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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a J Mar 21. 2023

[100-80] 오직 모를 뿐으로.

feat. 성연화


"오직 모를 뿐, 오직 행할 뿐"

숭산스님이 줄곧 이야기하셨다는 말이다.


무엇을 그렇게 안다고 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그렇게 인정받고 싶고, 무엇을 그렇게 시시비비 따지고 칼로 자르듯 명명백백하게 하고 싶은 걸까. 내 안에는 어떤 칼이 들어 있는 것 같다. 특히 권위에 의한 밑도 끝도 없는 당위적인 이야기들, 이해 없는 도그마들을 당위적으로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나를 가르치려 들려할 때 나는 바로 발끈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화가 별로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쩌면 내 안에 무지막지한 화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


어이없게도 나의 어린 시절 꿈은 군자가 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늘 나는 시시비비를 올곧게 가릴 수 있는 정의로운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의 이야기에 자꾸 발끈하는 마음이 생기며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하는 나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내가 뭘 알고 있다는 거지? 무엇을 가리려고 그토록 분석하고 있는 거지? 왜 이기려고 하는거지? 왜 반박하고 싶어지는거지? 대체 무엇을 인정받고 싶은 걸까? 내가 옳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나도 내가 옳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것뿐인 것이라.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 말이 떠오른다.


"오직 모를 뿐..."  



성연화 작가(b.1986)는 한지와 먹으로 작업을 한다. 오래된 것에서 오는 따스함. 따스한 온기와 평온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무언의 이야기를 나누며 평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염료와 커피, 아크릴, 파라핀을 먹인 한지를 인센스를 이용해 잘라낸다. 그 후 캔버스에 다시 조각조각난 한지를 붙여가며 추상풍경을 완성한다. 한지 위로 자연의 색들이 떠오르며 고요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성연화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기분 좋은 향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곳곳에 놓인 서예 도구들, 겹겹이 쌓인 한지들과 향 냄새가 어우러진 공간은 마치 고요한 산사에 들어선 듯 고요함과 차분함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가구와 기물들까지 그녀의 작품을 닮아 따뜻하고 단아한 색을 띠고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다. 성연화 작가는 한지와 먹, 동양화 물감, 아크릴물감과 파라핀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했지만 ‘글자’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표현법이 싫어져 직접 쓴 글자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작품의 의미를 글자로 전달하기보다는 보는 이들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작품의 주제를 한지에 쓰고 조각조각 자른 뒤 파라핀을 바르고, 향으로 가장자리를 태운 다음 화폭 위에 붙이고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아크릴 물감으로 여러 번 덧칠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긴 과정 중에서 가장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업은 향으로 가장자리를 태우는 일. 스스로 가장 평화로웠다고 여기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다 고안해 낸 그녀만의 의식이다. 하략

작가 인터뷰 중

어릴 땐 엄마 무릎에 누워 머리카락을 빗어 넘겨주시는 손길을 느끼는 게 가장 큰 위로였는데, 지금은 집에서 반려견인 루이, 비똥이를 쓰다듬으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큰 위로이자 평온을 느끼는 순간이에요. 작업실에선 한지에 먹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져요.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329250&memberNo=25516952&vType=VERTICAL


작가는 서예과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서예공부를 하였고, 한지와 서예를 조합하고 동양과 서양의 재료를 조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현재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진작가로 급부상중이다.


평화로움, 평온함에 대해서도 고민하던 중이었다. 무엇을 그리 알려고 하고, 칼로 자르듯이 날카롭게 자르려고 하고, 시시비비 분석하려고 하고 그래서 타인에게 따지고 들려고 하는 걸까. 그래서 자꾸 싸움을 거는 걸까. 내가 무엇을 안다고.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겁이 많은 강아지가 짖어대듯… 무언가 무서운 것들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 경계심.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놓아두어야 먹처럼 서서히 퍼지는 것들이 있다. 분명한 그림이 나오지 않아도, 내 말과 마음을 이해받지 못해도,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평온한 순간은 내 안에서 창조될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오직 모를 뿐으로...


오직 모를 뿐이다. 오직 해야 할 일만을 그냥 묵묵히 해나가고 싶다. 그저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다보면, 될 일은 어떻게 해도 될 것이고, 안 될일은 어떻게 해도 안될 것이다.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행하는 그 과정 뿐이다.





전시안내


PARAN

성연화 장광범 채성필 Sung Yeon-Hwa Chae Sung-Pil Jang Kwang-Bum

23.03.14. - 23.04.08.

갤러리조은은 채성필, 장광범, 성연화의 3인 전 《PARAN》을 3월 14일부터 4월 8일까지 개최한다. 3인의 작가는 추상과 구상을 오가며 각자의 독특한 조형 언어로 생동감 넘치는 대자연의 에너지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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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모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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