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서 Sep 23. 2024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기분을 붙잡고 산다는 건

어쩌면 소설_1

_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기분을 붙잡고 산다는 건


1_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겨울의 한참을 달리는 날이라 몇 겹을 껴입고도 부족하다 여겨졌지만

얼굴에는 뭔가 모를 자신감과 앞으로는 그토록 바라던 일들이 펼쳐질 거란 무턱대고 설레인 날이었다.


아이는 늘 무대에서 노래하고 연기하고 춤추는 모습을 상상하고 흉내를 냈다.

tv에 나오는 광고영상을 동생들과 친구들과 따라 하며 침대 위아래를 날아다녔고

모든 드라마의 대사들을 따라 읊으며 몇 번이고 돌려봤다.


‘빛나는 십 대’


그날 그 오디션을 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꿈의 시작이라고 느꼈던 세상의 따뜻함이 사랑이 온몸을 감싸고 희망이란 걸 붙잡은 그날이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2_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었을까


할머니와 사는 삶은 가난했지만 참 좋았다.

”설탕이 안 들어갔는데? “ 비빔국수를 손으로 비벼주시는 할머니의 옆에서 간을 보면 할머니는 “할머니도 몰랐는데 어떻게 알았어? 간도 잘 보네! “

주말이면 마당에 아무렇게 핀 돌나물을 캐다가 빨갛게 무치고, 깻잎으로 전을 부치고, 계란푼 라면을 나눠 먹는 그 삶이 꽤 많이도 마음에 들었다.

친구들이 모두 다니던 공부방조차 다녀본 적이 없지만 선생님이 교사용 문제집을 주시면 공부하기에 충분했고, 방학이면 동생과 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무료 한문 수업을 받으며 할아버지께 칭찬받는 그 삶이 좋았다.


아빠가 새엄마라며 소개해준 두 번째 여자는 착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처음에는 사실 좋았다.

행복했던 할머니와의 생활이 갑자기 사라졌지만 어쩌면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도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여자는 아마도 많이 아팠을 거다.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은 두고 아이와 아이동생을 돌보는 삶이 아마 스스로 화가 났을까.

아빠는 불안하면 술을 마셨고 그 매일의 불안이 매일의 술로 빠져들게 했다. 사랑한다면서 때리는 사람이 그때는 참 불쌍했다.


‘내가 집을 나가더라도 너희는 내가 데리고 나갈게’

‘우리 같이 살자, 우리 아빠 정말 불쌍해. 내가 잘할게 같이 살자 ‘


부둥켜안고 있었지만 이미 여자는 마음이 식어갔다.

아마도 미워지고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갔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고, 차려먹고, 혼자 교복을 다리고, 청소를 했다. 사람들이 있으면 그래도 잘했줬다.

생리대를 살 돈을 주지 않아 독서실 남은 2주 치 비용을 환불을 받아야만 했지만 기억 속 마지막 계모이자 엄마다.


그 여자가 나가고 아빠는 한동안 현관을 잠그지 않았다. 잠그고 열어놓고 서로 말없이 며칠을 반복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많이 났고 또 불안했기에 취해있는 날을 반복하셨고 동생 피가 많이 났던 날 아이는 너무 겁먹어서 도망을 갔다.

아이 동생은 머리에 심을 박고도 웃어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