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생각보다 다루기가 힘들다. 꽤 변덕스러운 편인데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가 않아 가능한 같은 기조를 유지하며 살고 싶었다. 문제는 그것이 주로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방향이었던 데 있다. 생각해 보면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쉬이 사라지는 법이라 생각하여 붙잡을 수 없다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감정이라고 혹은 믿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소란 떨고 요란 떨고 싶지가 않아 좋은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을 뿐인데, 절망에 관해서는 어쩌면 엄청 호들갑을 떨고 있었던 건가. 문득 그런 성찰이 되는 시점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그저 실망하고 싶지 않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도 끄떡없을 수 있도록 최대한 저 아래로 내려앉아 있었을 뿐이다.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들이 생긴다는 감사일기도 써 본 적이 있었는데, (물론 감사할 일들은 늘 참 많다.) 하지만 뭐랄까. 그 감사함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가식적으로 혹은 표면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감사하다고 말로만 떠들면 뭐 하나. 그게 진짜 감사한 건가 싶은 생각에 때로는 감사하다고 쓰면서도 갸우뚱거리게 되거나 억지로 감사를 해야해 라며 스스로에게 강요하듯 감사를 소유하려고 마구 욕심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문을 외우듯 부정과 어두움을 애써 기피하려는 것도 건강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흠… 어떻게 해야 평정심과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다. 비극과 희극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을 수시로 넘나들면서 괜한 기운을 빼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에서 찰랑찰랑하게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사는 일.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중심이라고 하니 최근 계속해서 중심을 잡고 핵심을 잡아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들도 떠오른다. 이는 자립하고 싶다는 내 열망에 대한 조언들인 셈인데, 어떻게든 주변에 휘달리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나 사람에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고 감정을 쓰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 나의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 모든 분산된 힘들을 내 안으로, 어떤 중심으로 애써 끌어와야 하는 때. 그런 일들과도 어쩐지 연결이 되고 있다.
헤다 스턴은 미니멀리즘에서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넘나들던 여성예술가였다. 그녀는 한 스타일만 선호하지는 않고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진동한다고 했다는데, 이를 "때때로 나는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현실에 반응하고 때로는 아이디어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라고 했다.
어쩌면 다양한 감정을 넘나들며 경험하고 나서 그 중심에 서는 일과 그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무표정한 것은 다른 일일 수도 있겠다. 수많은 복잡함을 거치고 난 심플함과 그냥 아무것도 없는 단순함의 깊이가 같지 않은 것처럼.
어쨌건 평정심이라거나 중심이라거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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