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약도 없다는 착한 며느리 병

참 안 맞는 부부

by 오렌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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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약도 없다는 착한 며느리병



'착한 며느리병'이라는 병이 있다.

걸리면 약도 없다는 중증이다.


병의 증상은 딱 하나.

'시댁에 예쁨 받고 싶다'


조금 더 길~게 설명하자면

'시댁에서 부당한 대우는 받고 싶지 않고

미운 소리는 1도 안 하고 싶고

적당히 낄끼빠빠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싹수없는 며느리가 아닌

적당히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에게나 미움받고 싶지 않다.

그것이 가족, 시댁이라면 더욱이.


하지만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대우를 받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을 요구받았을 때

그것이 부당하다고 말도 못 하면서, 한 마디로 그걸 하기 싫으면서

그 사람에게 예쁨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모순을 떠나서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나도 처음에는 '착한 며느리병'에 지독하게 걸렸었다.

어머님은 '딸 같은 며느리'가 생겼다는 기쁨에 주변에 나를 엄청 자랑하고 싶어 했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10평 남짓한, 30년도 넘은 오래된 주택에

친구들을 데리고 가도 되냐고, 같이 커피 마시자고 한 적도 있었고

갑자기 전화가 와서 오늘 뭐하니, 같이 쇼핑할래?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는 경상도에서 자란 걸쭉하고 털털한 경상도 아가씨이기 때문에

애교가 없는 당연지사, 어릴 적 친구들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그런 간지러운 스킨십도 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어머님하고 같이 룰루랄라 쇼핑을 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님에게 이런 전화가 올 때 속마음은

'아 어머님, 제가 바빠서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좀 불편해서 이런 부탁은 앞으로 하지 말아 주세요'


라고 사이다 같은 거절을 하고 싶지만

이제 막 결혼한 새댁이라 거절 기역자도 꺼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나는 남편을 방패로 들었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처럼)


"음... 오빠한테 물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오빠에게 선택권을 넘기고

오빠가 거절을 하는 형식으로 계속 유야무야 넘겼다.




어느 날 오빠가 나에게 말했다.


"오렌지야, 그거 알아? 넌 지금 네가 착한 며느리가 된 것 같지?"


"응! 나 착한 며느리야! 아니야? 난 내입으로 어머님한테 거절하거나 아쉬운 소리 한 번도 한 적 없어"


"근데 그거 알아? 넌 이미 착한 며느리가 아니야"


"뭐라고?"


"네 입으로 말만 안 했을 뿐이지~ 내가 꼭두각시처럼 네 말 전하는 거, 우리 엄마는 다 알고 있어.

더 나쁜 며느리가 되기 전에 그냥 네 입으로 '싫어요. 안돼요'라고 말해.

여기서 더 하잖아? 그러면 넌 진짜 나쁜 며느리가 되는 거야"


알고 있었다.

나는 착한 며느리가 될 수 없고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겉으로는 착한 며느리이고 싶었다.

그래서 오빠를 달달 볶았고 괴롭혔고

결국 나는 나쁜 며느리였지만

나 스스로에게만 착한 며느리가 된 것이다.




결혼 4년 차인 이제는 어머니에게 당당하게 얘기한다.


"오렌지야, 주말에 시간 좀 내주면 안 될까?"


"어머니~ 바빠서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 그래?"


"네~ 어머니~ 죄송해요~~~"


좋은 거절은 없다. 착한 거절도 없다.

거절은 그냥 거절인 것이다.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한 길은 고난과 수행의 길을

100000계단보다 더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기에 나는 진즉 내려놓았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나쁜 며느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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