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의 영국행 결정은 그다지 논리적인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해 화장실에서 만난 다른 팀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유럽은 석사가 1년이에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광명이 비추는듯했습니다. 저는 대학 첫 방학 때 유럽으로 3주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거의 매년 유럽을 찾았고 심지어 드라마나 영화도 유럽의 중세 또는 근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너무나 좋아하는 '유럽 홀릭'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유럽은 사랑입니다. (벨기에 브뤼셀)
오 좋았어! 어차피 국내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2년 동안 수익이 끊긴 채 공부를 하는 기회비용이나 유럽에서 1년 동안 공부하는 기회비용이나 생활비를 고려해도 그게 그거라며 유럽으로 떠나기 위한 자기 합리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MBA가 아닌 이상 일반 석사 학비와 국내 석사 학비가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유럽 어디?"를 생각하다가 일단 영어를 쓰는 나라가 편하겠다고 생각하니 선택지는 달랑 하나가 남았죠. 바로 영국!
나의 평생 희망 직무였던 마케팅을 공부할까, 희망 산업인 문화예술 쪽을 공부할까를고민하다가 후자로 마음이 기운 상태에서 창조산업의 태동지인 영국은 비교 상대가 없는 유학지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명색이 컨설턴트니 정신 차리고 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마음먹었지요.
그래서 점찍어 두었던 영국의 워릭대학교(Warwick University)-결국에는 제가 공부하게 될 학교가 됩니다- 설명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신세계에 당도 한마냥 흥분되는 마음을 안고 설명회가 열리는 영국 대사관에서 들어섰고 부 대사님(정확한 직함인지는 기억나지 않는군요)이 자신의 모교인 워릭대학 자랑을 하셨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본교에 대한 부심이란!). 그리고 학교에서 파견 나온 담당자분이 학교와 주변 지역 사진을 보여주시며 설명하시는데 저의 마음은 이미 한국을 떠나영국행 비행기에 올라 있었습니다.
워릭대학교 캠퍼스. 거위가 캠퍼스의 주인인 매우 자연친화적인 학교.
설명회를 통해영국 유학에 대학 갈망은 부풀어올랐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국내와 해외 석사 중 어떤 선택이 내가 원하는 직업을 찾는데 더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죠. 실마리를찾기 위해 워릭대학교 동문 중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기획 업무를 하고 계신 분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연락을 드렸고 흔쾌히 만남에 응해주셨습니다. 저희는 그날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 : "제가 국내 대학원에서 문화예술 쪽을 (국내에서는 주로 예술경영학 또는 문화콘텐츠학이라는전공이 있음) 공부해서 취업을 하려면 해외 학위가 국내 학위보다 더 효과적일까요?
워릭대 동문 : "사실 영국에서 배우든 한국에서 배우든 배우는 건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공부 그 자체보다도 영국에 있으면서 공연을 정말 많이 봤던 게 업무에 도움이 크게 돼요."
저는 이 대화를 통해 '아, 그래. 유학을 간다는 것은 전공 공부는 물론 그 나라에서만 체득할 수 있는 경험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구나'라고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저도 영국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축제와 공연 등을 접하며, 무수히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다양한 전시를 보고, 여행을 하면서 도시 재생의 사례를 들여다보았던 경험들이 문화예술, 나아가 창조 산업에 대한 저의 지식과 시야를 큰 폭으로 넓혀놓았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들이 제가 업무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죠.
다시 앞에서 제가 품었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답변을 해보도록 하죠. '해외 학위가 국내 학위보다 취업에 더 효과적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 다를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저의 케이스만을 고려한다면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특히나 현재 저의 회사 CEO께서 해외 학위에 높은 관심을 두셨던 점이 저의 취직에 가산점으로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위 질문을 '해외 학위가 국내 학위보다 취업은 물론 그 이후 실무에 더 효과적일까요?'라고 변형한다면 제 대답은 '매우 그렇다'로 격상될 것입니다.
그럼 이즈음에서 저의 국내 학위 vs 해외학위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1. 유학을 한다는 것은 외국에서 학문을 탐구함과 동시에 그 나라를 온몸으로 체득할 기회를 제공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유학을 고려한다면 그 나라에서 제공할 수 있는 유니크한 경험이 무엇일지, 그 경험이 향후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의 업무에 도움이 될지를 고려해 보시라. 저의 경우에는 유학 중 영국 여행은 물론 수많은 유럽 국가들을 여행한 경험들이 저의 업무 곳곳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있습니다.
2. 국내 학위의 경우에는 다른 나라에서의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학교에서 만든 인맥이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해외 학위 대비 장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석사 과정에는 해당 전공과 관련된 산업의 실무자들이 다수 참여하기 때문에 그들의 회사는 곧 나의 이직 타깃 회사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저의 학교 인맥은 전 세계에 흩어져있어 한국에서의 취업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3. 취업의 확률만 놓고 따져보면 해외 학위가 국내 학위 대비 큰 비교우위를 가진다고는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쌓은 경험이 관련 산업 또는 직무에서 발현된다면 업무 성과를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상 저의 글이 국내냐 해외냐를 놓고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