '제정일치' 사회에서 <절대적 리더십>은 매우 강력했다. 왕의 혈통은 신의 혈통이므로, 그들의 혈통만이 인간을 다스릴 수 있다는 강력한 근거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신의 혈통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권력의 승계구조를 만들어 기존의 폭력/공포의 리더십에서 가지지 못한 지속성까지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절대적 리더십은 어느정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리더십이다. 국가를 건설하거나, 왕조가 바뀔 때마다 역사에서는 새로운 군주를 신격화하거나 영웅화했다. 이는 해당 리더와 혈통이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거나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어떠한 국가/조직이라도 초기의 흔들리는 상황에서 지배체계를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마치 북한이 떠오르지만..) 절대적 리더십의 모습은 과거 방영했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태종 이방원이 세종 이도에게 마방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으로 떠올릴 수 있다.
"어느 열, 어느 행, 어느 대각선을 더해도 '1'이 나오는 것이면 해결되지 않소? 33방진도 그리 어려워 못푸는데, 세상일은 몇 십만방진이오. 100년을 살지도, 200년을 살지도 못하는 인간인데 그리해서 어찌 풀겠소? 왕의 방진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오! 단 하나로 힘을 모으는 것! 그게 나, 이방원이다."
-뿌리깊은나무 2화, 태종 이방원의 대사 中 -
조선이 세워진지 고작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태종의 대사는 '절대적 리더십'을 통해 조선의 기틀을 잡기 위한 노력의 모습이 보여진다. 만약 태종이 왕권을 강화하지 않았더라면, 개국 공신들의 탐욕을 통제하지 못했더라면 세종이 성군으로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방식의 정치를 펼칠 수 있었을까? 어수선한 조선 초기의 상황 속에서, 강력히 들끓는 욕망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던 태종의 리더십은 조선의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필수적인 리더십이었다.
<절대적 리더십>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중세로 넘어오는 모든 시기에 보여졌던 리더십의 대표적인 형태였다. 그리고 이런 리더십은 현대사회에서도 간혹 비춰지는데,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초기 혹은 어느정도성장하고 있는 조직/기업 세팅에서 CEO 혹은 창업주가 구성원들을 이끌고자 할 때이다. 예를 들어, 삼성의 故 이병철 회장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현대의 故 정주영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이미 대부분의 직장인, 경영자들이라면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들의 경영방식을 '기업만의 경영철학'으로 만들고, 구성원들에게 교육하는 일은 구성원들이 회사의 CEO와 창업주에 대한 신뢰를 부여하고 따르도록 만들기 위한 <절대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박정희를 신격화하거나, 위대한 대통령으로 이야기하는 견해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정치적 견해가 없음을 밝힌다.)
다시 역사로 돌아와 <절대적 리더십>은 고대~중세를 주름잡는 리더십이었다. 허나 중세시대 이후, <절대적 리더십>이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바로 상업과 교역이 발달하면서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흔히 귀족, 그리고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상위계급들이었다. 고려와 조선을 예로 든다면, 권문세족 혹은 신진사대부, 서인/동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초기 이들은 조직/국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절대적 리더십>에 협조하면서 조직을 운영해갔다. 그러나, 조직/국가가 안정화됨에 따라 왕과 함께 정사를 논의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주축으로 성장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왕도 무시하지 못하는 지배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는 기존의 <절대적 리더십>의 근간을 흔들 뿐더러, 새로운 리더십의 형태를 등장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이다.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은 어느정도 물질적인 풍요를 이뤄감에 따라 등장한 리더십이다. 전체적으로 운영이 안정화되고, 성장세를 이룬 상황에서 주로 나타나는 형태의 리더십이기도 하다.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은 인간의 욕망을 단순히 힘으로 눌러 통제하는 것이 아닌,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통해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것은 생존을 고민하는 조직이 아닌, '수평적 욕망'의 크기를 뛰어넘어 고차원적인 형태의 '수직적 욕망'이 작용했을 때 나타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이 등장한 이유는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직은 성장하면서, 규모가 거대해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욕망통제와 공정한 이익분배가 어려워진다.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 더 많이 줘야하는지, 많이 거둬가야 하는지의 기준도 모호해진다. 구성원들은 이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헤 지배그룹에게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은 더 큰 성장을 위해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이익 분배를 위해 공정한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은 구성원들의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합리적이거나 명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조선의 <성리학>을 들 수 있다. 조선의 지배체제는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다. 조선 초기에 성리학은 크게 힘을 받지 못했다. 앞서 말했 듯,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태종과 같은 <절대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국가가 세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국가를 구성하는 사대부들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왕들은 사대부들과 정치적인 쟁점을 논의하며 국가를 운영했는데,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성리학>을 활용해 '권리'를 행사했다. 이는 성리학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행사하는 권리를 명분으로 삼아 권력을 공고히 다지게 되었는데, 때론 왕도 <성리학>을 어긴다면 '폐위'되기도 했다. (성리학의 나라인 명나라를 돕지 않고, 오랑캐인 청나라를 도왔다는 이유로 광해군을 폐위하기도 했다.)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은 서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리더십이었다. 우리외 비교했을 때, 유럽에서의 <성리학>은 <종교>였다. 대표적인 일화 중, 영국왕 헨리 8세(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가 이혼을 위해 카톨릭을 부정하고 '영국 성공회'를 만들어 교회의 수장이 된 것이 있다. 단지 이혼을 하기 위해, 위의 행보를 벌였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유럽에서 리더가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교회'는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근거였고, 헨리 8세는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을 만들어내기 위해 성공회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뒤이어 등극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여왕으로서 남자들에게 무시 받지 않기 위해, '처녀여왕'이라는 것으로, 자신이 국왕으로써 나라를 통치하는 것에 명분을 싣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그녀는 타국의 왕들과 결혼을 무기 삼아 영국의 이익을 확장해나가는 것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이 엘리자베스의 지배력을 공고히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은 현대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조직문화>를 들수 있다. 우아한 형제들의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11가지 방법>은 그들의 문화로 대표되지만, 리더들이 구성원들을 운영함에 있어서 리더십을 발휘할 때, '11가지 방법'을 기본원칙으로 적용하고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 리더들은 구성원들에게 '우리 이런 원칙이 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라며 구성원들의 욕망을 통제하거나, 적절한 이익분배의 원칙(성과급, 보상 등)으로 활용하게 된다. 만약 조직의 리더들이 구성원들을 설득할만한 기본원칙과 그에 따른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불만을 품고 이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마존의 <14가지 리더십 원칙>, 쿠팡의 <15가지 리더십 원칙>, 넷플릭스의 <부검메일 문화> 또한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들이 구성원들과 함께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 '우리는 이런 원칙이 있잖아!'라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명분만 만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때론 구성원들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때론 정적을 제거하는데 부정적으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을사사화, 갑자사화와 같은 사화나 붕당정치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명분'은 그저 '말' 뿐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사실관계 혹은 Fact Check 등의 객관성 확보가 어려워 실수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실수가 반복되면,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은 신뢰를 잃게되고 힘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 리더십은 '변화에 적응하는가?'와 '그러지 못하는가?'가 가장 핵심이다. 리더십도 상황과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역사적으로 그 시기를 '대표' 할 수 있는 시대의 상황과 흐름이 있었기에 시대적으로 대표되는 리더십들의 설명이 가능했다. 과거에는 변화의 주기가 매우 길었다. 우리가 왕정시대를 벗어던진 지 근 100년 밖에 지나지 않았고,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현대의 산업을 이루기까지는 200년이라는 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다. 고대~중세에 이르기까지, 한번의 변화와 혁명이 일어나는 시기만해도 얼추 500~1,000년의 시간이 흘러야 가능했던 일이 100~200년 새에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얽혀있다. 작게는 하나의 조직 내에서도 너무 많은 역할과 전문가들이 생겨나고, 타 부서와의 협업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상황, 시장경제 상황 등 초연결 사회로 인해 신경써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인간 욕망의 통제 수단으로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정보 접근성 차단'은 현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도구가 되었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조금만 노력하면 찾을 수 있는 것이 정보가 되었다. 그렇기에, 변화와 혁신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고 사람들의 생각도 다양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더군다나 민주사회로 발전하면서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 것도 크게 한 몫했다. 이에 따라, 조직의 리더는 단순히 구성원의 욕망을 통제하고 이익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된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처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성원들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변화의 흐름에 타지 못하는 리더가 된다면 그 순간 '도태'되어 리더십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과거의 리더십은 '리더 개인의 뛰어난 역량'만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 시대였다. 한 명의 리더가 앞장 서서, 모든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면 <절대적 리더십>, <명분과 실리의 리더십>이 충분히 구성원들에게 먹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리더>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오히려 조직의 구성원들은 제 역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그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고자 한다. 또한 생존의 문제에서 벗어나, 훨씬 더 고차원적인 개인의 '성취와 성장'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은 시대이다. 리더에게 있어서는 더욱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구성원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조직 내 구성원 뿐 아니라, 조직이 얽혀있는 외부 환경을 빠르게 읽어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현대의 리더십은 단순히 시대를 대변하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 굉장히 어렵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과거와는 달리 1년 이내에도 너무나도 빠른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 '감성형 리더십' 등 다양한 리더십들이 나오고 있지만, 특정 리더십으로 현대의 조직을 운영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리더들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의 덕목을 1가지로 꼽자면 <변화에 적응하는 리더십>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 다음편 보기 : [쉽게 알아보는 리더십 이야기 - ③ 현대의 리더십 유형, 그리고 리더십 운영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