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첫 명절, 시댁부터 가? 친정부터 가?

참 안 맞는 부부

by 오렌지양



캡처.PNG


* 어쩌다 보니 시댁 이야기를 연속해서 올리고 있는데

결혼 초기에 시댁 에피소드가 많아서 그런 것뿐,

시댁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니 오해 말아주시길...

(시어머님, 시아버님.... 뒤로 가기 눌러주세요)


결혼 후 첫 명절, 시댁부터 가? 친정부터 가?


3월 달에 결혼을 하고 4월, 5월이 정신없이 흘러가고 어느새 추석이 찾아왔다.

결혼 후 첫 명절인데 이쯤이면 집집마다 백 분 토론이 펼쳐진다.

'이번 명절, 시댁부터 가? 친정부터 가?'


우리 시댁은 충청도고 친정은 경상도이다.

거리상 충청도인 시댁을 먼저 가고 친정인 경상도를 나중에 가는 것이 좋지만

그래도 남편과 충분히 상의를 해서 결정하고 싶었다.


마치 며느리들에게 도시괴담처럼 전해지는

'명절에는 시댁이 먼저지'

이 규칙은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속마음을 살짝 얘기해보자면...

일하기 싫다!

왜 시댁에서 전을 구워야 하나! 나는 전 굽는 사람이 아니다!

전 구울 거면 아들이 도와야지, 왜 남의 딸이 돕냐!

그럴 거면 전 굽는 전문 업체를 부르겠다!

에라이, 그냥 전을 사 먹자!


쉬고 싶다!

나도 명절 때 집에 가서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싶다!

우리 부모님 집에 가서 옷 편하게 입고 TV 보고 핸드폰 보고 쉬고 싶다!

왜 시댁에서 불편하게 무릎 꿇고 있어야 하나! '편하게 있어'라는데 어떻게 편하게 있나!

진짜 편하게 있으면 버릇없다고 할 거면서!


나도 우리 집 있다!

마지막으로! 나도 우리 아빠, 엄마 먼저 보고 싶다!

나는 우리 집에서 귀한 딸이다!

명절 되면 아빠, 엄마랑 같이 밥도 먹고 놀러 가고 싶다!



남편과 상의를 했다.


"오빠, 이번 명절 때 시댁 먼저 갈까? 친정 먼저 갈까?"


우리 남편은 이성적인 사람이다.

시댁 먼저, 친정 먼저 이런 골치 아픈 싸움을 하기 이전에

우리 남편은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켜면서 이렇게 말했다.


"봐봐, 어떻게 가는 게 더 효율적인지. 네가 결정해"


시댁을 먼저 가면 귀성길이 평화롭지만

친정을 먼저 가면 귀성길이 지옥이었다.

동선도 그렇고 거리도 그렇고 모든 것이 시댁 → 친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나의 두 번째 신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첫 번째 신조는 '어른 공경')


나 오렌지, 이번 결혼 후 첫 명절은 시댁부터 가기로 했다.




대망의 명절


대망의 명절날이 되었고 나는 시댁에서 전을 부쳤다.

다행히 우리 시댁은 큰 집이 아니라서 시댁 식구들이 다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끼리 먹을 정도만 전을 부쳐서 명절 기분을 냈다.


시댁으로 가는 길 내내 오빠를 부리부리 노려봤는데

이 눈빛을 눈치채고 오빠는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프라이팬을 꺼내고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해서 전을 부쳤다.


어머님은 그 광경을 보더니


"우리 아들이 못 보던 짓을 하네? 하지 말고 쉬어"


"엄마는 왜 안 하던 전을 부친다고 난리야~ 원래 명절 땐 바빠서 오지도 않았구먼"


"그래도 너네 결혼하고 첫 명절인데 당연히 와야지. 아들! 전 그만 부치고 쉬어"


"됐어! 내가 다 할 거야"


"오렌지랑 나눠서 해~"


"싫어!!! 내가 다 해서 내가 다 먹을 거야!!!!"


까칠 텁텁한 매력의 우리 청사과 남편은

전을 혼자 막 굽더니 진짜 혼자 다 먹었다... 쩝



저녁 식사 시간


시어머님이 먼저

'다음 명절에는 친정에 먼저 갔다 와, 앞으로는 왔다 갔다 하면서 너네 편한 대로 해'

라고 하셨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법도 하지만 나는 냉큼

'정말요? 네 그럴게요 ^^'

라고 받았다. (콜~~!!)


하지만

매번 명절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조용히 내비게이션을 보여주며


'봐봐, 어떻게 가는 게 더 효율적인지'


결국 나는 효율 봇이 되어

시댁 → 친정을 고정 코스로 가고 있긴 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며느리인가 봐~~~~~~)


한 번은 어떻게든 친정 → 시댁을 가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서울 → 경상도 → 충청도 → 서울 이렇게 코스가 되는데

서울에서 경상도로 가는 길만 운전을 5~6시간을 해야 한다.

옳다구나! 그러면 시댁 갔다가 친정 가면, 경상도에서 서울까지도 5~6시간 걸리잖아?

어차피 운전시간은 똑같으니까 친정 먼저 가면 되겠네~ 싶지만...!!


우린 프리랜서이기에 직장인들처럼 휴가 개념이 없어서

해야 할 일을 와다다다다다다닥 몰아서 끝내 놓고 후다닥 다녀오는 개념이라서

보통 출발하는 날은 반 좀비 상태이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워서 피곤한 상태에서 도저히 친정인 경상도부터 갈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또 이렇게 머리를 굴려봤다

'그러면 버스나 기차 타고 가면 되겠네!'

나름 괜찮은 생각인 것 같지만 시댁, 친정에 가면 어른들이

음식이고 뭐고 명절 선물로 들어온 것들을 바리바리 싸주시는데

그걸 안 받으면, 아니 못 들고 간다고 하면 서운하다고~~~ 서운하다고~~~~

노래를 4절까지 부르셔서 '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나는 머리가 아프고 복잡해서

명절에는 시댁을 먼저 가기로 했다.


대신 어떻게?

명절날 시댁에서 자고 다음 날은 동트자마자 짐을 싸서

점심 먹기 전에 친정으로 출발하는 걸로 나름의 협의를 보았다.


(사실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친정부터 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고로 나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댁에 먼저 간다)


- 배드 엔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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