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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2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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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Oct 21. 2024

재판 2






법정 안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판사는 냉정한 표정으로 양측의 변호인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고 앞으로 나오세요."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은 이야기를 안 할 수도 있고, 진술권을 포기하며 행한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피고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000입니다."


"주민등록번호 000000-000000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현재 사는 곳이 서울 강남구 000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피고는 현재 회사에서 어떤 직위를 가지고 있습니까.?"


"00 전자의 최고 경영자입니다."


"들어가십시오." 


"원고 측 변호사 공소에 대한 의견이 어떻습니까.?"



판사의 질의에 노동철 변호사는 입을 뗐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피고 측이 제시한 자료들은 겉으로 보기에 회사가 죽은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자료들이 모두 가짜라는 사실입니다. 사고 당시 피해자는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무방비로 사고를 당했습니다. 문제가 있던 승강기를 이용하며 근무하던 직원들은 사고 전부터 꾸준히 회사 측에 승강기 문제를 지적했다고 합니다. 안전관리 측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시정조치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정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에도 승강기가 멈추거나 흔들리는 등의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많은 물량을 빼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보름이라는 기간 동안 야간근무를 지속적으로 시킨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그리고 성민 군은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는 분명한 산업재해로 인한 중대한 과실입니다."



이후 피고 측의 변론이 이어졌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사건은 비극적인 사고이며 회사 측에서는 피해자 유족 측에 합당한 보상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업무환경에서의 회사 측의 과실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강조드리고자 합니다. 평소 피해자는 회사의 안전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음을 보여 줄 증거가 있으며, 증거자료로 제출하겠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은 안전교육 기록과 피해자의 작업 일지를 증거로 제시했다.



"또한, 회사 측은 정기적으로 안전 점검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해당 감독 기관이나 고용부 측에서도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회사가 추가적인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양측의 증인들이 차례로 호출되었다. 먼저 원고 측의 증인으로 사고당시 현장에 있던 동료가 나섰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날 우리는 모두 과중한 업무를 받고 있었어요. 그날 끔찍한 사고는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노동조합도 그렇고 평소 많은 직원들이 회사 측에 승강기 문제를 알렸지만, 관리자와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들은 항상 무시했습니다. 저도 그 이메일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불안하다고 얘기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끔찍한 사고를 본 트라우마 때문인지 증인으로 나섰던 동료는 손을 떨며 제대로 걷지 못했다. 결국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피고 측 증인으로 회사의 안전 관리자가 증언대에 올랐다.



"평소 회사는 정기적으로 안전 점검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모든 근로자에게 안전 교육을 시행하였습니다. 사고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며, 사고 당시 피해자는 자신의 업무가 아님에도 굳이 타 부서의 업무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고가 난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피해자의 과실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피고 측 증인의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노동철 변호사는 증언을 반박했다.



"안전 교육이 정기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고 당시 피해자가 제대로 된 안전 장비를 갖추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평소 노동조합 측에서 제시한 문제가 된 승강기... 그 승강기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메일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은 왜 무시되었습니까.?"



피고 측 증인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침착함을 유지하고 말을 이어갔다.



"안전 장비는 모든 직원들에게 항상 제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메일의 내용은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증언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양측 변호인들의 마무리 변론이 시작되었다. 피고 측 변호사는 회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음을 강조하였고, 피해자 측 변호사는 회사의 시스템 문제와 관리 소홀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노동철 변호사는 마무리 변론에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회사의 부주의와 무책임이 초래한 비극입니다. 아직 피지도 못한 꽃다운 나이의 청년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사법부의 공정한 판결과 정의를 기다릴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판사는 눈을 감고 깊이 숙고하였다. 이내 그는 고개를 들고 차분하게 말했다.



"오늘 재판은 여기까지 진행하겠습니다. 양측의 증거와 증언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피해자 측과 피고 측의 대립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법적으로 판단해야 할 부분입니다. 다음 기일에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법정의 문이 열리고, 모두가 천천히 자리를 떴다. 나는 노동철 변호사와 함께 손을 굳게 마주 잡았다. 그리고 성민이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고마워, 이렇게 큰 일을.... 혼자서 무서웠을 텐데 하늘에서 보고 있을 성민이도 너무 고마워할 거야."


"아니에요, 노동철 변호사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그리고 병상에 누워 있는 박태일 지부장님의 역할도 컸습니다. 이제 판결을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법정을 나서는 우리를 향해서 밝은 빛들이 비추며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이날 재판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힘 있는 자들에게는 불쾌함을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을 선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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