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저녁시간.
시내의 한 가게에서 그녀와 나는 각자의 일상을 넘어서는 특별한 하루를 맞이했다. 하얀 흰 눈이 내리는 거리를 걷던 중 그녀와 나는 빨간색 간판이 걸린 작은 서점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책 한 권을 골라 손에 들었다. 그 책은 '미묘한 바람'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읽던 그녀는, 이 책이 자신의 생일 선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바람이라... 제목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니 원하는 것을 사주기로 하였다. 그녀는 룸메이트 언니라는 사람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책 한 권에도 소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서점을 나선 후 그녀와 함께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느껴졌다. 나에게 그녀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웃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빵집을 들러서 생일을 기념할만한 케이크를 샀다. 그녀는 아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행복해했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룸메이트 언니와 함께 조촐한 생일 파티를 하였다.
"가스나야 생일 축하 한다. 그래도 니 생일날이 크리스마스 이브라 더 분위기 있다."
"언니 그러면 뭐 해 나이만 더 먹는데."
"아이고, 그러면 나는 뭐꼬.?"
"내 나이 사십 먹어 놓고 이혼녀에 공장에서 일하지."
"모아둔 돈은 없지."
"아이코 언니야 그런 말 하지 마."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술에 한껏 취한 나머지 그녀와 침대에 누워 뜨겁게 안기 시작했다.
"자기야 언니도 있는데, 우리 조금 있다가 하자."
"언니.?"
"아까 잠깐 일 본다고 나가셔서 안 들오신 지 꽤 됐는데."
"그래.?"
그녀와 나는 서로의 몸을 뜨겁게 어루만지고 격렬하게 안았다. 그녀와 뜨겁게 안은 후 정적만 남겨진 방 안에서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누워 있었다. 그러던 중 침대 머리맡에 이어폰이 끼워져 있는 MP3를 발견하게 되었다.
"누나 노래 취향이 무엇인지 좀 알아볼까.?"
그녀의 MP3를 집어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노래를 돌려보니 활달하고 외향적인 그녀의 성격과 닮은 신나는 노래가 많이 들어있었다. 그러던 중 녹음된 파일을 듣게 되었다. 녹음된 파일에는 낯선 남자의 음성과 그녀의 음성이 섞여 있었다. 더불어 낯선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듯한 누나의 목소리와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이 녹음 파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위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 허탈함과 더불어 배신감이라는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첫사랑이었던 미현이에게도 배신이라는 쓰디쓴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다시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을 당하고 버림받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그녀와 나는 사랑을 나눈 후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점점 그녀와의 거리가 생겨났다.
그녀가 잠에서 깨지 않게 조용히 옷을 주워 입었다. 코트 주머니에는 그녀에게 주려던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집을 나왔다. 밤하늘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은 배신감이라는 감정과 분노가 휘감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에 작은 빛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나의 얼굴은 피곤과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손에 쥔 작은 상자가 자꾸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상자 안의 목걸이를 꺼내며 그것을 손가락 사이로 느꼈다. 그녀를 위해 준비한 이 선물은 그녀와의 관계를 의미하는 사랑의 징표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가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랑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이 오해일 거라고, 그녀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그녀의 집을 나선 후 그녀와의 연락을 끊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떠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내가 떠난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미안해.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너무 외로웠어. 그 사람은 그냥 일시적인 위로였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제 후회하고 있어.”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사랑은 그녀의 실수보다 더 컸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을 더 이상 가지는 것은 어려웠다. 나는 그녀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진심 어리고 따뜻한 말들로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 함께한 시간들은 나에게 큰 행복이었어.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소중히 기억할 거야. 하지만, 나는 네가 더 행복해지길 바라. 네가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을 찾길 바라. 너를 사랑하지만.... 나를 통해서는 네가 더 이상 행복해지기 어려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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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항상 행복하기를 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