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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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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Dec 11. 2023

이상한 종착지






우리가 가는 곳은 전망이 밝다고 평가받던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중견기업이었다. 하지만 나와 아이들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새로운 곳에서 펼쳐질 미래와 어린 나이에 벌써 돈을 번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버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때에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안경 쓴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반가워, 이제야 인사를 하네."



'성민'이라는 친구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였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한 녀석이었다. 3학년 우리는 같은 반이었지만, 단 한 번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시끄럽게 노는 부류였고, 성민이는 조용히 공부만 하던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먼저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그 녀석 덕분에 괜스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너는 대학 진학을 안 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굳이 이렇게 먼 지역까지 취업을 지원해서 올 필요가 있었니.?"



성민이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너나 잘해."라며 꿀밤을 한대 먹여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녀석에게 냉담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낯선 곳에서 혼자 적적하게 지내는 것보다 농담이라도 주고받는 말동무가 한 명 생긴 것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들었던 집과 학교를 떠난 지도 벌써 3시간이나 지났다. 한적 한 시골길을 한참을 지나고 보니 어느새 큰 건물들이 밀집한 제법 규모가 커 보이는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가 정차한 후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내리기 시작하였다. 인솔을 맡았던 취업 지도 선생님은 버스에서 맨 먼저 내려 회사의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회사를 둘러보니 큰 건물이 여러 채가 있었으며 규모가 상당히 커 보였다. 단지 이상했던 점은 주변이 온통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회색 바탕의 건물 주변으로는 높은 담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는 사람이 넘어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철조망에 가지런히 앉아 있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니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이곳은 마치 사람들이 있지만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곳과 같았다. 회사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바빠 보였지만 활기가 없었고 얼굴 표정에는 대부분 그늘이 져 있었다.



무언가 활동적이고 밝아 보이는 회사로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삭막하면서 어두운 구석이 있어 보이는 곳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밀려왔지만 설렘을 안고 낯선 곳에 도착한 나와 아이들에게 그것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그저 올 한 해가 빨리 지나가서 여느 성인들처럼 원하는 걸 마음껏 누리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 나도 이제는 어른이야. 내가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보는 거야 주변 눈치 보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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