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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뒤에는 우리가 맞이해야 할 어둠이 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by 김현비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될게요


그녀의 남편의 별명은 모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저주받은 화가’란 뜻이기도 했다. 잘생기긴 했지만 훌륭한 남편은 아니었다. 저주받은 화가라는 이름처럼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날마다 술에 절여진 남편을 찾아 집으로 데려와야 했고, 온갖 마약들을 복용하는 탓에 제정신인 날을 보기가 어려웠다. 가족들도 저런 부랑아에게 내 딸은 못 내어준다고, 저 자식과 결혼하려거든 천륜을 끊자고 했다.


집은 추웠고 먹을 것은 항상 없었다. 그이가 팔겠다는 그림을 사는 이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겐 모디, 오직 모디뿐이었다. 그런 모디가 고작 36살의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세상이 온전히 무너졌다. 사람들이 강제로 그녀의 몸을 떼어내기 전까지 모디의 주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짐승처럼 울었다.


모디를 보내고 난 이틀 뒤, 그녀는 건물 6층에서 창문을 열었다. 더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모디 곁으로 갈 것이다. 그녀의 몸엔 8개월 된 아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가족이 다 함께 모디 곁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허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01.jpg 잔 에뷔테른, <자살>, 1920년, 종이에 수채, 20.7×27.9㎝, 개인소장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델이 되어 줄게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로잡힌 시간은 분명 행복했다. 그러나 어떤 행복은 영원하지도 않으면서 맞이해야 하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모딜리아니, 잔 에뷔테른 이 두 사람은 너무나 처절하게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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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 은을 품은 침대에서 태어난 아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에 위치한 항구 도시 리보르노에서 태어났다. 모딜리아니가 태어나던 날, 불행히도 모딜리아니 집안의 재산 압류가 시작되었다. 산모의 침대에 있는 것은 압류하지 못한다는 오래된 법에 따라 가족들은 출산이 시작된 어머니의 침대에 귀중품을 쌓았다. 그렇게 귀중품을 둘러싼 침대에서 모딜리아니는 태어났다.


독실한 신앙을 지닌 유태인 가정의 3남 1년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지적인 어머니의 지도 아래 자랐다. 모딜리아니의 재능을 알아본 것도 어머니였다. 가난한 집안, 독실한 기독교 환경에서 아버지는 미술을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가능성을 믿었다. 어머니의 믿음에 따라 리브로노 미술학교에 진학했다. 문제는 모딜리아니의 건강이었다. 11세에 늑막염을 앓고, 이후에도 장티푸스와 폐렴, 결핵 등으로 여러 차례 병치레를 계속해야만 했다.


미술 공부를 하다 요양을 위해 잠시 이탈리아 일대를 여행하다 운명처럼 이집트와 잉카 문명의 고대 미술을 접하게 되며 조각가의 꿈을 자연스레 가지게 된다. 18세에 베네치아 누드 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시대를 풍미한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던 모딜리아니는 동시에 대마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허약하지만 겉으로 연약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싫었던 모딜리아니에게 마약은 최고의 안정제이자 각성제였다. 당시에 그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그렇게 자신의 수명을 빨리 닳게 만드는 것인지를.


02.jpg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잔 에뷔테른>, 1918년, 캔버스에 유채, 100×65㎝, 구겐하임 미술관


몽마르트르에서 가장 잘생긴 화가


1906년, 모딜리아니는 프랑스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 어머니의 경제적 도움이 약간 있기는 했지만 일정한 거처 없이 싸구려 호텔과 여관을 전전하는 이름 없는 화가 지망생에 불과했던 그에겐 석탄같이 까맣게 빛나는 눈과 잘생긴 외모만이 전부였다. 그런 그의 빛나는 눈과 매력을 알아보고 몽마르트르로 오라고 말한 것은 피카소였다.


피카소의 말대로 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르의 꼭대기 동네로 이사했다. 가장 지저분하고 거친 곳, 몽마르트르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모딜리아니에 대한 소문은 금방 퍼졌다. 혼자만 술을 마시는 외국인, 그렇지만 잘생겨도 너무 잘생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한 화가.


가난하지만 잘생긴 외모로 주변인들과 집시 여인 등이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었기에 모딜리아니는 여인들의 누드화를 그려 살롱 데 쟁테팡당에 출품하는 등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후원자도 생겼다. 파리 상류가문 출신의 젊은 외과 의사인 폴 알렉상드로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사주었고, 모딜리아니는 후원받은 돈으로 술과 마약을 샀다. 결핵으로 인한 허약함을 감추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취해 있었거나 마약으로 고통을 상쇄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잘생긴 젊은이 하나가 방탕하고 방랑자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료들은 그런 그를 ‘저주받은 화가’라고 불렀다.


1909년 모딜리아니는 알렉상드로의 소개로 조각가 브랑쿠시를 만나고 그 밑에서 조각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앓았던 결핵과 폐렴은 돌을 깎아내면서 나오는 먼지에 당할 재간이 없었다. 다시 회화로 돌아오지만 브랑쿠시 또한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영향을 받아 작업하던 조각가였기에 긴 목과 코, 단순화시킨 이목구비와 긴 타원형의 안면 윤곽을 화풍으로 적립하게 된다.


03.jpg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1918~1919년경, 캔버스에 유채, 54×37.5㎝, 개인소장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릴게


1917년, 모딜리아니는 콜로라시 아카데미에서 잔 에뷔테른을 만난다. 세상에 두 사람만이 서로에게 각인되었고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잔은 모딜리아니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누드를 연작으로 그리기 시작한 모딜리아니는 12월에 베르트 베유의 화랑에서 누드화 개인전을 열었다. 두 장의 아름다운 누드를 쇼윈도에 걸었다. 통행인들의 눈을 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길을 통행하는 사람은 구역 경찰관이었다. 저속하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작품이라 여겨져 작품은 압수되었다. 최초이자 최후의 개인전이었다.


1918년 니스로 거처로 옮긴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더욱 세련되지고 있었다. 모델이 되어주던 아내 잔은 남편에게 왜 자신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께.”


모딜리아니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잔 모르게 때때로 피를 토하고 있었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술과 약에 더욱 의존해야만 했다. 두 사람에게 첫째 딸이 태어나고 지중해 연안에서의 평온한 생활과 날씨까지 모든 것이 행복했지만 그 행복 이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04.jpg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자화상>, 1919년, 캔버스에 유채, 100×64.5㎝, 상파울루대학교 현대미술관


행복 뒤에는 우리가 맞이해야 할 어둠이 있다


1919년 파리로 돌아온 모딜리아니에게 닥친 겨울은 혹독했다. 병들고, 가난한, 약과 술에 절여진 저주 받은 화가에게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다. 잔은 어쩔 수 없이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피신했고 술에 취한 밤이 되면 모딜리아니는 잔의 친정집 앞을 서성였다.


미술품 수집가들은 이제 차츰 그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결핵은 그를 이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1920년 결핵으로 치명적인 발작을 일으키자 잔은 모딜리아니의 곁에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정신줄을 놓은 채로, 아무에게도 알리지도 않은 채로. 지인들이 일주일 만에 발견한 두 사람의 몸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모딜리아니는 사망했고 이틀 뒤 잔 또한 투신으로 사망했다. 모딜리아니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다.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죽음의 저주를 직면하기 직전, 모딜리아니의 그림에는 잔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마침내 사랑하는 이의 영혼을 온전히 이해했음을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릴께"라던 그의 약속은 결국 지켜졌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서였다.


찬란한 행복의 그림자로서 맞이해야 할 어둠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모딜리아니는 알고 있었다. 행복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 오직 추구할 수 있을 뿐인 것이라는 사실 또한 평생을 앓아온 결핵을 숨기고자 술과 약으로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그의 길게 늘어진 얼굴과 공허한 눈동자 속에서 불완전한 행복과 어둠이 공존하는 인생의 이중성을 마주하게 된다.


“행복 뒤에는 우리가 늘 맞이해야 할 어둠이 있다. 행복은 추구하는 거지 소유하는 게 아니다.”


05.jpg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 에뷔테른의 초상화>, 1918년, 캔버스에 유채, 46×29㎝,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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