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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May 27. 2024

현기증






성민이의 죽음은 나를 포함한 공장 내 모든 직원에게 큰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성민이의 죽음 이후 평범한 일상은 계속되었다. 이런 것을 보면 정말 사람이란 무서운 존재이다. 주변 동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민이와 가장 가까이 지내던 나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아직까지도 나는 성민이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성민이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올 것만 같았다.



그러한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점심시간 타 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번에 사고로 죽은 직원 있잖아."

"아니 산재 처리도 안됬다며."


"세상에나 진짜로.?"

"거기 정규직 사원도 아니라면서."

"현장실습생인데, 학교에서는 무슨 말 없데.?"


"일이 커지면 꽤 골치 아파지려나 봐."

"회장 성격 알잖아."

"이사들이 얼마나 안절부절못했겠어."

"이번에 현장실습생 보냈던 학교 담당선생 있잖아."


"어, 알지 대머리 근데 왜.?"


"회사에서도 자리 하나 알아봐 주려나 봐."


"아니 학교 선생이 반도체 회사에 무슨 할 일이 있다고."


"자기네 학생들 계속 회사에 넣어주는 조건으로 돈도 받고 접대도 받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학교에서 잘리게 되니까, 회사에 이번 일 매스컴에 태우겠다고 압력 좀 넣었나 보지."


"그래서, 그것 때문에.?"


"사건 커지면 회사 망하는 거 한순간이잖아."

"우리가 납품하는 대기업에 협력업체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기업이 한 둘도 아니고."


"아쉬운 놈들이 먼저 조심하는 거지."


"나 참 그 현장실습생만 불쌍하게 됐네."


"그래도 위로금 명목으로 5천만 원 정도 어머니에게 바로 현금 지급 했다는데."

"뭐 그 정도 선으로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우리 같이 나이도 많은 일개 직원들 길바닥으로 쫓겨나면 어디 갈 데나 있는가.?"

"회사가 망하면 우리도 끝이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 목숨값이 5천만 원 밖에 안된데."

"회사 노조는 뭐 하고 있는 건지,  참"


"노조는 이미 회사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지 오래됐지."

"노조 지부장이 다음에 연임되는 조건으로 회사 간부랑 거래 좀 한 것 같던데."


"노조나 회사나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쉿, 누가 들으면 안 되니까 항상 말 조심 하자고."


"알았어."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성민이의 죽음 이후 회사의 태도가 석연치 않다고 여겨졌다. 산채 처리가 되지 않은 건 물론이거니와 경찰 측에서도 해당 현장실습생의 안전 수칙 위반으로 사건을 일단락 짓는 것처럼 보였다.  



사고 당시 현장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된 상태에서 경찰과 감식반이 들어왔고 승강기 사고가 난 지점도 안타깝게 CCTV의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었다. 따라서 경찰이 와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그저 사건이 조용히 처리되고 해당 학생의 부모님과 회사가 어느 정도 적당한 합의점을 찾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성민이의 죽음은 분명히 석연치 않은 죽음이다. 사고 며칠 뒤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담당경찰은 이미 끝난 사건이라서 더 이상 조사하는 것이 어렵다는 답변만 내놨다. 오히려 나를 겁박하며 내쫓으려고 하였다.


 

"네가 친구라서 좀 억울한 마음에 따지려는 거 이해는 되는데."

"이건 엄연히 회사랑 어머니가 합의했고, 사건도 안전수칙 위반에 따른 사고로 일단락된 거야."

"더 이상 경찰서 찾아와서 막 따지고 그러면 업무방해로 확 넣어버린다."



화가 났지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성민이의 죽음에 대해서 석연치 않은 점에 대해 따져 묻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정당하게 따져 물으려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것인가.



어느샌가 나의 마음속에는 어른들을 향한 분노와 환멸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강한 자만 살아남고 약한 자들은 죽어나는 약육강식과 같은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퇴근하는 동안에도 무거운 마음에 한숨만 계속 나왔다. 그래도 피곤한 몸 때문인지 퇴근차량 안에서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핸드폰에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그녀의 메시지였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아.?"

"시간 괜찮으면 술 한잔 하자."



우울한 일상을 보내던 중 그녀에게 온 메시지가 제법 반갑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그녀를 보고 싶었는데.



퇴근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나는 차량에서 내렸다. 성민이한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요 며칠 동안 나를 짓눌러오던 무겁고 우울한 마음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그녀가 약속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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