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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May 06. 2024

네온사인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잡고 우리는 버스역이 중심이 된 시내에 도착하였다. 승찬이는 얼마 전에 좋은 곳을 다녀왔다면서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노래방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허름해 보이면서 음침해 보이는 장소였다. 곳곳에 담배 냄새 그리고 술 냄새와 특유의 화장품 냄새가 가득했다.



사장으로 보이는 아줌마는 우리를 보고 미성년자라고 느꼈는지 기분 나쁜 눈빛을 계속 보냈다. 하지만 승찬이는 능숙하게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국 아줌마는 마지못해 우리를 '3번 방'으로 안내하였다.



"우리 귀염둥이 조카들 조용히 놀다가 알겠지.?"


"네."


아줌마는 음흉한 눈인사를 지어 보이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야 여기 뭐 하는 곳이냐.?"     

"여기서 노래도 부르고, 술도 먹는 거야.?"

               

아이들과 나는 승찬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철민이는 조용했다. 여기가 어딘 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승찬이는 다시 한번 능숙하게 이야기했다.               



"들어오세요."



갑자기 여자 네 명이 차례로 들어왔다. 순서대로 인사를 하며 룸 안 소파에 앉아있던 우리를 응시했다. 승찬이는 손짓으로 같이 앉으라고 하였다. 친구들 옆에 한 명씩 붙어서 앉았다. 내 옆에도 진한 화장끼가 가득한 여자가 앉았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어른들은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시며 노는 건가?               



"여기 처음이에요.?"


     

여자는 평소에 알던 사람처럼 편안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무언가 편하지 않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성민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승찬이와 철민이는 웃고 있었다.


               

"얘들아 여기 처음이지.?"     

"여기 예쁜 여자들 많으니까, 애인 한 명씩 만들고 가자."               



옆에 철민이는 같이 앉아있던 여자와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무언가 잘못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살면서 남한테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 집 그리고 나를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은 달랐다. 모든 것이 서툴렀고 어린아이 같았다. 반면에 어른스러워 보이는 승찬이와 철민이가 부러웠다.



성민이는 분위기에 금방 적응한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함에 마른안주만 먹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여자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나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당시에는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여자에게 무언가 모르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가족사항, 나이, 고향 자세한 것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샌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여자의 나이와 이름이 궁금했다.



"저기 나이가 어떻게 돼요.?"     

"이름이 뭐예요.?"               



여자는 지금까지 이렇게 진지한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승찬이와 웃으면서 이야기하였다. 기분은 나빴지만 술과 분위기에 취해 마냥 좋기만 하였다.

               

"제 이름은 마리에요."     

"나이는 그쪽보다 한 살 많은 21살이에요."

               

술해 취해있었지만 얼굴을 봤을 때 20대라고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그녀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고 싶다며 정중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흔쾌히 나에게 번호를 찍어주었다.



"자기야 내 번호니까, 술 먹고 싶을 때마다 연락해."     

"같이 술 먹자, 알았지.?"



옆에 있던 승찬이는 같이 앉아있던 여자와 키스를 주고받고 있었다. 분위기와 술에 취해서인지 다른 친구들도 여자들과 가볍고 찐한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만 있던 나에게 승찬이는 옆에 누나 외롭다면서 키스도 하고 손도 잡으라면서 부추겼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그녀가 내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하였다.    



"뽀뽀만 하자, 자기야 알았지.?"     

"자기 너무 순진한 것 같다, 평소에 착하다는 소리 많이 듣죠.?"


   

철민이는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면서 노래를 한다고 일어났다. 노래에 맞춰서 열심히 랩을 하는 철민이를 보고 룸 안에 있던 여자들이 멋있다면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나는 분위기에 점점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녀와 가벼운 스킨십 그리고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노래가 끝나자, 갑자기 여자들이 자리를 털며 밖으로 나갔다.


        

"아 돈이 없으니, 시간을 연장할 수도 없네, 아쉽지만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술값을 계산하던 승찬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수중에 있는 돈으로 계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제야 친구들은 꿈에서 깨어난 모습이었다. 아,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인 것일까? 부족한 돈을 어떻게 충당할지 모두 고심하였다. 없는 돈을 만들어 낼 수도 없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내 월급을 다 털어서 술 값을 계산하였다. 어차피 통장에 넉넉하게 돈이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내 주머니 사정까지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똑같은 실습생 신분으로 만난 친구들이니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술값의 많은 부분을 계산한 나에게 아이들은 부족한 생활비를 조금씩 충당해 주기로 하였다.


               

부족한 술을 채우기 위해서 아이들과 같이 기숙사로 향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기숙사로 들어왔지만 그녀와의 대화 그리고 향기, 입맞춤 모든 것이 잊히질 않았다. 늦은 밤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승찬이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바보야 걔가 너랑 진짜로 사귀려고 번호를 줬겠냐.?"     

"너한테 없는 번호를 줬겠지,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가 너랑 사귀자고 했겠냐.?"     

"순진한 녀석 , 하하하."               



그날의 추억은 꿈처럼 금방 스쳐 지나갔다. 답장이 오지 않던 그녀에게 원망스러운 감정을 느끼거나 근황에 대해서 궁금하지는 않았다. 설렘의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바람처럼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 느껴지던 죄책감 때문인지 그곳을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곳의 네온사인은 불을 밝히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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