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소설_6
11_아카시아노래
바람이 흐르는 곳에
바람이 머무는 곳에
가장 환하게 빛나는 눈이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따라
너의 두근거림에 맞춰 날개를 펼쳐봐
바람 따라 움직이는 작은 잎이 큰 세상을 보여줄 거야.
너의 생각, 너의 모습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거야.
되어지는 날갯짓을 통해 느낄 수 있어.
처진 날개 아래로 흐르는 바람을 느껴.
저 새하얗고 깨끗한 곳으로 가게 될 거야.
여리고 여린 잎과 약하디 약한 너의 날갯짓으로 가장 강한 일을 할 거야.
바람이 흐르는 곳에
바람이 머무는 곳에
가장 환하게 빛나는 너가 있어.
12_설나비 : 눈을 보고 싶은 나비이야기
<1>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흔들리는 아름다운 날.
잔디밭 사이에 반짝거리는 무언가에 애벌레는 눈이 부셨다.
“저게 뭐지?"
애벌레는 반짝이는 무언가에 다가가 이제껏 보지 못한 유리공 안의 작은 세상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은 유리공안의 하얗고 포근해 보이는 솜털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건 눈이라는 거야.”
애벌레를 지켜주던 나무가 말했다.
“눈이요?”
“추운 겨울이 되면 온 세상은 저 눈으로 하얗게 덮인단다”
“나도 저 눈을 보고 싶어요?”
“하지만 너는 겨울에 살 수 없는 걸”
“아뇨. 난 저 눈을 꼭 보고 싶어요.”
애벌레의 머릿속에 그 따스한 눈의 모습은 잊히지 않았고 그렇게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어 눈을 볼 날을 꿈꿨다. 날개가 생기기 시작했을 때 나비는 눈을 볼 수 있을 거란 환상에 기뻤다.
번데기를 벗고 드디어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 날개를 펼쳤다.
<2>
나비는 나무의 가지 위에 앉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니? 정말 눈을 보러 날아갈 거니?”
“네! 이제껏 꿈꿔온 일인걸요! “
“지금은 따뜻한 봄날이야. 추운 겨울이 오지 않으면 눈을 볼 수 없어.”
“저 어딘가 눈이 내리는 곳이 있을 거예요! 그동안 즐거웠어요! 안녕히 계세요.”
나비는 주저 없이 날아갔다.
하지만 눈을 보기 위해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햇님은 알지 않을까? 햇님 !!!! 눈은 어디로 가야 볼 수 있는 거죠?”
“눈?”
“네, 겨울이면 내린다는 하얀 눈이요!”
“너는 나비잖아 눈을 볼 수 없어.”
“왜요?”
“너는 추운 곳에서 살 수 없는 걸?”
“추운 게 뭐예요? 난 다 괜찮아요! 눈을 보고 싶어요.”
“나비야, 너의 주위를 둘러봐! 눈이 아니더라도 네가 이 따스한 봄날에 태어난 이유가 있단다.
너의 발아래 있는 푸른 들판 위 꽃들과 나무들, 푸른 하늘, 흐르는 냇가 포근하게 감싸는 나까지도 모두 이 봄의 아름다운 선물이란다!”
“아뇨. 전 눈을 보고 싶어요.”
햇님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나비가 듣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 그럼 내가 눈이 내리는 저 반대편 곳으로 널 인도해 줄게. 나의 빛이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햇님은 자신의 빛으로 나비를 추위로부터 지켜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햇님은 밤이 되면 사라졌기 때문에 나비에게 밤에는 더 위험하다는 사실과 추위를 느끼게 될 거라 말했다.
그렇게 나비는 햇님과 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3>
해가 질 무렵 햇님은 불그스름한 노을 저편으로 마지막 붉은빛을 나비에게 보내면 사라졌다.
나비는 나뭇잎아래 오랜 비행으로 지친 다리를 기대고 날개를 접었다.
달빛이 호수 위로 떠올라 풀과 바람이 만나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밤에 쉬고 있는 나비를 향해 뒤뚱뒤뚱 동그란 두 눈동자가 다가왔다.
자고 있는 나비는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따다 다닥 따 ‘
나비는 갑자기 눈이 부셔 접었덨 날개를 피며 날았다.
나비 앞에는 자신보다 몇 배나 큰 거위가 입을 벌리고 서있었다.
거위는 아쉬운 듯 다시 뒤뚱뒤뚱 호수가로 돌아가 유유히 헤엄쳐갔다.
“괜찮니?”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비는 그제야 어둠을 밝힌 반딧불이를 발견했다.
“어, 고마워! 너의 빛 덕분에 눈을 뜰 수 있었어!”
"다행이다. 근데 날개가 왜 그렇게 바랬어? “
“아.. 지금 눈을 보기 위해 가는 길이야! 오랜 시간 날았더니 좀 피곤해서 그래 ‘”
“눈?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난 소중한 나의 날개를 지키고 싶을 거 같아”
“눈은 정말 멋있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걸!”
“우와 정말 예쁘겠다. 하지만 난 지금이 좋아. 아름다운 호수에 달빛이 은은히 퍼지면 풀잎들에 맺힌 이슬이 반짝여.
나의 목을 축여주고 잔잔한 바람과 함께 날면서 웃는 것도 좋아.”
“난 이 모든 게 좀 지루해. 매일 보는 것들이잖아! 난 새로운 눈을 보고 싶어 ‘
“자세히 보면 매일매일 새롭게 변해가는걸? 난 오래 살지 못해. 하루하루 내 눈에 담아 가는 것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
“난 해가 뜨면 다시 눈을 찾으러 갈 거야. 같이 갈래?”
“난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싶어. 그리고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네가 날고 있는 하늘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네가 자는 동안 내가 지켜줄게 나비야!”
“고마워 반딧불이.”
반딧불이는 날이 밝도록 나비를 거위로부터 지켜주었다. 작은 빛 하나로.
<4>
“얼마나 더 가야 눈을 볼 수 있을까요?”
나비는 날개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아.”
푸른 하늘에 회색빛 구름이 스며들어왔다. 햇님은 곧 자신이 사라지게 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비가 위험에 빠지게 될 거란 것도.
하지만 빠르게 스며들어가는 회색빛 구름에 햇님은 나비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한 채 회색빛 구름 위로 떠올랐다.
“조금만 쉬어가요 햇님, 햇님? 어...”
나비는 어두워진 하늘 위에 햇님까지 사라져 두려움이 몰려왔다.
회색빛 구름은 나비를 감싸고 나비는 날개에 힘이 없어 도망칠 수 없었다.
‘뚝, 뚝, 뚝, 뚜두두둑 ’
풀잎마다 빗물이 떨어지고 떨어졌다.
거세지는 바람과 하늘에서 흐르는 빗물들을 나비는 작은 풀잎 하나로 피하고 있었다.
귀 속에서 울리는 폭우소리는 나비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풀잎을 붙잡고 있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나비는 숨을 참으며 견디고 견뎠다.
하늘에 다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풀잎에 떨어졌던 빗물들은 풀잎에서 땅 위로 다시 떨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하늘이 모습을 보였다.
<5>
햇님은 나비를 찾았다. 곳곳에 빛을 보내며.. 그리고 작은 풀잎아래 날개를 고이 접은 나비를 발견했다.
“나비야”
“햇님..너무 무서웠어요. 추웠어요.”
“날개를 펼 수 있겠니?”
나비는 날개를 더 이상 펼 수 없었다.
그때 하늘에서부터 온 상쾌한 바람이 들판을 적시고 나비는 그 순간 눈이 또 한 번
휘둥그레 해졌다.
“저건..”
“봄에 내리는 하얀 눈이야.”
들판에 있던 민들레 홀씨들이 바람에 실려 하늘에서 내렸다.
“저 민들레 홀씨들은 바람을 타고 흘러가 포근히 땅에 내려 새로운 곳에 새로운 생명을 낳는단다.”
“햇님... 가만히 보는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답네요....”
솜털 같은 민들레 홀씨 하나가 나비 위로 떨어졌다.
“따뜻하다... 봄에 내리는 눈...”
햇님은 가장 따스히 나비를 감싸주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흔들리는 아름다운 날,
햇살 담은 봄은 또 다른 생명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