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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Apr 01. 2024

애틋한 사랑의 시작






나는 뜻밖에도 먼 타지에서 난생처음 첫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애가 시작되려던 시점은 인사이동 이후 B팀에서 일을 시작하고 난 뒤였다. 자재팀에서 일을 하게 되면 부서 특성상 타 부서와 접점이 많았다. 특히 나는 사무실 직원들과 승강기를 통해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피부는 하얗고 머리카락이 검은 긴 생머리의 작고 아담한 여성 직원이었다. 그녀는 주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으나 생산공정이나 자재부 내부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 자주 현장에 들어오곤 했다. 내가 주로 그녀를 만나게 된 곳은 승강기 안이나 미공정 창고에서였다.



"안녕하세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아 네 아직은 실습생이라, 한 두 달 있으면 정규직 사원으로 전환돼요."


"아 그러시구나."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고 싶은 말은 더 있었는데, 미처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투와 억양을 보니 경상도가 고향인 모양이다. 그녀에게 호감이 생기기 시작하자 주변의 오래된 직원들에게 그녀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게 되었다. 나이는 25살 고향은 부산.



나보다 5살이나 많은 누나였다. 나이를 생각해 본다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생기발랄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에 반했던 나는 무조건 대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던 중 우연히 창고에서 재고조사 중이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여기 재고가 다 맞는 거겠죠.?"

"서류상이랑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그게 공정 중 불량인 제품들은 따로 빼놔서 숫자가 빌 거예요. 아마 비어있는 물량은 4층이나 5층 창고에 있을 거예요."


"아 그렇구나, 감사해요."

"사실 저는 여기 일한 지 2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재고 조사 하는 것은 또 처음이라."

"아무튼 감사해요."



마음속으로 퇴근 후 밥 한 끼 먹자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그녀는 훌쩍 사무실로 떠나고 말았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말을 못 꺼내다니. 어린 나이에 이성을 만나본 경험이 없다 보니 연애를 시작함에 있어서도 서툴렀다. 그러나 피 끓는 청춘의 마음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날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에는 꼭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결국 2주 뒤 그녀를 승강기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찌 된 것이 그날따라 그녀가 좀 달리 보였다. 평소 보던 그녀는 머리에 샴푸 냄새만 났었고, 입술은 간혹 건조해져 터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에게 매력적인 향수 냄새가 풍겼다. 더불어 그녀의 입술은 빨간 립스틱을 발랐는지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냈어요.?"


"아.. 네.. 하하."


"저번에는 너무 고마웠어요."

"한참을 헤매었는데 다행히 재고조사도 끝내고." "그쪽 도움으로 한시름 놓았어요."

"참 어떻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오랜 시간 그녀에게 원하던 대답을 기다려온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망설이던 대답을 꺼내게 되었다. 그 장면은 마치 먹이를 숨죽여 기다려온 수사자가 먹잇감을 향해서 순식간에 달려드는 것과 같아 보였다.



"저기, 그러면 오늘 퇴근하고 밥 먹을까요.?"

"제가 사는 동네 근처 대학가에 맛있는 전골 집 있는데요."



말을 꺼내긴 했지만 혹시라도 그녀에게 차일까 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와는 다르게 그녀의 답은 빠르고 명쾌했다.



"좋아요.!" "나도 그 집 아는데 거기 잘 다니시나 봐요.?"


"아 네, 저 거기 매일 다녀요."



아차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다. 사실 대학가 근처에 전골 맛집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어느 식당을 가볼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회사 내 친한 형에게 추천받아 알게 된 식당이었다.



"어머, 잘됐다." "그러면 거기로 가요."


"네 이따가 퇴근 때 뵐게요." "그 출퇴근 버스 타는 근처 입구에 있을게요."


"네 그래요."



오랜 시간 그녀와 고대하던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가슴이 떨리고 설레었다. 평소에는 일하는 것이 싫었는데 그날은 정말 열심히 즐겁게 일한 것 같았다. 퇴근 후 출퇴근 버스 근처 입구에서 그녀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녀와 첫 데이트가 설레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안 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안 오면 어쩌지.?" "올 때가 되었는데 안 오네."



그러던 중 회사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보였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나오는 그녀였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반가움의 표정과 더불어 미안한 인사를 건네었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늦었죠."

"늦게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아 괜찮아요."



그녀와 나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와 함께 택시를 타곤 시골 산골 자락에 위치해 있던 회사를 벗어났다. 한참 택시를 타고 가길 20분 여가 지났을까. 환하게 불빛이 비치는 도심의 중심가에 다다랐다. 대학가 근처라 그런지 젊은 청춘들의 생기 발랄한 모습과 왁자지껄 내뿜는 말소리들이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하필 금요일이라 여기저기 식당과 가게들은 사람들로 끊임없이 붐벼댔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좌측 구석에 남아있던 조그마한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 시간의 식당은 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던 중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으로 회사가 아닌 밖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더욱 예뻐 보였다. 저녁 시간 식당의 천장에서 내려오는 은은한 조명이 그녀의 얼굴과 입술을 더욱 매혹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두 남녀의 달콤한 첫 만남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은 채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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