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가 사는 지자체의 부단체장으로, 고위직 공무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셨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아들의 소식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뜬금없이 기사로 접하게 되었다.
'20대 청년, 중견기업 상대로 민사소송 준비'라는 제목의 기사였고, 그 20대는 바로 나였다.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지인들이 연락을 쏟아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이 참 똑 부러진 모양이군요, " 라며 겉으로는 칭찬을 하는 듯한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한층 더 날카로웠다. "아버지 앞길을 막으려 하는 겁 없는 철부지, " "그 회사, 나라 국책사업 맡은 곳 아닌가? 생각은 있는 거냐?"라는 비난도 이어졌다. 중견기업과의 소송이 아버지의 경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만이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아버지는 얼굴이 굳었다. 그동안 자신을 믿고 따라왔던 직장 동료들마저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 역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셨다. 아들의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여행을 핑계로 집을 떠나 여태껏 소식이 없던 아들의 행방을 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배신감은 부모님의 가슴을 짓눌렀다.
형에게도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의사시험에 합격하고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형은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철부지 동생 때문에 고생 많겠네, " "생각 없는 인턴 나부랭이가 동생도 못 챙긴다"는 라는 말들이 병원 안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형도 부모님의 바람대로 착실하게 의사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나는 두 개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부모님도 모르는 새로운 번호였다. 그런데도 결국 그들은 내 새로운 번호까지 알아냈고,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두렵고 긴장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결심을 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걸 직감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소송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했다. 성민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 스스로의 신념을 위해서.
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야만 내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