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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May 13. 2024

죽음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일까.? 내가 임종에 가까워졌을 때 혹은 죽음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나에게 하나뿐인 가족이나 친구가 죽는다면... 죽은 이의 모습을 보고 난 후 몰려올 큰 충격과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의 인생을 변화시킨 큰 사건 그리고 매 순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큰 사건이 있었다.



요란스러웠던 성민이의 송별회를 치르고 난 후 다음 날 점심시간 식당에서 성민이를 만날 수 있었다.  



"어제 잘 들어갔어.?"


"웅웅, 어제 너희들 덕분에 송별회를 재밌게 했어."

"고마워."


"짐이랑은 다 싼 거야.?"


"웅 짐도 다 싸고, 기숙사 사람들이랑도 작별인사 중이야."

"부서 사람들한테도 인사도 하고 짐도 집으로 보내야 하고 청소도 해야 되고 할 일이 많네."


"이제 여기서 일하게 될 날도 4일밖에 남지 않았구나, 집에 가면 뭐 할 거야.?"


"아 지금까지 모아 둔 돈으로 공부하려고 당장 학교를 가기는 힘들고 공무원 시험 준비해야지."

"너도 잘 알잖아. 우리 엄마... 나랑 동생 둘 홀로 키우시느라 많이 힘드셨어."

"이제라도 얼른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어서 어머니 고생 좀 덜어드리려고."


"그렇구나."

"나는 당분간 집에 갈 생각이 없어서."

"아무튼 너 진짜 잘됐으면 좋겠어. 고향에 가서도 자주 연락해."



그렇게 나는 성민이와 헤어지고 다시금 반복되는 오후 일상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유달리 물량이 많이 들어왔는데 이상하리 만큼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조만간 들어올 성과급 때문인지 동기부여가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자재부 직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물량도 많았을뿐더러 보통은 팔레트에 500-1000장의 LCD 판이 실리기 때문에 여러 번 옮기는 것도 버거웠다. 항상 웃으면서 일하던 성민이도 오늘만큼은 다소 지쳐 보였다. 그런 성민이를 바라보던 자재부 팀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야 성민아 너 곧 그만둔다고 일부러 물량을 많이 빼는 거 아니냐.?"


"그럴 리가요. 하하.."


"아니 이놈의 회사는 꼭 퇴사하는 사람들 일주일 전부터 괴롭힌다니까."

"어휴 나도 빨리 그만두고 싶은데, 집에 딸린 식구가 있어서 힘들다."


"하하.. 그러니까요."



그러던 중 나에게는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 한참을 잘 찍어내고 있던 기계가 멈춘 것이다. 기계가 멈추게 된 원인은 페인트 도장이 찢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씨 뭐야 이게... 한참 잘 찍고 있었는데."

"연구실에 좀 다녀와야겠는데."



나는 라인을 돌고 있던 김주임에게 연구실에 다녀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자재부 쪽으로 향했다. 많이 올라오는 물량 탓에 안 그래도 성민이가 걱정이 되어 자재부를 들려 볼 생각이었다.



방진복을 입은 채 자재부에 들어오니 팀장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직원들에게도 가족과 같은 정을 만들게 해 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던 팀장도 이제는 살가운 삼촌과 같았다.



"어쭈, 야 인마 누가 방진복 입고 자재부에 들어오래.?" "엉.?"


"아 하하 오늘은 좀 봐주세요. 성민이도 회사에 있을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자주 얼굴 좀 보려고요."

"한 번만 봐주세요."


"자식이 알았다."

"페인트 도장이 찢어진 거야.?"

"얼른 가야겠네."

"성민이랑 같이 갈 거냐.?"


"아니요, 성민이 얼굴만 보고 연구실에 잠깐 다녀오려고요."

"들어올 때는 앞으로 해서 들어올게요."


"그건 당연한 거고 짜슥아."

"얼른 일 보고 후딱 나가라잉."


"네."



성민이는 일부러 자신의 얼굴을 보려고 찾아온 친구의 모습을 보고 놀라면서도 반가운 표정을 드러내보였다.



"너 일부러 나 보려고 여기로 온 거야.?"

"생산라인 바쁠 텐데."

"다른 팀 도와줘, 연구실에는 내가 다녀올게."

"팀장님 제가 다녀올게요."


"어쭈, 그래 너 며칠 안 남았으니까. 봐주는 거야."



성민이가 괜히 나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만 같았다. 연구실에 가는 것을 만류하려고 했으나, 성민이는 본인이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야 성민아 그냥 내가 다녀올게."

"나 진짜 너 얼굴 보러 온 거야."

"너 기계 하나 멈춰 있는 동안 좀 쉬어."


"아니야, 다른 팀 도와줘."

"내가 다녀올게."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자 팀장이 짜증 섞인 말투로 화를 내었다.


"아이 씨팔 기계 언제까지 멈추게 할래.?"

"아무나 좀 다녀와라."

"야.! 성민아 네가 얼른 다녀와."

"야 인마 너 얼른 라인 들어가.!"


"네....ㅠ."


더 실랑이를 벌였다간 팀장의 고약한 성질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연구실에 가는 성민이를 위해 승강기 버튼을 눌러주었다.


"하.. 이 망할 놈의 승강기도 마지막이네."


"그러게, 야 근데 오늘 물량도 많았는데 승강기가 잘 버틴다."


"그러니까, 참 이 승강기도 신기하다니까."

"어쩔 때는 멈추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해서 불안했는데... 오늘은 또 괜찮네."


"하하 아무튼 조심히 다녀와."

"나는 다른 팀 좀 도와주고 있을게."

"도장 수리되면 불러줘."


"웅웅."



승강기 문이 열리고 성민이는 나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승강기 안으로 성민이가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문이 닫히기도 전에 승강기 내부의 카가 큰 굉음을 내뿜으며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 승강기 앞에 서있던 나의 얼굴과 몸에 선홍빛의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나는 자리에 선채로 얼어붙어버렸다. 10초쯤 지났을 때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야... 인마. 정신 차려.!!!"

"야 인마 너 죽으려고 환장했어.?!"

"너 어디 다친데 없지.?"


"네, 팀장님.... 그런데요. 성민이가... 성민이가..."

"크게 다친 것 같아요."



팀장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뿌연 먼지 속에서 성민이로 보이는 형체를 붙잡고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성민이의 상반신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추락하던 승강기 카에 성민이의 상반신이 잘려나간 것이다. 성민이의 작업복과 그 주변 바닥과 벽에는 온통 붉은 피로 뒤 덮여 있었다. 



왼편 한구석에는 성민이의 이름이 새겨진 사원 증이 반쯤 찌그러진 상태로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성민이의 남은 몸을 붙잡은 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자재부 사무실 승강기에 사고가 일어난 것을 알고 디스플레이팀 차장과 과장, 반장 그리고 생산라인 내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총 동원해서 현장 수습을 도왔다. 사무실 내부와 승강이 주변에는 온통 피와 떨어져 나간 살점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뒤늦게 구급대가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경찰과 현장 감식반은 조금 늦는 것으로 보였다.



그동안 가족처럼 함께 동거동락하던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현장을 수습하던 직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차장과 반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상부에 어떻게 보고할지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야 이거 어떡하냐.?!"

"큰일 났다."

"성민이 아직 정식 사원 아니잖아."

"하필 집에 가기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네."

"현장 실습생이 죽었다고 하면 꽤나 골치 아파지는데."


"일단 상부에 보고부터 하시죠."

"이후 일은 상부에서 지시를 내리겠죠."


"월 어떻게 보고할 건데.?!"

"승강기 문제로 죽었다고 보고할래.?"

"너 제수씨 곧 출산하지.?"

"돈 들어갈 일도 많을 텐데."

"너 조만간 차장자리 올라가야지.?"

"정신 바짝 차려라."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되는 거야."

"까딱 잘못했다가는 너나 나나 다 길바닥 신세 되는 거 한순간이다."



결국 차장과 과장은 작업 중 일어난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라고 상부에 보고 하였다. 차장과 과장 그 둘은 승강기가 잦은 고장이 있었다는 것을 경찰과 소방대에게는 절대적으로 숨겼다. 그리고 상부에 보고할 때도 승강기 문제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였다. 회장을 포함한 이사들도 현장실습생의 죽음과 관련하여 승강기의 잦은 고장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지 않게끔 직원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그렇게 성민이는 집에 가기 4일 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모든 직원들이 슬픔에 잠겼지만 누구 하나 죽음과 관련된 진실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회장 및 이사들 그리고 차장과 과장 등... 회사 내에 지위가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권한을 부릴 줄만 알았지 정작 책임져야 할 일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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