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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2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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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Oct 08. 2024

가문의 수치






아버지는 내가 사는 지자체의 부단체장으로, 고위직 공무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셨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아들의 소식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뜬금없이 기사로 접하게 되었다. 



'20대 청년, 중견기업 상대로 민사소송 준비'라는 제목의 기사였고, 그 20대는 바로 나였다.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지인들이 연락을 쏟아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이 참 똑 부러진 모양이군요, " 라며 겉으로는 칭찬을 하는 듯한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한층 더 날카로웠다. "아버지 앞길을 막으려 하는 겁 없는 철부지, " "그 회사, 나라 국책사업 맡은 곳 아닌가? 생각은 있는 거냐?"라는 비난도 이어졌다. 중견기업과의 소송이 아버지의 경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만이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아버지는 얼굴이 굳었다. 그동안 자신을 믿고 따라왔던 직장 동료들마저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 역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셨다. 아들의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여행을 핑계로 집을 떠나 여태껏 소식이 없던 아들의 행방을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배신감은 부모님의 가슴을 짓눌렀다.



형에게도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의사시험에 합격하고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형은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철부지 동생 때문에 고생 많겠네, " "생각 없는 인턴 나부랭이가 동생도 못 챙긴다"는 라는 말들이 병원 안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형도 부모님의 바람대로 착실하게 의사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나는 두 개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부모님도 모르는 새로운 번호였다. 그런데도 결국 그들은 내 새로운 번호까지 알아냈고,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두렵고 긴장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결심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걸 직감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소송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했다. 성민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 스스로의 신념을 위해서.



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야만 내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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