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프란시스 피카비아)
프란시스 피카비아(1897~1953)는
인상주의 그림을 시작으로 오르피즘, 황금 분할파, 큐비즘을 거치며 다다이즘, 초현실주의까지 20세기 미술 전반에걸친 활동을 했다. 초기에는 인상주의의 풍경화 그림으로 시작하여 큐비스트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된 후 다다이스트가 되었고, 이 시기에 그의 유명한 기계그림과 초상화를 그렸다. 다다이즘은 1차 세계대전 중 작가들이 일으킨 반 문명 예술운동이다. 다다이즘은 인간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기반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화적, 전통적, 이성적인 것을 부정하고 거부했다.
열렬한 다다이스트였던 그가 다시 파리의 다다와 결별하며 투명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는데(1926년경부터 1935년경까지) 이는 전통적인 유화의 테크닉과 성경과 신화적인 주제의 고전이미지들을 차용하고,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중첩된 이미지의 이중인화 기법을 창안하여 시도한 그림 연작이다. 차용된 이미지와 창작된 이미지의 결합, 회화와 데생의 결합, 자연과 인물의 결합, 하나의 회화 안에 여러 층들이 결합되어 있다. 당시에는 망친 그림이라는 혹평으로 예술계에서 잊혔으나, 반세기가 지난 1980년대 중반에 포스트모던 회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재평가 받았다.
지난 5~6년간의 행보를 되짚어 보며 정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를 잘 모르는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정리를 하면서 어떤 행보에 대해 언급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나는 약간 반골기질이 있는 성향이라 전통적인 조직이나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잘 맞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늘 나의 행보를 숨기고, 말을 숨겨야 할 것 같은 느낌으로 산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그게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리고 보일지 그런 점들이 나에게는 참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행보를 정리하며 이런 과정들이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가늠이 잘 되질 않으면서도, ‘나 참 또라이같다.’ 라는 평가를 스스로에게 내리고 만다. 남이 만들어 놓은 규칙 안으로 도무지 들어가지지 않는 느낌. 하라는 대로 도무지 하지 못하는 습성.
누군가로, 혹은 무언가로 박제되고 싶어 하지 않는 나의 이런 성향은 여러 인물들과 형태, 관계들이 층층이 어지럽게 겹쳐있는 피카비아의 그림에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다양한 예술운동을 거치고, 재료도 한가지로만 쓰지 않았던 그의 그림이 사뭇 궁금해진다. 어쩌면 화가 본인만 알고 있을지 모를, 온통 수수께끼 같은 그림에 나도 모르게 매혹되고있다.
참고자료
https://www.mutualart.com/Article/Francis-Picabias-Elusive-Transparencies-/F23178D48F0F04DD
김령, 피카비아의 <투명>연작에서 드러나는 조형요소들의 포스트모던적 징후들, 2010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일보우일보 #우보천리
#나는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