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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 걷기

by 승환

동네에 저녁마다 심심치 않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올림픽이라도 나갈 듯 한 포즈로 한 껏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모여서 러닝을 하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고 무리를 지어 뛰어간다.

한강공원이 정비가 되고 이제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르자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굳이 피크닉이나 한강라면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고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유행 따라 자전거니 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이 성황을 이루더니 이제는 달리는 이들의 모습이 부쩍 늘어났다.

부산하게 뛰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한강을 따라 걷는 산책도 좋지만 경의선 숲길로 발길을 돌린다.

경의선 숲길은 신촌 로터리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연남동까지 동쪽으로 효창동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홍대역 앞의 큰길과 대흥동 공덕동에서 잠깐 끊기지만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길고 멋진 공원이 있다는 것은 새삼 놀랍기만 하다.

어려서부터 이 동네를 살았던 터라 경의선 숲길의 변모되기 전 모습을 보아왔기에 공원이 생기자 새삼 얼떨떨하기도 하였다.


경의선은 신촌역을 기점으로 일산과 파주를 지나 임진각까지 연결되어 있다. 일부는 서울역까지를 가지만 신촌기차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3호선 전철이 생기기 전에는 일산에서 서울을 나오는 관문이기도 했고 3호선 전철이 생긴 후에도 파주에서 서울을 나올 때 가장 요긴한 교통편이었다.

신촌에는 대학들이 몰려있었고 파주에서 공부를 위해 어린 나이에 유학을 나온 친구들도 있었다 형이나 누나가 방을 한 칸 얻으면 줄줄이 형제들이 따라서 나왔다.

그 시절에는 첫째가 공부를 마치면 둘째와 셋째를 챙기며 학업을 이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백마에 화사랑이라는 카페는 60년 대생들에게 큰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다.

승용차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서울을 벗어나 어딘가 색다른 나들이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던 그 시절에 젊은이들의 해방구였고 문화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늦게 태어난 죄로 학력고사를 끝내고 신도시 개발로 곧 사라질 거라는 백마의 화사랑을 가보자고 친구와 함께 겨울 어느 날 기차를 탔던 기억이 있다.

뭔가 색다르고 별천지 같은 거리가 나오리라고 기대를 잔뜩 하고서 백마역을 내려걸었던 그 거리는 이미 황폐하게 버려져 있었다.

초라하고 볼 것 없는 그 거리에 아무 술집이나 들러 막걸리를 먹고 돌아왔던 추억이 있다.

나중에 애니골이라는 곳으로 이동을 하여 잠깐 살아나려나 싶더니 추억의 백마나 애니골은 이제는 다 시들해져서 기억에 사라지는 곳이 되었다.

기차가 전철이 되고 교통이 좋아지는 것은 지역의 명소나 사람들을 전부 흡수해 버리고 만다.

일산의 번화하던 라페스타니 웨스턴 돔이니 이런 지역들은 홍대 앞으로 뚫린 기찻길을 타고 사람들이 떠나 버렸다.

경의선이 전철이 되고 나니 파주지역은 은평의 연신내나 일산으로 나오지 않는다 홍대라는 커다란 상권이 모두 사람들을 흡수해 버렸다.


기차가 모이고 서는 곳은 늘 사람들이 북적이게 된다.

신촌에서 이대로 이어지는 지역이 한때는 서울에서 가장 핫하고 큰 상권을 이루었다가 서서히 막을 내렸다.

강남과 서울 남부로 이어지는 곳들이 개발이 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이름값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청담동이 다 가져가 버린 스드메의 원조는 이대 앞이었고 결혼을 앞두고 이대 앞으로 결혼을 앞둔 처자들이 몰렸던 적이 있었다. 조금만 올라가면 아현동의 가구거리에서 신혼 혼수로 가구까지 사는 패키지가 완성되는 곳이기도 했다.


산책을 하려고 집을 나오면 나는 광흥창역을 등지고 신촌로터리를 향해 걸어간다.

뒤 돌아보면 여의도의 현대몰 건물이 시뻘건 몸뚱이를 쑥 내밀고 있는 모습이 바로 한강너머가 아닌 코앞인 듯 보인다.

와우산자락의 끝으머리 즘 이랜드에서 만든 청년주택을 지날 즘이면 그 앞에 살던 친구집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랜드가 들어오기 전 홍익공전의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튀기던 어린 시절도 불쑥 생각이 나기도 한다.

홍대 산울림 소극장방향의 삼거리를 지나면 경의선 숲길 공원의 입구가 보인다.

예전에는 굴다리가 있어서 기차들이 지나다녔다.

드믄드믄 기차가 지나가면 골목의 철길에서는 땡땡거리며 차단기가 내려가곤 했다

그 앞 철길 주변을 홍대의 젊은이들이 땡땡거리라 불렀다.

산울림 소극장 주변으로는 입시미술학원이 몰려있었고 작은 카페나 선술집이 많았다 철길 갈빗집이니 그 안쪽으로 소금구이 같은 선술집 그리고 왜 생긴 건지 이유는 알 수 없는 골뱅이 골목이 있었다.

철길은 골목을 가로지르며 지나가게 되면 그 옆의 집들은 불편하고 시끄럽기 마련이라 허름하고 값이 싼 집들이 많았다 철도가 지하로 들어가며 공원이 되자 그 집들은 앉아서 갑자기 로또를 맞게 되어버리고 건물들이 하나둘씩 올라갔다.

세상의 일들이란 게 요지경이란 말이 새삼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신촌로터리 남쪽에 굴다리 밑은 지저분하고 작은 가게들이 정신없이 있었다.

강화에서 오는 버스의 종점이 있었고 신촌다주쇼핑센터로 이어지는 먹자골목과 주변은 선술집과 여관으로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거리였다.

어린 시절에는 연희동과 서대문쪽이 오히려 부촌이어서 친구는 자기 어머니가 신촌굴다리 밑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고 이야길 하셨다고 한다.

친구는 나를 친구로 만나는 걸 영광으로 알라는 농담을 곁들였지만 씁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와우산에는 시범아파트가 무너진 후에 민영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달동네요 허름한 판자촌이 있었고 밤섬이 없어지고 피난온 사람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돈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한강으로 갈수록 작고 더럽고 환경에 위험한 공장들이 모여있었다.

수해가 나는 동네였고 늘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그나마 집값이 싸고 시내를 나가기에 교통이 좋은 편이라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홍대역 쪽으로 향해 숲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늘 한적하고 비교적 거리가 가깝기에 연남동 쪽까지 가지 않고 돌아오기도 한다.

경의선 책거리라 하며 한때는 출판사마다 부스를 만들고 활성화되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개점휴업인 듯하다 예전 같지가 않다.

구청장이 바뀐 후 말이 많았지만 결국은 마포구의 정체성이 바뀌기는 힘들 것 같다.

수많은 출판사와 예술인 그리고 서점들 젊은이들이 있다 보면 눈치를 봐야 할 것이라 결국은 또다시 또 복작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책거리를 가지전에 신촌방향으로는 분위기 있는 카페와 식당들이 드믄드믄있다.

한 번씩 다음에는 한번 가봐야지 하지만 말로만 그친다 그것은 이 식당들이 부러 찾아서 오는 게 아니면 산책길에 오다가다 사람들이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늘 사람들은 만원이고 북적북적 하여 저녁밥을 다 먹고 나왔어도 자꾸 유혹이 생긴다.

돌아오는 길에는 홍대 골목들의 버스킹을 구경하거나 사람들 상점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홍대정문을 거쳐 상수역으로 간다 어떤 날은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서교시장 골목을 지나 주차장 골목을 지나오기도 한다. 가건물 같은 한 평짜리가 장사가 잘되는 곳이라 월세가 어마어마하다 그 길가는 예전에는 감자탕골목이었다 이층 집이니 아직 하는 곳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십 대에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가던 곳이다. 조금 더 가면 수노래방이 있던 노래방 골목 상상마당 오뙤르등 공연을 하던 카페를 지난다. 길을 건너면 지금이 이곳을 레드로드라 명명하고 주차장을 없애고 광장같이 만들었다.

클럽거리의 서편 합정역으로 이어지는 초입이다 상상상마당 건너편의 이 길이 예전에는 철길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서울화력발전소 우리는 그냥 이름을 당인리 발전소로 불리는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당연히 석탄을 사용하였기에 석탁을 날르는 화물기차가 연결이 되었다.

어린 시절 공지로 어수선하게 있는 땅의 이유를 몰랐고 그 공지를 주변으로 아이들은 야구를 하거나 공을 차거나 하면 놀았다.

4월이면 발전소 안에 절정을 이루는 벚나무들을 구경하려고 오픈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서 다 없어졌지만 고종이 사용하던 전기를 만들기 위해 일정 때부터 있던 발전소이다 보니 수령이 오래된 벚꽃나무가 우람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아버지가 한전에 다니던 친구도 있어서 그곳 사택에서 살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한번 놀러 가기도 했었다.

말로만 듣던 잔디밭이 쫙 펼쳐진 그곳에서 야구나 축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잔디는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 쫓겨나기 일쑤였지만.


연남동쪽은 연트럴파크라 해서 굳이 언급을 안 해도 많은 사람이 일부러 한 번씩 다녀가곤 한다.

이곳이야 말로 경의선과 공항철도가 만들어낸 기적이 땅이다.

그 안쪽의 역과는 멀고 연희동도 아니고 홍대도 아닌 그런 동네였다가 신분상승을 한 곳이다.

감나무집이니 자질한 식당들 택시기사들이 밥먹으러 가는 골목이었고 값이 싸고 한적한 곳이라 정신없는 홍대에서 놀다 싫증난 나이 먹은 치들이 술추렴 하러 가는 곳이었다.

성산동으로 이어지는 끝쪽으로는 좁은 골목들이 이어지고 성미산쪽과 끝남동이라 불리는 곳으로 작은 서점들과 식당 카페가 있다.

독립서점들은 은근히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연남동 부근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공원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면 연희동으로 이어진다. 연희동 깊숙이는 가지 않더라도 화교들이 하는 중식당을 찾아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 신촌굴다리는 기차가 아니라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교량길이 되었다. 이곳에서부터는 신수동으로 시작하여 대흥동으로 공덕동으로 연결이 된다.

공원 길 중 가장 나무가 우거지고 숲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길이다.

작은 집들과 동네를 지나고 아직은 상업적인 모습이 덜한 것 같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일이라 곧 바뀌게 될지 모르겠다.

여름에도 시원하게 산책하기 좋은 이 길을 쭉 가다 보면 넓고 환해진 공원 길이 나온다 공덕역 쪽으로 마포대로가 지나서 잠시 끝난다.

연남동의 코오롱 아파트를 보고 위치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지만 전철역이 너무 멀었다 물론 아주 멀다고 하긴 그렇지만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공덕역 앞의 일렬로 붙어 있는 아파트들은 너무 탐이 난다.

큰 단지도 아닌 주상복합스타일이지만 바로 공원을 끼고 있으면서 공덕역이 초초 역세권이다.

면허는 있어도 운전을 못하는 아내가 바라는 끝판왕 역세권이다. 15억 일 때도 좀 비싸네 싶었는데 이제는 20억 턱밑이다.

아내와 산책을 나서서 지날 때마다 군침을 흘리고 한참을 바라본다. 건너편의 큰 단지들도 나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좋아 보인다.

물론 가격은 안 좋아 보여서 우리 부부는 한동안 아니 죽을 때까지 바라만 볼 것 같다.


공덕역 앞은 시장터에 재개발을 놓고 한참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지만 개발이 거의 마무리된 후 이제는 뭐가 더 들어서기도 힘들어 보인다.

공덕시장은 아직 명맥은 유지하지만 가성비는 극악이다 명절에 꾀가 나서 전이라도 사라갈라 치면 가격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름만 남아있어 이제는 그렇고 그런 최대포니 사라진 고박사냉면이니 마포주물럭은 예전의 추억에서나 남겨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공덕역의 굴다리가 헐리고 마포역 앞에 있던 육교가 흔적을 찾기 힘들다.

마포대로에서는 외국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근처의 학교에서는 자리를 배정받고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국기를 양손에 들고 흔들고 환영하는 척하는 연기가가 되어야 했다.

여의도를 갈 수 있는 유일한 다리였던 마포대교를 버스비를 아끼려 걸었던 기억이 있다.

여의고 광장이니 kbs방송국에 뭐하러 고생을 하고 다닌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마포대로를 건너면 위쪽으로는 재건축아파트 공사가 한창이고 밑으로는 오래된 구축들이 몰려있다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면 효창공원역 방향으로 길이 나있다.

용산과 마포의 경계가 무의미하게 비슷한 풍경들이 이어진다. 용마루라고 불리던 이 언덕배기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제는 효창공원역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걸어갈 곳이 없다.

효창공원역이 끝나지만 밑으로 더 내려가서 용문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망원시장이 너무 핫해서 사람들이 몰리지만 여기는 도시 감성 서울 예전 구시장 감성이 남아있다.

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는 인상은 세고 한가닥 하실 것 같지만 서울아줌마의 조곤 한 특유의 말투다.

가끔씩 축제기간에 맥주를 팔기도 하고 작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아 활기차다

건너편 효창공원은 늘 조용하다 용산 어디서 살라고 하면 비싼 한남동이나 용산역부근 후암동보다는 여기가 사람살기는 편할 것 같다.


공원이 생기지 않았으면 일부러 이렇게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 같다. 대로변은 너무 삭막하고 걷다가 치이는 게 많다

특별히 살 것도 없이 어디 어디를 가곤 했던 시절에는 사람을 보고 물건을 보러 다녔지만 지금은 그 거리마다의 특색이 점점 없어진다. 울 집 앞에도 있는 프랜차이즈들이 복사된 듯 어느 거리 동네에나 있다

골목골목은 어디선가 단절이 되고 목적성이 없이 찾기가 쉽지 않다.

서울외곽으로 멀리 가지 않아도 나무들과 꽃들이 있는 풍경이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경의선 공원의 가치는 그래서 더 크고 고마운 것이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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