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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Apr 15. 2024

불시점검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녀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회사 내에서 일명 '썸 타는 사이'가 된 것이다. 평소 같으면 재미없었을 일상도 그녀 덕분에 즐거워졌다. 간혹 일을 하다가 한 번씩 마주칠 때가 있었지만 일부러 남들에게 티 내지 않으려 형식적인 인사만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느덧 나도 회사에 온 지 일 년이 되었다. 얼마 전 나는 정식 사원으로 채용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래 있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연애를 하는 바람에 고향에 내려가는 것은 잠시 나중으로 미루어졌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반장이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자 모두 고생이 많았지.?"

"올 한 해 우리가 고생한 덕분에 회사 영업이익이 늘어난 것은 물론, 해외 시장도 노리게 되었다."

"자 다들 보너스 두둑이 받아놓자고 알겠지.?"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나쁜 소식이다."

"이따가 오후 5시쯤에 푸른 제국 그룹의 이사가 방문한다고 하니 청소들 깨끗이 하고 있어. 알겠지.?"



반장의 이야기에 직원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다들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니 씨팔, 지들이 무슨 상급부대야 뭐야.? 군대에서나 하는 불시점검을 왜 사회에서도 하냔 말이야.?!"


"그러니까요. 미친놈들이죠. 이거 자기들이 갑이라고 생각하고 하청을 상대로 횡포 부리는 거잖아요."



나는 반장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협력업체 사업장을 수시로 방문하는 것인가. 그러나 우리 회사를 푸른 제국그룹이 방문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던 모양이었다.



주로 환경 점검 시 취약 부서인 자재부의 경우 바닥과 책상 그리고 각종 서류철이 꽂아져 있는 책상의 먼지들을 제거해야 했다. 더불어 매번 빠른 작업을 위해서 자재부 사무실 내에 가져다 두었던 장비들을 모조리 정리해야만 했다. 점심식사 이후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던 작업이라 시간이 촉박했다.



그나마 욕쟁이 반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여기 A팀의 자재부를 이끄는 팀장도 성격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일을 하고 있으면 간혹 옆에 와서 욕을 하기도 했고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죽일 듯이 노려보며 때리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였다.



어떤 날은 자신이 여기 회사를 오기 전 어떤 조직의 회장의 차량 운전을 하였다고도 하였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그의 몸 전체를 휘감고 있는 문신을 보며 대략적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푸른 제국 그룹의 이사는 예정된 시간에 회사를 방문하였다. 일개 이사임에도 불구하고 회장은 푸른 제국 이사라는 이유만으로 쩔쩔매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자신의 회사 임원들을 대하는 태도랑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인간이었다. 사실 푸른 제국의 이사가 이렇게 통상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과거 자신들이 하청에 파견했던 20대의 여직원이 백혈병에 걸리게 된 사건이 있었다. 푸른 제국그룹은 해당직원의 산재신청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인과관계가 없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고 해당직원은 이의를 제기하였다.



끝없는 법정다툼과 지역 언론사의 공론화로 인하여 이 사건은 결국 법원이 해당 직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많은 돈과 시간을 빼앗고 그룹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하청을 방문하여 불시점검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불시점검은 별 탈 없이 끝나게 되었다. 사무실 청소를 깨끗이 했지만 푸른 제국그룹의 이사는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별다른 일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공장을 떠난 모양이었다.



평소 같으면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웠을 공장이 조용한 정적만 남기고 있었다. 이렇게 큰 공장도 사람이 없고 기계가 멈추니 활기를 잃어버린 듯 보였다. 왠지 오늘의 쓸쓸한 느낌이 앞으로 일어날 회사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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