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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Apr 08. 2024

취중진담






그녀와 전골집에서 1차를 한 후 근처 이자카야 술집에서 2차를 하기로 하였다. 이자카야 술집은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어두운 곳에서 은은하게 주황색 조명만이 가게내부와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설레고 재미있었다. 학생일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분위기였다. 



어느샌가 그녀가 나를 리드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의 순진했던 나는 그녀가 한없이 이쁘게만 보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이따금씩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그녀와 나도 조금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취향과 고향 그리고 이런저런 화제들을 주고받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녀가 듣기에 공감이 안될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방긋 웃어주며 대꾸를 해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처음으로 밖에서 단 둘이 술을 마시게 되었지만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녀와 하고 있었다. 



"정말이야.?" "완전 왕자님이네."

"그러면 집에 돈도 많아.?" 



"웅. 뭐 남들보다는 그래." "그런데 그냥 집에 있기가 싫어서 여기로 온 거야."

"그냥 어디 해외로 여행 다녀온다고 하고 나왔지."



"그렇구나. 다시 집에 가고 싶지 않아.?"

"내가 너라면 이런 곳에서 일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느샌가 그녀와 나는 술에 많이 취해있었다. 서로 친구인 것 마냥 편하게 말을 놓고 있었다. 점점 얼굴은 붉어지고 심장 박동수는 빨라졌다.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발에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의 발이었다. 



마치 나를 원한다는 듯한 눈웃음과 빨간 입술 그리고 그녀의 발이 나의 발등과 발목 그리고 종아리를 훑고 있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직 20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던 솜털이 아직도 뽀송했던 남자의 아랫도리는 단단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지.?"



나의 가슴속에는 좋은 감정과 설렘이 가득했지만 연애와 사회생활 경험이 나보다 훨씬 풍부했던 그녀의 발칙한 고백이 오히려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갑자기 눈치도 없이 헛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콜록콜록 애해엠.!"



"괜찮아.?" "물 한잔 줄게."

"오구오구 완전 아기네." 



"아 고마워 술을 마신 게 얼마 되지 않아서."

"한 번씩 사래가 걸리더라고."



"그래, 그럴 수 있지."

"이 누나가 잘 보살펴줄게 알았지.?" "히히."



"잉.? 뭔 소리야.?"

"크응,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이제 우리 일어나요." "너무 늦었는데 바래다 줄게요."



"에이 벌써 들어가려고.?"

"아쉽다."



그녀와 더 술을 먹었다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까 봐 두려웠다. 그전에 얼른 술자리를 끝내야 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그녀와 술집을 나왔다. 그녀를 택시에 태웠다. 그녀의 집은 근방에 있었다. 한 참을 걸은 후 허름한 원룸에 다다랐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그런데, 우리 집에 들어올 수는 없어."

"왜냐하면 나 말고도 언니 한 명이 나랑 같이 살고 있거든."



"아 그래요.?" "그러면 우리 다음에 또 봐요."

"저는 여기서 택시 타고 집에 갈게요."



"야 아까는 말 편하게 놓더니 왜 다시 존대하고 그래.?"

"너 일부러 나 불편하라고 그러는 거지.?" "나도 너 불편하게 한다.?"



"아 하하, 알겠어요. 알겠어."

"말 편하게 할게." "얼른 들어가요."



"조심히 들어가."



그녀는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그녀의 집을 뒤로하고 택시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허전했다. 그러면서도 다시없을 기회를 놓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순진했던 남자는 자신이 오늘 그녀에게 보여준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어리고 순진했던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주고 아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만남에 그녀와 잠자리를 갖는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술에 힘을 빌려서 그녀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하지 못해서 후회스러웠다. 



반대로 그녀의 연락처가 있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과거 고등학교 때 고백하는 족족 차이기 바빴던 연애경험 때문인지 다소 그녀에게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 같았다. 어찌 되었건 나는 먼 타지에서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보다 훨씬 아름답고 이쁜 그녀와 밥도 먹고 술도 먹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고백을 못하다니 연애에 관해서는 참으로 젬병이었다. 



다음에는 술의 힘을 빌려서든 아니면 맨 정신이든 아름다운 그녀에게 꼭 고백해야겠다.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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