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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Apr 22. 2024

복수






현장실습생으로 들어왔던 아이들은 근속 일 년이 채워지면 정규직 사원으로 계속 일할 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가 진학을 준비할지 결정해야 했다. 나는 정규직 사원으로 계속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같이 들어왔던 성민이는 일을 그만두고 대입시험 준비를 한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과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비일비재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민이 송별회 겸 오랜만에 아이들과 술을 한잔 하기 위해 공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맥주집에 가기로 하였다. 이날은 나와 성민이 그리고 철민이와 승찬이가 함께하였다. 성민이는 자재부에서 디스플레이 팀으로 옮기고 나서는 적성에 맞았는데 이를 눈여겨본 반장이나 과장은 성민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성민이가 그만둔다고 하니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아쉬움을 토로했었다. 


 

어찌 되었든, 오늘만큼은 성민이의 마지막을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성민아 참 아쉽게 됐다." 

"참 그동안 어려운 일들을 함께 이겨냈었는데."


"그러니까, 그런데 나는 여기 공장에서 일하는 게 맞지 않는 것 같아."

"이상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이 일어나니까."



"아참 그러고 보니, 우리 디스플레이 팀에서 같이 일하던 수영이 알지.?"


"웅웅 알지."



"아니 걔가 글쎄 반장 놈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네."

"근데 중요한 게 수영이 임신한 상태였나 봐, 그런데 최근에 유산했데."


"정말.?! 그래서 어떻게 됐데.?"


"일단 산재 처리를 받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나 봐."

"일은 그만둘 것 같은데."

"진짜 억울할 것 같은데, 우리 하반기에 진짜 난리였잖아."

"매일 잔업하고, 그 무슨 약이냐.?" "그거 유해물질 다 손에 묻혀가고 코로 마셔가면서 일했잖아."

"관리자들은 일단 쉬쉬하는 분위기인데, 형들이 이야기하는 게 그 유해물질 때문에 유산된 것 같다고."


"그러면 회사에 소송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학교에서는 뭐래.?" "현장실습생이었잖아."


"그니까 학교에서도 난감한가 봐." "나도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모르겠어."

"아무튼 수영이만 안 좋게 된 거지."  "회사에서는 수영이가 유산한 게 유해물질이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법무사랑 노무사 다 동원해서 막으려나 봐." 

"하여간 법 좋아하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법 기술자들.... 아주 법을 지들 입맛에 맛게 이용한다니까. 죽일 놈들이 야."



수영이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린 나이, 그리고 순수한 마음에서 반장을 사랑했을 텐데, 막상 임신을 하자마자 유산을 해버리니 학교와 회사 그리고 반장에게도 토사구팽 되어버렸다. 아마도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기성세대에 대한 증오와 원망의 씨앗이 자라난 게 이때부터인 것 같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과 그에 따른 힘을 나쁜 곳에만 쓸 줄 알고 막상 자신이 피해를 입을 것 같으면 책임질 줄 모르는 기성세대 그러한 어른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일어났다.  



한창 술을 마시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옆 테이블에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와 앉았다. 힐끗 옆을 쳐다보니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바로 기숙사 사감이었다. 맞은편에는 머리가 장발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낯선 남자가 앉아있었다. 나이는 어려 보였다. 



"어이쿠 이게 누구셔.?" "싸가지 4인방 아니여.?"

"잘 지내셨나.?"



평소 사감과 감정이 좋지 않았던 철민이는 사감의 인사에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신경 쓰지 말고 조용히 술이나 드시죠."

"저희는 곧 나갈 겁니다."



철민이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모자를 쓴 남자가 철민이 옆자리에 앉았다.



"네가 철민이구나, 나 사감 동생이야."

"사감형님한테 너 이야기 많이 들었다. 깡이 좋다고 하던데, 술 한잔 따라줘 봐라."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대뜸 테이블에 끼어 술을 따라달라는 것이 어이가 없었는지 철민이는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씨발 우리 나갈 거라고, 술은 니들끼리 처먹으라고."

"얘들아 나가자."



철민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모자 쓴 남자가 철민이의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배를 힘껏 올려쳤다. 



"흐흡.... 으읍, 뭐야... 갑자기.?!"


"이런 싹수없는 새끼가, 어른이 말하는데, 술 따르라면 따라야지 엉.?"



모자 쓴 남자의 손은 빨랐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는 모든 어안이 벙벙했다. 모자 쓴 남자는 갑자기 땀이 났는지 겉옷을 벗어던졌다. 남자의 팔은 근육질에 문신이 가득했다. 



"네가 승찬이지.?" 



승찬이는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니 어이가 없었다.



"저를 아세요.?"


"내가 너 고등학교 3년 위 선배야 새끼야."

"나도 과거에 너네 공장에서 일했었다."

"지금은 뭐 다른 일을 하고 있다만 너 이 자식이랑 친구냐.?"


"네 그런데요."


"이런 쥐만 한  놈이랑 친구냐.?" "쪽팔리게."

"학교 쪽팔리게 하지 말고 처신 잘하고 다녀라. 알았냐.?" "니 윗 선배들 다 아니까."  



승찬이는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남자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철민이는 갑자가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도 용무가 끝났는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사감과 신나게 술잔을 기울였다. 철민이는 나간 지 5분 정도가 지났을 때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철민이의 안색을 살폈다. 



"철민아 괜찮아.?"



철민이는 우리의 걱정과 다르게 담담한 표정이었다. 



"웅웅 괜찮아." "안 그래도 내가 맞았다고 하니까 친한 형이 오기로 했어."


"잉??, 누군데?"


"아 너도 알 거야. 수빈이 형."



수빈이 형은 내가 맨 처음 생산공정 장비를 익힐 때 사수였던 형이었다. 그때 당시 억울하고 서글펐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따뜻한 커피를 건네주던 형이었다. 철민이는 수빈이 형과도 친분이 있었다. 철민이 이야기를 들은 수빈이 형은 한 걸음에 맥주집에 들어왔다. 



철민이는 수빈이 형이 오자 어린이 마냥 뛰어가 가게 앞에서부터 나와 인사를 하였다. 수빈이 형과 철민이는 10분 여가 지나자 같이 맥줏집 안으로 들어왔다.



수빈이 형을 보고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 그래 반갑다. 오 너 잘 지내.?" "자재팀에서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 들었다."

"성민이는 이번 달까지 하고 고향 내려간다며.?" "아쉽네."



우리와 웃으며 인사를 하던 수빈이 형은 갑자기 표정이 싹 바뀌더니, 모자를 눌러쓴 남자에게 다가갔다.



"네가 철민이 때렸다며.?"

"나 사감 친구인데, 잠깐 나 좀 보자."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사감은 기분이 나빴는지 수빈이 형에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였다.



"너 이게 무슨 무례냐.?" "쟤는 내 하나뿐인 동생이고 한창 즐겁게 술 마시고 있었는데."

"그냥 좀 빠져주라."



수빈이 형은 사감의 말에 개의치 않고 모자를 눌러쓴 남자와 함께 맥줏집 밖으로 나갔다. 사감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박차고 함께 따라나섰다. 무언가 성민이 송별회로 모인 자리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밖의 상황이 궁금했지만 사감과 수빈이 형 그리고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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