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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2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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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Oct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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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지역 축제가 열렸다. 이곳은 지역민들에게는 즐거운 볼거리이자 상인들에게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축제의 또 다른 면도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에는 시장과 시의원들, 구의원들, 지역 국회의원들, 정무직 공무원들, 그리고 대기업 및 중견기업 회장들과 이사들, 지역 유지들이 한데 모여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회장 또한 참석해 있었다.



회장은 최근 터진 기사를 접한 후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20대 청년이 자신의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어린 직원 하나가 벌인 일이라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그 청년이 있는 곳에 찾아가 멱살을 잡아끌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또한 알았다. 회사 경영이 방만해지며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를 상황, 노조의 끊임없는 압박, 분노하는 직원들… 이런 상황에서 마음대로 움직였다가는 더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회장의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었다. 인맥. 그의 인맥은 이미 탄탄히 다져져 있었고, 지금 이 순간 그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때였다. 축제는 그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였다.



축제의 한편에서는 벌써 술자리가 한창이었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장, 그리고 A대기업 회장 등이 모여 있었다. 그들 사이에 회장도 자리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였지만, 회장의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



A대기업 회장이 그를 보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 회장. 요즘 머리 좀 아프겠구먼. 허허."


회장은 쓰게 웃었다.

"회사에 어린 친구가 그런 일을 벌이고 있다니, 참 못 말리는 철부지로구먼. 요즘 젊은것들은 지들 스스로 큰 줄 알아요. 고마움도 모르고 말이지."


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네, 그렇습니다. 요즘 그 친구가 말썽이 있어서요."



이때 지역구 국회의원과 시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이고야, 회장님. 요즘 힘드시다면서요? 어린 친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시장이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회장님, 제가 시정을 맡고 있는 한 별일 없을 겁니다. 박의원님이랑 잘 이야기해서 처리될 수 있도록 하지요. 안 그래도 이번에 소장 담당 판사님이 제 후배라 언제 한 번 자리 마련해 보겠습니다."


회장은 눈빛이 번뜩였다. 이건 분명 좋은 기회였다. 판사와의 인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암시였다.



"그리고…" 시장이 술잔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번에 시장직을 그만두게 되면,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고 하는데, 회장님이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회장은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죠. 이번에도 제가 한 번 힘을 써보겠습니다."



그때, 술자리가 무르익자 박의원이 술잔을 들고 일어섰다.


"자, 올해도 우리 여러모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해도 못해도 항상 욕먹는 거 한두 번 아니지만, 그래도 서운하고 힘든 건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개돼지들 살살 달래면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더욱 견고히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로 건배합시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회장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 큰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슬기롭게 헤쳐 나갈 우리의 회장을 위해서 건배합시다!"

그는 힘차게 외쳤다.

"우리는 하나다.!"
"건배!"



술잔이 부딪히며 축제는 열기를 더해갔다. 회장은 묵묵히 술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강력한 인맥과 그들의 지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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